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김영철/ 변호사, 전 건국대 로스쿨 교수

제주 토속 영등굿을 대표하는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은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를 넘어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됨으로서 세계적인 무형문화유산으로 발돋음하게 되었고, 또한 국제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유산으로 지정된 대상은 굿문화로서 형체가 없는 무형문화이지만, 이러한 형체 없는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여 지속적으로 제주인과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함께 공유하게끔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려면 날씨와 계절에 상관없이 상시 공연(performance)이나 전시(exhibition), 훈련(training)을 할 수 있는 실내공간을 마련함과 아울러 실내공간에 전시할 영등할망 등 관련된 신의 상(像) 및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하여 수요자에게 제공해야 할 것이다.

영등굿이 실제로 행해지는 것은 1년에 음력 2월 초하루와 같은 달 14일로 단 2회이다. 그렇지만, 영동굿에 관심이 있는 해녀, 어부, 선주, 시민, 관광객 등은 언제든지 영등굿 문화를 체험하고 감상할 수 있어야 하고, 영등굿 보존회나 지원 행정당국은 꾸준히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해야 한다. 양질의 콘텐츠를 계속 제공하기 위해서는 공연자 훈련 및 후계자 양성사업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구전으로 내려오는 영등할망의 전설과 숭배문화는 제주인에게 있어서 불교, 기독교, 유교 등 현대적 종교 이전에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아 몸속에 배어있는 토속적 DNA인자이다. 구전이라 지역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영등할망의 전설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영등할망은 아득히 먼 영등국에서 '영등달'인 음력 2월 초하루에 제주로 들어와 2월 보름에 떠나는 외방신(外邦神)으로서, 해산물의 풍요를 가져다주는 바다와 바람의 신이다. 영등할망은 제주에 머무르는 동안 제주 전역을 돌아다니며 해산물의 씨를 뿌려주고, 어부나 해녀들이 비는 소원을 들어주고 간다고 믿어지고 있다.

이 기간에 해안가 마을마다 영등굿을 치르는데, 해녀와 어부들의 안전조업과 채취하는 해산물의 풍요를 기원한다. 영등굿은 마을마다 그 내용이 조금씩 다른데, 1980년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제 제71호로 지정되고,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에 집중하여 살펴보자.

제주시 건입동의 옛이름 칠머리에는 본향당인 칠머리당에 마을의 수호신으로 ‘도원수감찰지방관(都元帥監察地方官)’과 ‘요왕해신부인(龍王海神夫人)’이라는 부부신(夫婦神)을 모시고 있고, 이와 함께 영등할망신을 모시는데, 그 신 중에 영등할망신을 더 중하게 여겨 굿이름을 ‘영등굿’이라 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도원수감찰지방관’은 지역민의 각종 민원을 담당하는 신이며, ‘요왕해신부인’은 어부와 해녀의 생계를 담당하는 신이다.

사당에는 숭배자 기준 맨 좌측에서 우측으로 ①영등여왕 ②해신선왕 ③도원수감찰지방관 ④요왕해신부인 ⑤남당하르방 ⑥남당할망 등 6신의 위패를 모신다. 아마도 ②번신은 ④번신의 아버지를 일컫는 것 같고, ⑤번과 ⑥번신은 친분이 있는 이웃당의 산신을 지칭하는 것 아닌가 한다. ①②④번신은 바다와 관련된 신이고, ③⑤⑥번신은 육지와 관련된 산신(山神)일 것이다. 매년 음력 2월에 마을 무당들은 영등할망, 용왕, 산신 등에게 제사를 지낸다. 2월 초의 ‘영등환영제’에는 신령을 부르는 의례, 풍어에 대한 기원, 조상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3개의 연희 등이 포함되어 있다. 영등환영제가 시작된 지 2주 뒤에 열리는 ‘영등송별제’에는 굿에 쓸 술과 떡을 사당으로 가져오고, 용왕을 맞아들이는 의례인 ‘요왕맞이’를 하며, 수수의 씨를 가지고 그해 해산물의 풍요여부를 점치는 씨점을 치고, 마을 노인들이 짚으로 만든 배를 바다로 내보내는 ‘배방선’(送神) 행사 등을 치른다.

영등할망이 떠남과 동시에 용왕을 맞이하는 것을 보면 영등할망과 용왕사이에 역할분담을 하여 영등할망이 떠난 다음 바다관련 사항은 용왕에게 인계하는 의식으로 보인다. 봄이 왔음을 뜻하는 15일째가 되어 영등 할망이 떠나면 대지에는 씨가 뿌려지고 험한 바다는 잔잔해진다. 영등굿에 참여하는 사람은 무당 이외에 해녀들과 선주들인데, 이들은 음식과 공양물을 지원한다. 일정한 시기에 치러지는 의례이자 문화 축제이기도 한 영등굿은 제주도 사람들에게 일체감을 심어주어 돈독한 관계를 맺도록 해준다. 영등굿은 또한 제주도 바닷사람들의 삶을 좌우하는 바다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기도 하다.

자료사진이나 유네스코에 제출된 관련 영상을 보면 영등제 행사는 건물 안이 아닌 노지에 1회용으로 천막을 치고 종이에다 신 이름을 써서 붙이거나 걸고, 제사음식을 상에 진설한 초라한 모습이다. 그리고 행사가 끝나면 그 흔적은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남겨지지 않는 한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이제 민관이 합심하여 세계문화유산에 걸맞는 어엿한 유지보존 시설과 형상화된 조각 신상, 양질의 문화 컨텐츠를 갖추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사견으로는 칠머리당이 위치한 사라봉 일부지역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재 보존구역으로 지정하여, 이곳에 건축물을 짓고 칠머리 영등굿 추앙의 대상인 영등할망신, 용왕신, 기타 산신들의 모습을 형상화하여 공연물과 함께 전시하고 실내공연, 훈련시설 등으로 활용하면 어떨까 한다. 유네스코에 제출했던 영등굿 동영상이나 기타 사진 자료들도 전시물이 될 수 있다. 어떤 모양의 건축물을 어느 정도 규모로 지어 어떤 콘텐츠를 전시할 지에 관하여는 유사한 문화를 가진 타 지역의 예를 참고하여 결정하는 것이 지혜이다.

제주와 같이 바다에 의지하여 생계를 유지해온 역사를 갖는 지역은 바람과 바다를 다스리는 신을 숭상하는 문화가 공통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필자가 방문한 외국 지역 중에는 타이베이지역의 용산사(龍山寺), 베트남의 다낭과 오행산의 영응사(靈應寺)가 그러한 예이다.

용산사는 1738년 건립된, 타이베이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사찰로서 타이베이의 관광 명소로 꼽힌다. 용산사는 전형적인 타이완 사원으로 불교, 도교, 토속신앙 등이 공존하고, 경내 좌우에서 용산사를 호위하는 듯 자리한 두 마리 용이 명물이다. 사찰 본전에는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비롯해 사해용왕, 18 나한 등이 있다. 후전에는 바다의 여신 '마주', 장사의 신 '관우', 삼신 할머니 등이 모셔져 있다. 학생, 직장인, 노인 가릴 것 없이 수시로 이곳을 찾아 경내에서 안녕과 행복을 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외국의 관광객들도 직접 향을 사서 피우거나 점괘를 보며 소원을 기원한다.

다낭의 영응사에는 길이 67m의 해수관음상(海水觀音像)이 바다를 향해 우뚝 서있고, 오행산 영응사에도 부처상과 함께 민간 토속신앙에 의거한 다양한 신상들이 있다. 관음보살은 중생들에게 큰 사랑을 베풀고 괴로움을 없애주는 보살인데, 해수관음보살은 혹독한 환경인 바다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보살펴주는 보살이리라. 토속문화에 등장하는 영등할망은 불교의 해수관음보살과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 경상남도 남해의 보리암, 부산 기장의 해동용궁사 이 세 절이 한국의 3대 관음 성지이다. 공통적으로 해수관음상이 서있고, 특히 해동용궁사(海東龍宮寺)는 발아래 바닷물이 보이는 수상 법당(水上法堂)으로서 사찰의 남쪽에 해수관음상과는 별도로 ‘용궁단’이 배치되었고 다른 절과 달리 ‘용왕대제법회’를 갖는 특성을 갖추어 바다와 용과 관음 대불이 조화를 이룬 곳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영등굿보존회 인사, 독지가와 관할 행정기관 공동으로 위와 같은 시설을 방문·견학한다면 시설건축이나 신상제작 및 운영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 매 6년마다 그 상황을 유네스코에 정기 보고하여 평가를 받게 되는데, 2011년과 2017년 보고는 마쳤고 이제 2023년에 보고할 내용을 위하여 뭔가를 해야 할 때다.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보존(safeguarding)하고, 전파·계승(transmission)하며 활성화(strengthening and utilization)하기 위하여 (1)일반인이 무형문화유산을 즐길 기회를 확대하는 것(expanding the opportunities for the public to enjoy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2)문화유산 트레이닝센터를 건축하고 운영을 지원하는 체제를 마련하는 것(providing support for the construction and operation of a heritage training centre) 등은 유네스코의 권장사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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