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원희룡 도지사를 규탄하며 도청으로 진입하려다 경찰에 가로 막혔다.(사진=김재훈 기자)

원희룡 도지사가 도민들의 정책 판단 역량을 믿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원 지사는 녹지국제병원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의 개설 불허 권고안을 따르겠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수개월에 걸친 공론조사에 참여한 도민들이 여러 문제를 숙의한 끝에 만든 권고안이 지닌 의미를 모르는 바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원 지사는 자신의 입장을 헌신짝처럼 뒤집고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허가했다. 원 지사는 권고안을 수용하지 않은 여러 이유를 대긴 했지만, 공론조사에 참가한 도민들의 정책 판단이 틀렸다는 것이다. 원 지사가 발표한 녹지병원 개설 허가 논리에 공론위가 검토하지 않은 새로운 이유라도 들어가 있을까? 없다. 공론조사에 참여한 도민들은 원 지사가 제시한 이유들까지 고려한 끝에 개설 불허를 결정했다. 결국 도지사가 자신을 뽑은 도민의 정책 판단과 역량을 무시한 것이다. 도지사가 도민을 신뢰하지 못한다고 밝힌 셈이다.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5일 원희룡 도지사를 규탄하며 제주도청으로 진입하려다 경찰 및 도 관계자에 막혀 도청 현관 앞에 연좌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김재훈 기자)

원 지사의 결정에 대한 도민들의 분노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원 지사가 스스로 자초한 일이기 때문이다. 원 지사가 기자회견을 통해 “어떤 비난도 달게 받겠다”고 말한 걸 보면 원 지사도 이번 문제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인식은 하고 있는 모양이다. 

정책 판단에 있어 민주적인 결정을 도모하기 위해 제주도에 처음 도입한 숙의민주주의는 내팽개쳐졌다. 공론조사를 위해 들어간 세금이 3억원이 넘는다. 공론조사 도민참여단은 많은 시간을 들여 녹지국제병원 개설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을 거쳤다. 도민들은 그런 공론조사가 수포로 돌아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제주도가 앞으로 정책 결정을 하는 데 있어 다시 공론조사를 실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도지사가 다른 다른 정책에 대한 도민 공론조사를 하겠다 하더라도 이번처럼 권고와 무관하게 마음대로 결정할 텐데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제주 지역 시민사회 단체들은 5일 도청 앞에서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원희룡 지사의 즉각 퇴진을 요구했다.(사진=김재훈 기자)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짓밟혀온 민주주의적 정책 판단과 결정에 대한 도민의 열망을 원 지사가 다시 한 번 꺾어버렸다. 도민의 정치 참여 의지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미 결론을 정해두고 있었다면 차라리 공론조사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원 지사는 공론조사에 참여한 도민들과 민주주의를 욕보였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원 지사의 이번 결정을 반민주적 폭거라고 규정하는 시민진영의 비판은 정당성을 확보한다. 도민을 믿지 못하는 도지사를 도민은 신뢰해야 할까. 아니, 신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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