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휠체어에 앉았고 할머니는 지팡이에 의지했다.

그러나 웃음기 머금은 얼굴은 안온했다. 역경의 인생을 엮어온 이들 같지 않는 아우라가 몸 주변을 감싸 안았다.

50년 이상을 과일장사로 피땀 흘리며 모은 재산 400억 원을 거리낌 없이 내놓고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홀가분하고 흡족한 표정이었다.

김영석(91)할아버지와 양영애(83)할머니의 가슴 뭉클하고 아름다운 기부(寄附)이야기다. 말을 꾸미자면 ‘4백억 원짜리 과일바구니 선물’ 이야기인 셈이다.

25일 오후 노부부는 앰뷸런스를 타고 고려대학교를 방문했다.

자신들이 소유했던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소재 토지 5필지와 건물 4동을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에 기증하기 위해서였다.

2백억 원 상당의 재산이었다.

이들 부부는 이 자리에서 또 2백억 원 상당의 다른 토지 6필지와 건물 4동을 추가로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4백억 원대의 거액 기부였다.

할아버지는 북한 강원도 평강군 남면에서 태어났다. 부모를 여의고 열일곱 나이에 혈혈단신 남한으로 내려왔다.

고향에 남은 형제들에게 “돈을 벌어오겠다”고 했었지만 그 약속은 지킬 수가 없었다. 전쟁이 남과 북을 갈라놓았기 때문이었다.

할머니와는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그러나 먹고 살기가 어려웠다.

둘은 생계를 위해 식모살이와 식당일 등 닥치는 대로 온갖 잡일과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60년대 초 리어카를 하나 마련하고 과일 행상을 시작했다.

과일장사가 끝나면 식당에서 일도 했다. 돈을 모아야겠다는 욕심이기도 했지만 끼니를 해결하기 위한 요량이기도 했다.

쉬거나 놀 틈이 없었다. 신발이나 양말, 옷가지 등도 사지 않고 얻어 쓰기 일쑤였다.

온갖 수모와 눈총을 받으면서 30여 년 동안을 억척스럽게 또는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1976년 청량리에서 조그만 과일가게를 열었다. 생애 첫 자신들의 재산 소유였다.

‘기부 재산 4백억 원’은 이처럼 이들의 눈물과 피땀으로 일군 것이었다.

두 아들이 있었지만 부모의 재산 기부를 흔쾌하게 동의했다고 한다.

부모의 재산 또는 유산 다툼으로 형제끼리 원수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 또한 흐뭇한 이야기다.

언론매체를 타고 전해진 이들 노부부의 ‘4백억 원 재산기부 소식’은 그래서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미담이었고 신선한 충격일 수밖에 없다.

이들 노부부는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한과 서러움은 더욱 크고 깊었을 터였다.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써 달라”는 기부의 뜻이 더욱 애틋하고 가슴 아리게 다가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백억 원 재산 기부 이야기’가 길어지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수천억 원, 수조 원의 재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불법․탈법․편법 등으로 이를 숨기고 더욱 축재(蓄財)에만 혈안이 되고 있는 한국 부자들의 일탈을 경고하고 기부문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함이다.

그들의 게걸스런 탐욕에 보내고 싶은 메시지다.

기부는 가진 것을 나누는 일이다.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인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렇다.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의 일환이다.

이는 로마제국의 2천년 역사를 관통하며 지탱해온 ‘철학’이기도하다.

로마의 귀족은 전쟁이 일어나면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솔선수범하여 전장의 선봉에 나섰다고 전해지고 있다.

사회지도층의 자발적 공공봉사와 기부, 헌납 등의 전통은 로마귀족의 의무이자 명예로 인식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 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철학’이 ‘기부 문화의 효시’라는 설명이 대체적 흐름이다.

미국의 기부문화도 여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많다.

미국의 마이크로 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내외는 세계 최대 기부자다.

미국 포브스(Forbes)에 따르면 2013년 6월 현재 우리 돈으로 31조4440억 원을 사회에 기부했고 종국에는 재산의 95%를 기부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투자의 천재로 알려지고 있는 워런 버핏도 이미 19조3718억 원을 기부했다. 그는 자신의 재산 99%를 기부하기로 서약하기도 했다.

블룸버그 통신 창업자이자 미국 뉴욕 시장이었던 블룸버그의 기부액은 3조1444억 원이다.

뉴욕시장 재직 시에는 1년에 단 1달러만 받고 일했었다.

나이 30대인 젊은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거버그는 자신의 첫딸 출산 직후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페이스 북 주식 99%를 살아있는 동안 박애주의적 활동 등에 기부 하겠다’고 선언했다.

본인 장례비만 남기고 22억 달러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는 테드 터너(타임 워너 부회장)의 예도 있다.

이들의 천문학적인 기부액과 기부 약속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부자들의 도덕적 의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이들 슈퍼 기부자들의 ‘기부의 변’은 대체적으로 일맥상통한다. “기부는 가진 자의 의무‘라는 것이 중심축이다.

‘사회로부터 얻은 재산을 사회에 돌려주는 것은 당연’, ‘부의 사회 환원은 부자의 의무’, ‘성공의 완성은 바로 나눔’, ‘부유한 죽음은 불명예’, 부끄러운 것은 부자인 채로 죽는 것‘ 등 등 의 ’부자 어록(語錄)‘메시지는 ’탐욕과 집착‘이 아닌 ’나눔과 자선‘ 이었다.

그렇다면 재벌 총수 등 대한민국 부자들의 기부문화나 도덕성은 어떤가.

비교하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자발적 공익재단 출연이라기보다는 국면을 모면하기위해, 또 다른 무엇을 얻기 위한 수작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나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성서 말씀이 새삼 가슴 와 닿는다.

언제쯤 한국에서도 자신의 재산 중 90%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재벌 총수가 나올지 궁금하다.

90%는 아니더라도 재산의 절반이라도 사회에 하겠다는 부자를 기대할 수는 있을 것인가.

물론 1971년 타계한 유한양행 창업주인 유일한 박사가 자신의 전 재산을 공익재단에 기부한 예가 있기는 하다.

몇몇 부자들의 거액 장학재단 출연 등의 경우도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역 재벌들의 일정부분 재산 사회 환원 등 ‘부자의 의무’에 색안경을 보는 이들이 많다. 그들에 대한 진정성을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부나 자선은 금액의 크고 작음에 있지 않다. 진정성에 있다.

때로는 부자의 돈 다발보다 작지만 따뜻하고 포근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자선이나 선행이 더 가치 있고 빛날 수 있는 것이다.

날씨가 추워지고 있다. 겨울이 오면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 마음 역시 춥고 시리다. 소외 계층의 몸도 더 움츠러들고 주눅 들게 마련이다.

추위를 녹이는 온돌방처럼 따뜻하고 포근한 인정이 그리운 계절이다. 작지만 가진 것을 나누는 자선의 마음이 그리운 것이다.

50년 과일 장사 할아버지․할머니의 ‘4백억 원 대 통 큰 기부’를 떠 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말연시를 맞아 가진 사람들에 의한 ‘나눔의 기적’을 보고 싶은 욕심에서다.

대한민국 재벌 총수나 부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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