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우리 사회에 하나의 숫자가 던져졌다. '0'. 두 차례 예멘 난민신청자들에 대한 심사 결과 발표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난민으로 인정된 예멘인은 단 한 명도 없다. 0%다. 아직 85명에 대한 심사 결과가 발표되지 않은 상태지만 그들 모두가 난민으로 인정된다 하더라도 세계평균 난민인정률 38%보다 한참 밑이다.

정부가 포퓰리즘에 입각해 단 한 명의 예멘인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선택을 한 것을 보면 난민 혐오집단의 가짜뉴스 유포와 인종·종교 혐오 조장은 얼마간 성공한 모양새다. 가짜뉴스를 엄단하겠다던 정부가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법무부의 이번 난민 심사 결정은 가짜뉴스 생산자와 유포자들에게 다시 한 번 용기를 줬다. 가짜뉴스를 생산하면 먹힌다는 그릇된 신호를 준 것이다.

인지부조화가 극에 달한 예멘인 혐오집단은 세화 여성 사망사건에 대해 경찰이 타살 흔적이 없다고 발표한 결과를 믿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심지어 그 사건을 예멘인 혐오를 유발하기 위한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도 있다.

예멘 난민 혐오집단을 지켜보면 예멘인에 의한 범죄가 발생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예멘인들을 더 열악한 처지로 몰아가고자 한다. 사회적 지원을 받지 못하도록 애를 쓰고 있다. 그러한 노력은 성공했다. 이들에 대한 의료 지원 등은 시민사회의 몫으로 고스란히 떠안겨졌다.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고서 ‘이래도 니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냐’고 추궁하는 모양새다. 말하자면 제발 범죄를 저지르라고 기도하고 있는 셈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이 언젠간 들려올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이런 걱정을 하게 될 뿐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대접하지 않는 사회에서 사람은 언제까지 그 사회를 존중할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가 인권 측면에서 거의 유일하게 잘 한 일은 바로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한 것이다. 국민들의 인권을 위한 일은 할 생각이 없고 적용될 가능성이 낮은 법을 제정해 생색을 내려다 엉겁결에 저지른 일이라는 평가가 따르긴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인권 보호 수단을 인권 변호사 출신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한 정부가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사람이 먼저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가 내건 슬로건이다. “이념보다, 성공보다, 권력보다, 개발보다, 성장보다, 집안보다, 학력보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거죠. 가슴이 뛰지 않습니까?” 그 슬로건은 폐기된 것일까. 구석에 처박힌 채 구겨져 있는 그 슬로건을 꺼내 다시 내걸어야 한다. 다만 조금 손을 보면 어떨까. ‘피부색보다, 종교보다, 국가보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겁니다. 가슴이 뛰지 않습니까?’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