한여름 뜨거웠던 뙤약볕과

연일 이어지던 폭염은 힘겨루기에서 밀려난 듯

가을이 성큼 내려앉은 제주 들판

한층 높아진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은 벗삼아 떠다니고

은빛 억새길이 손짓하는 가을이 도착했다.

가을 들녁을 느끼며 가을을 걷다...

붉은 속살을 부끄러운듯 살며시 내보이는 억새

붉은 빛을 머금은 마술같은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고

한폭의 수채화를 그려내듯 가을빛이 내려앉았다.

가을의 왕자 '수크령'은

산책길 사이로 자람터를 넓혀가고

종모양의 연보라색 꽃이 층층이 돌면서 피는 '층층잔대'

작지만 앙증맞은 보라색 꽃을 피우는 산에서 나는 박하 '산박하'

물을 좋아하는 정화식물 '고마리'

날카로운 가시가 있는 귀화식물 '도깨비가지'

이질에 달여 먹었던 민간 약초 '이질풀'

억새에 기생하는 꽃대와 꽃 모양이 담뱃대를 닮은 기생식물

'야고'도 가을 산책길에 나섰다.

억새 사이를 걷는 바람의 길

내 키를 훌쩍 넘긴 햇살에 반짝이는 붉은 속살을 드러낸 억새

억새의 사각거리는 소리, 야고의 요염스러운 자태

가을빛에 물드는 억새길이 활짝 열린다.

고운 이름을 가진 '열안지오름'

제주 시내(오라동) 가까운 곳에 위치해 쉽게 접할 수 있고

근처에 방선문계곡이 있어 찾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오름 모양이 기러기가 줄지어 날아가는 형상이라 하여 '열안지(列雁旨)'.

새의 알과 같다고 하여 '여난지(如卵旨)'라 불린다.

그렇지만 막상 오름 정상에서 보면 

왼쪽의 '노리손이' 부터 사라봉과 별도봉까지 이어지는 제주시내의

오름군이 떼를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에 비유되어

'열안(列雁)' 이라 보아진다.

는 설명이 와 닿는다.

가을, 출렁이는 은빛물결의 주인공

억새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오름들이 많지만

'열안지오름' 만이 가질 수 있는 바람을 노래하는 은빛 억새길은

또 다른 매력으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계곡과 초지를 지나 길게 이어진 억새길

그리고 하늘을 가린 편백나무 비밀의 문이 열린다.

편백나무의 상큼한 향은 코를 자극하지만

사색하며 걷기에는 움푹 패인 오르막길이 조금은 위태롭다.

아름드리 편백나무길이 길게 이어진다.

정상에서는

제주시의 전경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가을하늘과 수평선이 보이는 바다가 맞닿아 있는 풍경은

한폭의 수채화를 그려내듯 잠시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고

발 아래에는 잎을 비비면 오이 향이 나는 '오이풀'

어린순을 나물로 먹는 '참취'

긴 꽃줄기 끝에 작은꽃들이 뭉쳐 피는 '개승마'

풀숲에 숨어 가을을 노래한다.

내려오는 길에 다시 만난 억새길

하늘과 구름, 햇살에 반짝이는 바람타고 물결치는

억새의 출렁거림은 길게 이어지고

한발짝 그냥 스치기엔 붉은빛을 머금은 그림같은 아름다운 풍광은

가을 색채가 조금씩 드러나 억새의 오랜 기다림이 느껴진다.

내려오는 길에 메밀밭에 차를 잠시 멈췄다.

무더기로 피어난 하얀 메밀꽃,

흩날리는 꽃향기에 꿀을 찾아 날아다니는 벌과 나비

메밀꽃이 그려내는 하얀 세상을 만났다.

낭만이 있는 가을 억새길에는

가을햇살에 반짝이는 억새의 실루엣

코 끝을 자극하는 들꽃향기

뺨을 간지럽히는 기분좋은 작은바람

바람에 출렁이는 붉은 속살을 드러낸 억새 물결로

제주의 가을은 무르익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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