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을 막기 위해 일어났던 10·19여수순천(이하 여순) 사건도 70주년을 맞았다. 화합과 상생이라는 이름으로 여순사건 유가족이 서로 손을 잡기 시작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깊었다.

▲고효주 여순사건 70주년 기념 추모사업 시민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이 공식행사에서 "여순은 반란이었다"고 발언해, 주변 행사직원들이 고 집행위원장을 말리고 있다.@사진 김관모 기자

여수시(시장 권오봉)와 여순사건 70주년 기념 추모사업 시민추진위원회(이하 시민추진위)는 19일 오전 10시 30분 여수시 이순신광장에서 '여순사건 70주기 희생자합동추념식'을 거행했다.

이번 추념식은 여순사건희생자유족회와 보훈·안보 단체가 사상 처음으로 합동으로 추진했다. 또한, 천주교와 불교, 원불교, 기독교 등 4개 종교단체도 합동으로 참가했다. 또한, 김영록 전남도지사와 권오봉 여수시장을 비롯해 주승용 국회 부의장(전남 여수시을, 바른미래당)과 이용주 의원(전남 여수시갑, 민주평화당) 등도 참가했다.

시민추진위는 민간인 희생자 유족과 순직한 경찰관 유족, 경우회 여수지회 등 22명의 각계각층의 대표가 참여해 구성됐다. 시민추진위는 지난 8월 10·19여순을 '여순사건'으로 명명하는데 합의했다. 또한, '항쟁이나 반란'처럼 민감한 용어는 사용을 자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19일 오전 여수시 이순신광장에서 여순사건 70주년 기념 추념식 행사가 거행했다.@사진 김관모 기자

하지만 시작부터 추념식은 삐걱댔다.

의견 합의가 원만하지 않자 경찰관 유족회와 경우회 여수지회는 추념식을 불참하고 여수경찰서에서 별도로 '순국경찰 위령제'를 가졌다. 

추념식 과정에서도 소동이 일어났다.

추념식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고효주 대한민국 월남전참전자회 전남지부장이 "여순사건은 반란이며 내란"이라고 말하며 분란이 일어났다.

고효주 집행위원장은 "이번 추념식에 경우회가 참여하지 못한 이유는 시민집행위의 일부 단체가 여순사건을 의거이며 항쟁이라며 합의를 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 집행위원장은 "여순사건은 14연대 지창수 상사 등 30~40명의 극렬좌익군인이 상사와 동료군인을 죽이고, 72명 경찰관과 천여명의 시민을 죽였다"며 "대한민국 헌정을 무너뜨리고 인민군을 끌어들였는데 이것이 반란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고 주장했다.

그러자 일부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이 분노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고, 당황한 행사관계자들이 고 집행위원장을 말렸다. 고 집행위원장은 계속 자신의 말을 이어가려고 했고, 결국 고성이 오가며 추념식 행사가 일시 중지됐다.

▲고효주 집행위원장의 발언에 유가족 중 한명이 분개하고 있다.@사진 김관모 기자
▲고효주 집행위원장(왼쪽)의 발언에 유가족(하얀옷)이 고 위원장에게 따지고 있다.@사진 김관모 기자

유족들은 "내 가족 5명이 정부 토벌군에게 죽었는데 내 가족이 반란을 했다는 말이냐"며 "공식 발표하는 자리에서 민감한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했던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분개했다. 일부 유족은 눈물을 흘리며 가슴만 치기도 했다.

유족 중 한 명은 "당시 14연대 군인에게 희생당한 군경은 10% 정도다. 그 나머지는 정부 토벌대가 14연대를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무참하게 살해당한 민간인"이라며 "제주4·3 당시 제주로 들어가 동족상잔을 일으키지 않기 위한 이유가 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모두 빼놓고 반란만 강조했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자들도 고 집행위원장의 발언이 경솔했다며 추궁했다.

▲주승용 국회 부의장

주승용 국회 부의장은 "정말 안타깝다. 이제는 우리끼리 갈등을 풀고 화합을 했으면 좋겠다"며 "우리끼리 갈등하고 대립하기보다 힘을 모아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주 부의장은 "그릇된 역사인식으로 인해서 전남 동부지역 유가족은 평생을 억울한 명예와 멍에를 짊어지고 있다"며 "임기 중에 특별법을 제정해서 민간인 및 군경 유가족, 행안부, 국방부 관계자를 만나서 조율 중"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용주 국회의원은 "여순사건특별법을 발의했지만, 국회에서 통과돼야지만 해결의 단초가 마련된다"며 "저와 주 부의장이 열심히 해도 쉽지 않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야 국회를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용주 국회의원

이 의원은 "유족들이 이견을 표출하고 서로 다투는 순간 특별법은 물건너간다"며 "각자 항쟁이나 반란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특별법을 통해서 역사적 성격이나 진상규명을 한 이후에 명명백백하게 밝혀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의원은 고 집행의원의 발언과 관련해 "처음으로 희생자 모든 가족이 모인 역사적인 자리에서 이견이 표출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며 "특히 집행위원장의 자격으로 말한 것은 무척 안타깝다"고 전했다.

이후 일정은 별다른 차질없이 속행됐다. 이순신동상 앞에 마련된 추념식장 제단에 민간인희생자와 보훈단체의 유족회 대표가 손을 잡고 헌화했다.

행사 직후에도 고 집행위원장은 끝내 자신의 뜻을 바꾸지 않았고, 유족들과 다툼을 벌였다.

추념식 행사장에는 '아픔과 갈등을 뛰어넘어 이제는 화해와 상생의 길로'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오늘 행사가 화해와 상생을 이룬 길이라고 끝내 말하지 못했다.

한편 순천유족회는 10·19 여순 추념식 70주기를 20일 오후부터 진행하고 있다.

▲추념식 행사 연단에 '아픔과 갈등을 뛰어넘어 이제는 화해와 상생의 길로'라는 글귀가 보인다. 이날 고효주 집행위원장의 발언으로 이 글귀의 의미가 무색해졌다.@사진 김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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