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양길현/ 제주대학교 윤리교육과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고 제주미래담론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2018년의 대한민국을 돌아보면 두 개의 양극단이 보인다. 하나는, 평창 올림픽으로 시작된 남북한 화해협력의 물꼬가 크게 트여나가는 새 시대의 것이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은 멀다. 그렇지만 혹 2019년에 2차 북미회담과 김정은의 서울 답방이 이루어지면, 한반도 평화의 물줄기는 크게 달라지리라 보아 무방하다. 그건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 될 수 있기에 더욱 기대와 염원이 크다.

다른 하나는, 최저임금 문제를 놓고 정부와 경제계의 샅바싸움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불만과 불안의 것이다. 기실 최저임금은 문재인 정부만의 과제가 아니고, 또 쉽게 하루아침에 해법을 찾을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이념도 조정이 쉽지 않지만, 돈 문제도 타협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해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고 있는 한국 기업들의 입장에서 보면, 최저임금 인상 문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대처는 너무 경제 현장의 현실을 모르는 것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세계적인 대세인 최저임금 인상 문제를 탁상에 올리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촛불정부라 자칭한다면, 더욱 그렇다. 증세 없이 복지를 얘기했던 박근혜 정부와는 달리 복지를 늘리고 세금을 늘려나가는 새로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세금을 늘린 연후에 복지를 증대시키는 게 아니라 복지를 확대해 나가면서 그에 소요된 재원을 찾아나서는 발상의 전환이 요청된다.

이 글은 바로 2019년 최저임금 문제를 놓고 다시 원점에서 정부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한번 생각해 보기 위한 시론이다. 그 시작으로 먼저 지난 11월-12월에 걸쳐 프랑스 전역에서 불꽃처럼 확대되어 나갔던 이른바 ‘노란조끼 시위’(gilets jaunes)가 왜 일어났는지를 보기로 하자.

주지하다시피, 노란조끼 시위는 일차적으로는 프랑스 정부의 유류세의 인상으로 촉발되었다. 그렇지만 그 근저에는 높은 생활비 부담과 이를 방관하고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다고 인식되는 마크롱 정부에 대해 일반 국민들이 불신과 분노를 표하게 되면서 더욱 격화되어 나갔다. 더 나은 삶과 더 많은 일자리를 기대하여 마크롱을 대통령으로 선택했지만,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다는 것이다. 먹고 사는 데 허덕이고 있는 일반 국민들에게 유류세 인상은 불난데 기름 붓는 격이었다. 이 점은 한국의 문재인 정부에게도 그대로 해당되는 측면이 있다. 논쟁의 여지는 있겠지만, 최저임금 인상으로 서민들의 삶이 오히려 어려워졌다는 담론 공방에서 정부가 밀리고 있다.

왜 그런가? 소득주도성장론에서 무엇이 문제인가? 필자가 보기에 문제는 여전히 문재인 정부도 담론과 목표가 성장에 치우쳐있다는 데에 있다. 실제 기업은 성장이 아니라 ‘기업(주식)가치 높이기’에 목표를 두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에게는 성장을 운위하면서 기업의 논리를 내세울 수 있는 것은 기업가치 증대가 일반 국민들에게도 이득을 갖다 주는 스필오버 효과가 있음을 설파하는 데 나름 설득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업 못지않게 정부는 더 더욱 그 근본에서 추구하는 목표가 성장이 아니라 공적 가치 추구에 있음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성장(자유)만이 아니라 공정(평등)과 복지(복지)를 추구하는 데도 그 중대한 목표가 있음을 적극 내세워야 기업과의 담론 논쟁에서 이길 수 있다.

다시 노란조끼 시위로 돌아가 보면, 프랑스 국민들의 시위는 단순히 분노만이 아니라 새 것을 찾아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전향적이고 급진적이다. 하루아침에 이들의 요구가 실현되리라 보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유-평등-박애의 새 시대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자못 경이롭기까지도 하다. 여기서 잠시 노란조끼 시위자들의 요구를 요약하면, ‘부유세 도입, 최저임금 인상, 최고임금 제한, 부동산 임대료 억제, 은퇴 보조금 증액, 아웃소싱 전면 금지’ 등이다. 노란조끼 시위를 ‘현대판 프랑스혁명’으로까지 언명되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의 지난 촛불시위에 비해 그 요구 사항에 있어 노란조끼 시위는 불평등 문제를 직접 목표로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훨씬 도전적이고 프랑스적이다.

한국에서는 최저임금 인상 문제 하나만 놓고도 문재인 정부가 휘청거리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문제는 21세기 세계적 대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왜 비판과 공격에 당하고만 있는 것일까? 그것은 보다 근본적인 사안으로서의 부의 편중과 불평등 문제를 정책 아젠다에서 도외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정부가 자영업자와 영세기업가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보수언론의 담론에서 밀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통계를 보면, 한국에서는 상위 1%가 12% 넘게, 그리고 상위 10%는 44%가 넘게 소득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재벌기업 포함 이들 상위 소득자들은 최저임금이 인상된다고 크게 휘둘릴 일이 없다. 문제는 25-26%에 달하는 한국의 자영업자들과 영세상공인들에게 최저임금 인상은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사안이 그렇다면 프랑스처럼 한국에서도 이들 영세자영업업자들의 시위가 없는 게 이상할 정도이다.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소득주도성장을 펴나가려고 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최저임금 인상분의 50%를 정부가 보전해 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2013-2017년 4년 연속 정부예산 불용액이 매해 연속 10조원대가 된다고 한다. 이 불용액을 대대적으로 최저임금 보전에 쓰게 되면, 결국 2018년 16.4%와 2019년 10.9%의 인상은 8%대와 5%대로 낮추어져 전체 국민들이 다 윈원 하게 될 수 있는데, 그게 왜 그렇게 어려운 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를 위해서 앞으로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문제를 기업 성장의 논리가 아니라 종업원 복지의 논리로 접근했으면 한다. 그게 대기업이든 영세기업이든 기업가에게 복지를 맡기는 게 아니라 기업과 정부가 손을 잡고 종업원의 복지를 향상시켜 나가자고 하는 데, 누가 반대할 수 있겠는가. 실제 2019년 최저임금 인상 6개월 유예에 대한 리얼미터의 찬반 여론조사를 보면, 반대 44.4% 대 찬성 44.1%로 팽팽하다. 그러니 정부가 너무 기죽을 필요는 없다. 다만 어떻게든 특히 영세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짐을 덜어주려는 담대하면서도 치밀한 정책적 접근이 요청될 뿐이다.

여기에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에서 요구된 바, 부동산 임대료의 인상을 억제하는 특단의 조치가 병행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자영업자와 영세상공인들에게 짐으로 작용하고 있는 부동산 임대료의 압박 문제를 그냥 오래된 관행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심각성이 너무나 크다. 사실 보수언론에서 제대로 잘 나루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부동산 임대료 문제는 임금 인상 문제보다 더 긴급하고 절실한 문제이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서 조물주 위에 ‘갓물주’가 존재한다는 자조가 나오는 한, 자영업자와 영세상공인의 어려운 상황은 전혀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보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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