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이유근/ 한국병원과 한마음병원 원장을 역임하고 지역사회 각종 봉사단체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는 아라요양병원 원장으로 도내 노인들의 의료복지를 위해 애쓰고 있다.

희룡 지사가 드디어 용단을 내렸다. 녹지병원이 완공된 지 1년 5개월 만이다. 이처럼 긴 기간 아무 법적 하자가 없는 허가를 미룬 것은, 비록 많은 반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행정의 횡포나 다름없다. 그러나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이 많은 표를 잃을 것을 알면서도 도민의 이익을 위해 결단을 내린 것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지금은 많은 비난을 받겠지만 역사적으로 올바르게 평가 되리라 확신한다.

사실 녹지병원 문제는 제주도민에게는 별 영향을 끼칠 것이 아니어서 그리 문제 삼을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중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세워지는 병원이어서 제주도민들이 이용할 만한 장점이 없기 때문이다. 일반 병원으로서는 필자가 보기에 서귀의료원과도 경쟁상대가 되지 못 한다. 개설된 과가 중국관광객들을 염두에 두고 정하였기 때문에 성형외과와 피부과를 주축으로 하고 혹 건강검진 환자를 보기 위한 내과와 가정의학과 정도여서, 일반 환자들은 물론 심지어 건강검진을 받으려는 분들조차 건강검진에서 가장 중요한 영상의학과도 없는 병원을 누가 가려고 할 것인가!

이런 병원을 공공자금을 쓰는 것도 아니고 외국 자본이 짓는데 왜 이리 시끄러워졌는가?

그것은 시민단체 등에서 세 가지 그릇된 전제로 반대를 부추겼기 때문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 첫째는 이름이 영리병원이어서 병원이 영리를 추구하면 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병원치고 영리를 생각하지 않는 병원이 어디 있는가? 도립의료원들마저 적자가 많다고 도의회에서 매 해 지적을 받고 있는데 병원들로서는 수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병원들조차 수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병원은 수익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둘째는 병원이 떼돈을 벌고 있어서 병원 수익을 가져갈 수 있는 병원이 생기면 너도나도 그런 병원을 개설하려고 해서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무너질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 우리나라 의료계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다. 지금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85% 정도는 사립의료기관이다. 이런 곳에서는 지금도 이익이 생기면 얼마든지 가져갈 수 있다. 나머지 15%에 해당하는 의료법인 병원이나 공공의료기관에서만 수익이 생겼을 경우 병원에 재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즉, 현재도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85%가 영리병원과 하등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다만 의사만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병원들이 떼돈을 벌고 있다는 인식도 잘못된 것이다. 의사들의 연봉이 높기 때문에 일반인들로서는 당연히 병원들도 돈을 많이 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수가는 국가에서 정하므로 병원 수입은 한정되어 있는데 봉직의사들의 봉급이 많아지면 병원의 수익성은 떨어지게 된다. 이것은 프로 야구선수들이 연봉을 많이 받지만 구단은 적자인 우리나라 야구단과 비슷하다.

우리나라 병원들 중에는 영리병원과 같은 일반병원 형태로 운영하다가 의료법인으로 바꾼 사례가 여럿 있다. 영리병원이 떼돈을 벌면 그냥 영리병원 형태인 일반병원으로 할 터인데 왜 증여세까지 내면서 의료법인으로 바꿀까? 말을 바꾸면 의료법인 병원이 영리병원으로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물론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영리병원이 우후죽순 격으로 많이 생겨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무너질 것이라는 것은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한다는 기우에 불과하다.

내국인에 의해서 영리병원이 세워져도 우리나라는 전 의료기관이 강제적으로 의료보험기관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의료비는 비영리병원과 다를 바가 없다. 의료보험에 해당되지 않는 의료행위도 정부의 통제를 받는다. 다만 의료행위 이외의 서비스를 달리 하면서 그에 따른 요금을 징수할 수는 있을 것이다. 시민단체에서는 지금 시행되고 있는 의료보험법이 비민주적이어서 민주화가 진전되면 개정되지 않겠나 걱정하고 있다. 사실 이 법은 다른 민주주의 국가에서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했으면 하면서도 비민주적 법률이어서 도입을 못 하고 있다. 그래서 영리병원들이 생겨나면 이 법도 결국 고쳐질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민주주의 정치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주장이다.

여러 해 전에 의사협회에서 이 법이 비민주성을 들어 위헌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다. 그때 헌법재판관들도 이 법의 비민주성을 인정하였지만 국민의 혼란을 우려하여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렇다. 이 법은 유신 독재시절이니까 제정할 수 있었지 일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만들기 어려운 것보다 고치기가 더 어려운 법이다. 법관들도 비민주적인 것을 알면서 위헌판결을 내릴 수 없는 법을, 표를 먹고 사는 국회의원들이 고칠 수 있을까? 국회통과에 필요한 과반수는 고사하고 법 개정발의에 필요한 20명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법을 개정하는데 찬성표를 던진다는 것은 다음 선거에 낙선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은 이 법을 고친 국회의원을 다음에도 지지하겠습니까?

셋째는 미국의 ‘식코’ 사태가 영리병원 때문에 생겼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시민단체들이 하는 거짓말 중에서 가장 먹혀들어가는 것이다. ‘식코’와 같은 현상이 우리나라에도 생긴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며, 필자가 앞장서서 막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영리병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시민단체들이 주장에 의하면 13%다. 이 13% 때문에 그런 끔직한 현상이 어떻게 생길 수 있을까? 그러면 미국보다 영리병원이 더 많은 유럽 여러 나라나 호주에서는 왜 ‘식코’와 같은 현상이 생기지 않는가? 특히 네덜란드에는 공립병원은 없고 영리병원이 72%나 된다고 하는데, 왜 ‘식코’와 같은 현상이 생기지 않는지를 설명을 하지 못 하고 있다. 그것은 시민단체들의 주장이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식코’와 같은 현상이 생기는 것은 영리병원 때문이 아니고 미국의 사법제도 때문이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미국에는 다른 나라보다 변호사 숫자가 2배나 되므로 이 사람들이 밥벌이를 하려면 소송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의료소송이 늘어나니 의료기관에 지불하는 보험회사의 보험료가 증가하고, 보험회사의 보험지급률이 높아지니 병원들의 배상보험료가 올라가게 되고, 병원 지출이 많아지니 의료수가가 자율인 미국에서는 병원들이 의료수가를 올리고, 그러면 돈이 없는 사람들은 그 비싼 의료보험료를 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파도 병원에 가기가 어렵게 되어 ‘식코’와 같은 현상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부안 방폐창 사태나 광우병 파동, 천성산 도룡용 사건과 너무나 닮았다. 부안보다 인구가 더 많고 관광지인 경주에 설치할 수 있는 방폐창을 부안에 못 세우는 이유를 알 수 없으며, 지금은 시민단체 회원들도 먹고 있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그렇게 나라를 뒤흔들 만한 사안이었는지, 그리고 천성산 도룡용은 정말 멸종 되었는지 궁금하다.

녹지병원 개원을 불허하였을 경우 입게 될 손해가 막심하다는 것은 웬만큼 상식이 있는 사람들은 금방 알 수 있다. 그것을 생기지도 않을 위험과 혹시 표를 잃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 허가를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누가 진정한 지도자라고 할 수 있을까?

많은 비난이 원지사에게 쏟아질 것이다. 그러나 역사 앞에 선다는 각오로 담대하게 처신하시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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