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이영철/ 한솔제지 퇴직. 트레킹작가. 세계 10대 트레일 완주/ 저서 4권/ 안나푸르나에서 산티아고까지/ 동해안 해파랑길/ 영국을 걷다/ 투르 드 몽블랑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밀로의 비너스'를 보면 ‘모나리자’처럼 몹시 눈에 익다. 두 팔 없는 이 팔등신 미녀는 어릴 적부터 교과서를 통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멀게 느껴진다. 가까이 가기엔 너무 먼 여신의 이미지다. 키 2미터가 넘는 실물 앞에서 어떤 범접할 수 없는 기운에 압도된다.

런던의 대영박물관에서 또 다른 비너스를 만나면 다르다. 낯설긴 하지만 가깝고 친숙한 느낌이 든다. 이 박물관의 그리스로마관에 전시된 '렐리의 비너스'는 여신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냥 평범한 여인네의 모습이다.

목욕 중에 누군가 자기를 훔쳐본다는 것을 알고는 화들짝 놀라며, "뭐예욧!" 소리치고 있다. 훔쳐보던 관객이 멈칫 했다가 괜히 쑥스러워 혼자 배시시 웃고 만다.

대영박물관은 입구부터 사람 키 두 배만한 거대 석상 두 개가, 막 들어선 입장객들을 압도한다. 둘 모두 이집트가 가장 번성했던 시대의 파라오인 아메노피스Amenhotep 3세의 전신상이다.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할 수 있게 해준 로제타스톤은 원래는 나폴레옹 군이 발견했으나,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함으로서 이곳에 있게 되었다.

대영박물관의 방대한 전시관들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북적대는 곳은 이집트 조각관이다.그 중에서도 로제타스톤이랑 인접해 있는 람세스 2세 흉상 주변이 관객 밀집도가 가장 높았다.

어찌 보면 대영박물관을 대표하는 작품이겠는데, 오른쪽 가슴에 총 맞은 것처럼 정교하게 구멍이 뚫렸다. 장거리 운반을 위해 불가피하게 뚫어놓았겠지만 어쩐지 잔인해 보인다. 투탕카멘의 흉상도 머리와 어깨 부분이 많이 손상되어 있다. 열 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이십 세를 못 넘기고 암살된 모양이다.

우리가 익히 보아 온, 화려한 황금마스크의 소년왕 사진에 비하면 흉상은 초라한 느낌이다. 이집트 조각관에서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미라관이다. ‘클레오파트라’란 이름의 미라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시저와 사랑을 나누거나 독사에 물려 자살한 여왕이 아닌, 일반 귀족 여인의 미라이다.

태케브케넴Takhebkhenem 미라도 그렇고 시체를 천으로 감싸고 밴드로 휘감은 생생한 모습에선, 수천 년 긴 세월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몇 년밖에 안 된 무덤을 파헤쳐 관에서 막 꺼냈음직한 으스스함이 느껴진다. 특히 태케브케넴 미라의 경우는 엑스레이로 찍은 사진까지 바로 옆에 진열되어 있다. 선사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골격이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망자의 시신을 온전하게 오래 보존해야 언젠간 다른 시공간에서 자신들이 다시 부활할 수 있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미라에 많은 공을 들인 이유들 중 하나였다.이집트의 건조한 기후 조건이 미라 시신 보존에 유리한 영향을 주기도 했다.

게벨레인 남자Gebelein Man의 미라는 관 전체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하다. 죽은 후 뜨거운 사막 기후에서 급속 건조되면서 자연스럽게 미라로 보존될 수 있었던 모양이다. 상이집트의 게벨리온 사막에 묻혀 있다가 발견된 이 남자는 BC 3,500년 경 사람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구부려 엎드린 불편한 자세인 것으로 보아, 주변 사람 없이 홀로 외로운 죽음을 맞았나 보다.

무려 5,500년 전에 살았던 인간의 모습과 살갗을 바로 코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대영박물관의 힘이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마음이 불편할 수도 있다. 사람의 두개골과 팔다리뼈가 널브러진 나무 관이, 뚜껑 활짝 열린 채 만인에게 보여지는 것이다. 미라를 포함한 이런 유골들은, 냉정하게 보면 무덤을 도굴한 범죄행위의 산물일 뿐이다. “대영박물관에서 영국의 문화를 얼마나 접했습니까?”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대답이 궁색할 것 같다.

영국의 문화가 아닌 것이다. 강대국일 때 영국의 힘이 끌어 모은 세계의 문화유적들이다. '브리티쉬 뮤지엄British Museum'은 어찌 보면 '영국 박물관'이라고 축소해 부르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영제국 시대의 유물들을 모아놨다는 의미에서는 '대영 박물관'이라고 그대로 부르는 게 더 어울려 보이기도 한다.

이란 고원에 인류가 나타난 건 십여만 년 전이다. 오래 세월에 걸쳐 이들은 더 살기 편한 땅을 찾아 조금씩 이동했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주변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은 먹거리를 구하기가 쉬웠다. 이곳으로 스멀스멀 몰려든 원시인들은 먹고사는 방식을 차츰 차츰 개선시켜나갔고, 기원전 1만 년부터는 큰 혁신을 이루어 소위 신석기 시대란 걸 열었다.

이들은 핏줄끼리 점차 종족을 이뤄나갔다. 그 중에서도 수메르 인, 아시리아 인, 바빌로니아 인들이 도드라졌는가 보다. BC 4,000년을 지나면서 보니 이곳 메소포타미아에는 특히 수메르 인들이 잘 먹고 잘 살며 인류 최초의 ‘문명’이란 걸 꽃 피우고 있었다. BC 1,000년쯤 되자 종족 간 영역 다툼의 싸움도 그 규모가 커졌다.

메소포타미아 북쪽의 아시리아는 남쪽의 바빌로니아와 싸워 이기고, 서쪽의 이스라엘까지 흡수시키며 중근동 일대를 통일했다. 이후 아시리아가 쇠퇴해지자 바빌로니아가 잠시 부흥하더니, 동쪽에서 일어난 페르시아 왕국이 오리엔트 세상을 재패했다. BC 500년경이다.

페르시아는 기세등등하게 서쪽으로 그리스까지 밀고 들어왔으나 결국은 실패했다. 그 유명한 마라톤 전투와 살리미스 해전 등을 통해 동방인 페르시아는 서방세계에 참패하고 물러났다. 얼마 후 역사는 반전되었다. 그리스에서 일어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오리엔트로 뻗어나가 페르시아를 정복했다.

이후의 세계역사는 오리엔트와 그리스가 융합되는 헬레니즘 시대를 거쳐 대로마 제국의 시대로 들어섰다. 대영박물관에서 아시리아 관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집트나 그리스로마 관에 비해서 적지 않다. 6,7,8,9,10관까지 다섯 개의 공간에 넓게 걸쳐 있다. 고대 오리엔트에서 세계 최초의 제국을 건설한 주역으로서의 아시리아 위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시리아 왕국의 최고 전성기는 기원 전 9세기 중반 아슈르나시르팔Ashurnasirpal 2세 때였다.그는 지금의 이라크 북부에 해당하는 님루드Nimrud로 수도를 옮겨 새 궁전을 지었고, 왕의 힘과 위대함을 과시하는 수많은 조각과 부조들을 남겼다. 아시리아 관의 전시물들에는 왕의 석고 부조를 포함하여, 님루드의 궁전을 장식하던 유물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전시실 벽면에 줄지은, 전쟁과 사냥 또는 행렬이나 의전에 관한 부조물들은 활동사진을 보는 듯 사실적이고 생생하다.

말이 끄는 전차 위에서 사냥감을 향해 활을 쏘는 모습, 그물로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어부, 농사와 목축 생활을 섬세하게 묘사한 부조, 군대의 행렬과 위용을 과시하는 장면 등이 이어진다.

특히 사자를 조연으로 삼고 왕이 주연을 맡은 작품들이 유독 눈에 띈다. 위대한 아슈르나시르팔 왕이, 달려드는 사자와 태연하게 맞서 싸우고 있다. 왼손은 사자 목덜미를 막아 쥐고 오른손 칼로는 사자의 심장을 찌르는 모습은 그저, 장쾌하다. 울부짖는 사자들의 표효가 전시관을 가득 메우는 느낌이다.

사자는 아시리아 인들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었던 모양이다. 아시리아 관 입구에는 거대하고 독특한 모습의 사자상이 양쪽에 하나씩 서있다. 머리는 인간이지만 몸통에는 독수리의 날개가 달린 반인반수의 형상이다. 정면에서 보면 꼿꼿하게 서 있는데 옆에서 보면 다리가 다섯에, 걸어가는 동작임을 알 수 있다. 악령으로부터 왕의 궁전을 보호해준다는 수호상 라마수Lamassu이다. 아시리아 민족의 수호신이다.

우리나라 시골에도 천하대장군이나 지하여장군의 모습으로 마을 입구에 장승들이 서 있다. 경계 표시이기도 하면서 외부로부터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걸 막아주는, 마을의 수호신이다.

라마수는 이곳 대영박물관 말고도, 파리 루브르나 미국과 독일의 박물관들에도 다수 옮겨져 있다고 한다. 중동 지역에도 여러 곳에 여전히 유물로 남아 있는 모양이다.

그 중에서도 지금의 이라크 북부 모슬 지역은, 옛 아시리아의 수도 님루드 근처인 만큼 라마수 등 남아 있는 유적이 상당하다고 한다.

2015년 봄에 국제적으로 이슈가 된 뉴스가 있었다. 이슬람 극단주의 IS 세력이 그들의 점령지 이라크 북부 모슬 주변에서 고대의 유물들을 대량 파괴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라마수로 상징되는 중근동 고대의 토속 신앙이, 훨씬 이후에 시작된 이슬람 신앙의 순수성을 오염시킨다는 이유였던 모양이다. 정신적으로 점점 피폐해져 가는 우리 현대인들이 수천 년 인류 역사가 깃든 소중한 유물을, 너무도 허망하게 한 줌 흙으로 만들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아시리아 관 전시물들은 물론 중동 지역 현지에서 영국이 힘으로 강탈해 온 유적들이다.

허나, 이곳 박물관에 보관돼 있음으로 해서 인류역사의 고귀한 보물로 보호받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영국이 주장해 온 대영박물관 합리화 논리일 것이다. 앞으로도 반환하지 않고 그대로 자신들이 보존한다는 영국의 방침엔 변함이 없어 보인다. 한 도시의 국립박물관에서 그 나라의 문화가 아닌, 과거의 약자 나라에서 강탈해온 유물들만을 만난다는 건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중동 현지에서 IS 세력이 자행하는 저런 파괴와 만행의 소식을 접하고 보면, 은근히 영국의 입장에 편들고 싶어진다. 과거 식민지 시대의 문화재 갈취가 만행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 문화재들은 해당 지역의 소유물이긴 하지만 인류 공동의 소중한 자산이라는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 보물들이 이곳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고 보면, 지금의 대영박물관의 가치가 새삼 돋보여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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