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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 여순사건 순례기①]"전라도를 떠도는 4·3영령이여, 편히 쉬소서"광주형무소까지 넘어와 수감됐던 4·3희생자들
200여명 이상의 도민 수감...살아돌아온 이는 2명뿐
김관모 기자 | 승인 2018.10.28 13:30

①"전라도를 떠도는 4·3영령이여, 편히 쉬소서"

②"4·3학살을 막았던 항쟁...제주가 '반란' 쓰면 안돼"

③끝나지 않은 상처와 갈등...여순사건은 계속 진행중

10·19 여수순천사건(이하 여순사건) 70주기가 지나갔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제주4·3희생자유족회청년회는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2박3일의 일정으로 여수와 순천을 순례하면서 여순사건 70주기 행사에 참석했다.

본지 기자도 유족회 등과 여순 순례길에 동참했다. 여순사건은 제주4·3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두 사건은 분리된 일이 아닌 한몸과 같은 일이었으며, 한국 현대사를 뒤흔들어놓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유족회가 이번 순례길에 오른 이유기도 하다. 제주4·3과 함께 다뤄져야 할 이야기가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었다.

◎전라도에서까지 넘어와 희생됐던 제주도민

18일, 광주공항에서 내린 유족회가 여순사건 순례에 앞서 가장 먼저 찾은 장소는 광주시 동구 동명동에 위치한 광주형무소터였다. 

▲광주시 동구 동명동의 광주형무소 옛터을 둘러보고 있는 4.3희생자유족회 회원들@사진 김관모 기자

광주형무소는 1971년 문흥동 광주교도소로 이전하면서 그 터는 사라진지 오래다.

1908년 광주감옥이 만들어진 이후 호남지역의 독립운동가를 가두기 시작하면서 확장됐던 광주형무소는 광복 이후에는 전범자를 가두는 곳으로 활용됐다.

1950년 당시 수용 인원은 3천여명에 달했다고 하며, 4·3관련 수용자도 2백여명 정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50년 당시 광주형무소의 모습. 지금은 사라지고 기록에만 존재하고 있다.@사진출처 광주시립민속박물관

당시 제주는 전라도에 소속된 지역이었기 때문에 재판을 받기 위해서 제주도민들은 대부분 전라도로 이송됐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이나 인천, 전주, 군산형무소에서 광주로 이송된 수감자만 1,700여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200여명 중 살아돌아온 제주도민은 단 두 명 뿐이었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됐는지 행방조차 알 수 없다.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수용자 중 2천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학살됐다. 현재 밝혀진 학살현장은 5곳 정도지만, 확인되는 명단은 145명 정도에 불과하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죽임을 당했는지조차 모른다. 

이날 가이드로 나선 김종혁 제주4.3진상규명과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 집행위원장은 "당시 증언에 따르면 형무소 한 방에 20명씩 수감돼있었는데 계속 차로 실어냈다는 것으로 보아 4천명 가까이 있지 않았을까 유추해볼 따름"이라며 "사실 이 중에 제주도민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이곳이 광주형무소였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기록 뿐이다.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은 일반 골목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외면하고 싶은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마을 어귀에 설치된 한 표지판에는 이곳이 광주형무소 옛터라는 글이 남아있다. 하지만 이 표지판에 광주형무소라는 글에 검은 페인트칠이 돼있었다. 이곳 마을사람들이 일부러 지웠다고 한다. 이 표지판을 붙이는 것조차 강하게 반대했었다고 하니, 과거의 상처는 여전히 딱지가 아물지 않은 채였다.

▲광주형무소 옛터 표지판. 마을 주민 중 누군가가 광주형무소라는 이름을 페인트로 지워버린 상태였다.@사진 김관모 기자
▲광주시 동구 동명동의 광주형무소 옛터을 둘러보고 있는 4.3희생자유족회 회원들. 광주형무소 옛터에는 더이상 광주형무소였다는 흔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사진 김관모 기자

 

◎전라도 구천을 헤매는 4·3영령이시여, 편히 쉬소서

광주형무소터에서 유족회는 근처 공원 정자에 제사상을 올리고, 광주형무소에서 희생된 영령을 기르는 진혼제를 올렸다.

유족회 회원들은 낯선 땅에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4·3영령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초혼했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가 광주시 동구 동명동의 광주형무소 옛터 자리에서 진혼제를 올리고 있다.@사진 김관모 기자
▲오임종 4.3유족회 회장대행이 초혼을 하고 있다.@사진 김관모 기자


"땅 설고 물 설은 전라도 땅, 광주시 지경에서 구천을 헤매는 4·3영령들이시여! 
70년 만에 영령님들을 찾아 이곳 광주 형무소터에 모여든 오늘은 2018년 10월 18일입니다. 
저희 제주4·3희생자유족회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님의 자손들이 제주(祭主)가 되어 제단에 향을 사르고 간절히 청하오니
영령들이시여, 이 정성 받으시어
천추의 한 거두시고 이제 해원하옵소서
이제 한 위, 한 위 초혼하오니 강림하시옵고 저희 절 받으시옵소서
같이 가신 무명신위께서도 함께 강림하옵소서."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신위들은 차마 모실 수 없었다. 유족회는 무명신위도 불러내며 "이제 한을 푸시고 제주 제단으로 강림하시어 흠향하옵소서" 절을 올렸다.

영령을 위로한 유족회는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시금 다짐했다.

▲4.3유족회가 광주에서 희생된 4.3영령을 기리기 위해 묵념을 하고 있다.@사진 김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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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모 기자  whitekg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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