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이로 아흔아홉 살, 휠체어를 타고 노(老)장군이 들어왔다.

한국전쟁의 영웅이자 대한민국 국군의 산 증인이나 다름없는 백선엽(99)장군.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 등 요직을 거친 군(軍)의 어른이다.

88세의 이기백장군도 휠체어를 타고 입장했다. 역시 국방장관․합참의장 등을 역임했다.

전직 국방부장관 12명, 전직 합참의장, 육․해․공군 참모총장 등 20여명과 380여명의 예비역 장성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군 장성출신 예비역 415명이 한자리에 모인 일은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날(21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평화홀은 ‘별들의 고향’을 방불케 했다.

별 하나에서 별 넷까지 현역시절 그들의 모자와 어께에 달았던 빤짝 빤짝 빛나는 별들은 2천개도 훨씬 넘었을 터였다.

‘안보를 걱정하는 예비역 장성 모임’이 주최한 ‘9.19 남북 군사합의 국민 대토론회’ 자리였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토론회장은 “발 들여놓을 틈도 없었다”고 했다.

약 600여석 자리와 300여개의 급조 임시 석은 물론 로비 입석까지 1500여명이 몰렸다는 것이다.

그만큼 뿜어내는 열기는 뜨거웠고 긴장감은 팽팽했다.

작금의 국가안보 위기상황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반응이 예사롭지 않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토론회에서는 군사관련 전문가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9.19 남북군사합의(이하 군사합의)’를 규탄했다.

논리는 핵심을 꿰뚫어 정연했지만 내용은 처연하고 불안했다. 아마추어 수준에도 못 미치는 문재인정부의 그릇된 안보 방어논리에 대한 질책은 송곳처럼 예리했다.

평화수역 설정에 대해서는 ‘NLL 무효화를 겨냥한 북한의 사술(邪術)적 조치에 넘어간 것’이라고 질타했다.

각급 한미 군사훈련 중지․연기로 인한 군사력의 무력화, 정찰감시 기능 약화에 따른 북한 기습공격 무방비와 수도권 방어 공백 등 ‘군사합의’는 북한의 핵무기 앞에 양손 들고 무장해제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걱정도 많았다. 일종의 ‘항복문서’라는 뜻으로 읽혀진다.

따라서 ‘군사합의’는 “북한 비핵화에 실질적 진전이 없는데도 선제적으로 안보․방위 태세를 허문 최악의 실책”이라는 질책이 쏟아졌다.

토론회에서 박휘락교수(국민대)는 “지금까지 평화를 통해 안보를 추구한 나라는 없다. 안보가 튼튼할 때 평화가 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한국의 안보상황을 ‘완벽한 폭풍(Perfect storm)'에 비유했다.

‘완벽한 폭풍’은 ‘따뜻한 저기압 공기, 찬 고기압 공기, 열대성 습기가 결합하여 강력한 폭풍우를 발생시키는 것’이라 했다.

문재인 정부의 평화 구걸 등 안보위기 불감증과 안보 무능, 북 김정은의 위장 평화공세, 군의 정치화와 비 전문성, 한․미 동맹 약화와 국민의 대북 경계심 약화, 미․북간 믿지 못할 대화 줄다리기 등이 한국 안보를 ‘완벽한 폭풍’속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경고였다.

문재인 정부의 순진한 ‘대북 신뢰 구축’이 한국의 안보․방위 능력을 붕괴 시킬 것이라는 일각의 지적과 우려가 나온 지는 오래다.

안보에 구멍이 뚫리면 신뢰구축은 되레 재앙이 될 수 있다.

‘뮌헨의 교훈(Lesson of Munich)'이라는 국제정치학 용어가 있다.

‘적의 도발 앞에서 평화를 애걸하다 오히려 비극을 초래한다’는 뜻이다.

1938년 영국․프랑스․이탈리아․독일은 뮌헨에서 ‘평화협정문’에 서명했다.

당시 데빌 체임벌린(1869~1940)영국 총리는 ‘뮌헨 평화협정문’을 흔들면서 “앞으로 유럽에서 전쟁은 없다. 우리 시대의 평화가 도래 했다”고 환호작약(歡呼雀躍)했다.

그때 윈스턴 처칠의원은 “전체주의 정권에 대한 굴복과 물질제공으로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총리를 힐난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치독일의 히틀러는 ‘뮌헨 평화협정 선언’ 1년만인 1939년 9월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열었던 것이다.

‘히틀러의 위장 평화공세’ 놀음에 속아 안심하다가 유럽이 전쟁 광풍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뮌헨의 교훈’이라는 용어가 나온 배경이다. ‘평화 협정이 평화를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아니’라는 사례다.

이는 ‘김정은의 위장평화공세’를 경계하자는 교훈에 다름 아니다. 역사의 교훈은 위대하지만 뼈아픈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가슴에 새겨들어야 할 역사적 교훈인 셈이다.

북한의 약속 파기는 습관적 고질이다. 태연한 손바닥 뒤집기다.

1992년, 1994년, 2005년, 2012년의 남북 간, 미북 간, 또는 6자회담 참가국들과의 핵개발 포기나 비핵화 약속도 거리낌 없이 파기해 버렸다.

UN은 ‘북한이 전 세계에서 정전 협정을 가장 많이 위반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동안 43만여 건을 위반했고 이 가운데 3000여건의 침투나 국지 도발이 있었다는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이러한 북한과 평화협정 흥정에만 매달리고 있는 형국이다. 애걸복걸 북한 눈치 보기의 굴욕적 저자세는 국민에게 모욕감을 주고 국민적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있다.

‘군사합의’ 이후에 발생한 두 사건은 ‘군사합의’를 무색케 하는 상징성을 가질만하다.

하나는 지난 16일 강원도 양구 동부전선 최전방 GP(감시초소)에서 일어난 머리 총상 병사 사망사건이다.

당시 군(軍)당국이 ‘군사합의’에 따른 비행절차를 지키느라 의무수송 헬리콥터가 이륙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있었다.

헬기 응급 수송으로 병사의 목숨을 건질 수도 있었는데 ‘군사합의’ 때문에 헬기가 아닌 군용 앰뷸런스로 이송중 병사가 사망에 이르게 한 게 아니냐는 의문인 것이다.

분초를 다투어 생명을 구해야 하는 경각의 상황인데도 북한에 통보 절차를 거쳐야 하는 ‘군사합의’는 누구를 위한 합의인가.

또 있다. 지난 3일에는 우리어선 1척이 동해북방 해역에서 조업하다 북한군에 나포 됐다가 2시간 후에 풀려난 사건이다.

정부가 우리어선 피랍방지와 안전 어업을 위해 정한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의 일이었다.

그런데도 북한군이 우리 어선을 나포했고 정부는 이를 6일간이나 몰랐다니 ‘9.19 군사합의’가 무색해지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을 좋아 할 사람은 없다. 평화를 싫어할 사람도 없다. ‘전쟁과 평화’는 동전의 양면처럼 극단이다.

평화는 누가 공짜로 가져다주는 선물이 아니다. 스스로 지켜야 하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대명제인 것이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에 대비하라”.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자주 인용되는 '평화의 격언'이다. 고대 로마의 전략가인 베게티우스의 말이다.

한 때 어께에 별을 달고 국방일선에서 나라를 지켰던 노병들의 토론회 소식을 들으면서 되새겨지는 ‘전쟁과 평화’의 금과옥조(金科玉條)다.

국가 안보 위기 상황을 키우는 문재인 정부에게 전하고 싶은 경구(警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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