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성평등정책관은 지난 22일 제주 공직자 성역할 고정관념 진단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양호’. 10월 30일부터 11월 15일까지 ‘성역할 고정관념 수준조사’를 실시한 결과 도내 공직자들의 성역할 고정관념 정도가 대체적으로 양호한 수준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조사를 통해 ‘양호’라는 결론을 내린 성평등정책관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성평등정책관이 실시한 이번 성역할 고정관념 수준조사는 도 내부행정망 설문시스템을 이용해 자율 참여 방식으로 진행됐다. 공무원 351명이 참여했고, 설문 항목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의 2018년 교육자료에서 ‘양성평등 개념과 관계이해’에서 발췌한 6개 분야 30개 질문으로 구성했다. 얼핏 보면 정상적인 조사처럼 보인다.

이번 조사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성역할 고정관념을 개선하는 데 별다른 관심이 없는 공무원들은 이번 조사에 참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조사가 자율적 참여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이는 성평등정책관 관계자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자율 참여 방식으로 진행된 이유에 대해 성평등정책관 관계자는 협조를 구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도 내부의 성역할 고정관념을 조사하는 일마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도정이 성평등정책관을 대하는 태도를 짐작케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타 기관에서 이와 같은 조사를 실시한 바도 없다. 즉 도 공무원들의 성역할 고정관념이 ‘양호’한지 아닌지를 평가할 근거 자체가 없다. 성역할 고정관념의 문제를 발굴하고 개선해나가야 할 성평등정책관이 과학적 근거 없이 도 공무원들의 성역할 고정관념이 양호하다는 자의적 평가를 내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도 공무원들이 성역할 고정관념이 양호하다는 알리바이를 성평등정책관이 만들어 준 셈이다.

이쯤 되면 성평등정책관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성역할 고정관념을 가진 공무원들을 위한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역할은 하지 말아야 한다. 성역할 고정관념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번 설문 조사에 자율적으로 참가한 공무원들의 시간이 아깝다.

올해 제주도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성평등정책관을 신설했다. 그러나 전국 최초라는 타이틀보다 중요한 것은 실질적인 성평등 관련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직사회 내 성적 불평등, 성역할 고정관념에 대한 문제의식 공유와 정확한 조사가 필요하다. 잘못 끼워진 단추를 풀고 제주 공직자들의 성역할 고정관념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해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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