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70년 전 군법회의에 대한 재심 선고공판에서 4.3생존수형인들이 사실상 무죄 취지인 공소 기각 판결을 받은 뒤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기쁨을 나누고 있다.(사진=김재훈 기자)

제주4.3 당시 불법군사회의로 모진 고문을 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한 생존수형인들이 70년 만의 재심에서 사실상 무죄 판결을 받았다.

17일 오후 1시 30분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에서 열린 4.3생존수형인 재심 선고공판에서 제갈창 제2형사부 제갈창 부장판사는 “피고인(재심청구인)들에 대한 공소를 모두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90세 안팎의 어르신들은 “70년 한을 풀었다”며 웃음을 내비쳤다. 2017년 4월 19일 김평국 할머니 외 17명이 제주지방 법원에 4.3재심청구서를 제출한 뒤 약 2년 만에 얻어낸 결과다. ‘빨갱이’, ‘죄인’이라는 손가락질과 오명을 70년 만에 풀게 되었다.

재판부는 “재심 당시 피고인 심문과 당시 상황에 대한 자료를 통해 사후적으로 추단하고, 피고인 심문을 통해 얻은 질문내용과 진술내용을 공소사실에 넣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재심청구인들의 공소사실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은 것으로 봤다.

재판부는 4.3 당시 단기간에 많은 사람들을 군법회의로 회부하면서 예심조사나 기소장 전달 등이 제대로 이뤄졌을 거라고 추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예심 없이 군경의 의견대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 재심청구인들에 대한 군법회의는 법률이 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법원으로 들어서는 4.3생존수형인(사진=김재훈 기자)

선고 뒤 4.3생존수형인들과 제주4.3도민연대 등은 끝난 뒤 제주지방법원 앞에 모며 기자들 앞에 섰다. 제주4.3도민연대는 어르신들의 가슴에 꽃을 달아주었다. 이들은 4.3특별법을 개정하라고 구호를 함께 외치기도 했다.

기분이 어떠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김평국 할머니는 “이따가 소주 마실 것”이라며 웃었다. 김 할머니는 “망사리 속에 가둬졌었는데 풀려났다. 이름에 빨간 줄 없어지고 족보를 자손들이 볼 때 옥살이를 한 흔적이 없어지게 돼 그것이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70년 전 재판도 치르지 않고 아무 죄 없이 고문과 수형생활을 했다”고 회고한 박동수 할아버지는 이번 판결에 “말로 다 할 수 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사실상 무죄 취지인 공소기각 판결에 기뻐하고 있는 4.3생존수형인들(사진=김재훈 기자)

재심 청구 재판은 지난해 2월 5일 처음 열렸다. 공판이 이어졌고 재판부는 증인 심문 등을 거쳐 9월 3일 4.3재심청구에 대한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법이 죄인을 처벌하는 것만 아니라 국가권력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을 지켜내기도 해야 한다는 형사소송의 기본이념을 들며 재심청구를 받아들이는 판결을 내린 것.

4.3생존수형인들과 제주4.3도민연대 등은 내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을 찾아 1만 4000여 4.3원혼들에게 오늘의 소식을 전할 예정이다.

재심 첫 공판은 지난 10월 29일 시작됐다. 재판부는 재심 청구인들이 고령인 점을 들며 빠르게 재판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주 쟁점은 공소사실을 특정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자료도 남기지 않은 군법회의에서 유죄로 결정된 재심 청구인들을 범죄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4.3생존수형인들을 변론하며 재심 결정과 공소 기각을 이끌어낸 김세은(좌), 임재성 변호인(사진=김재훈 기자)

결심재판이 열린 지난 12월 17일 검찰 측은 재판부에 재심청구인 18명에 대한 공소 기각을 구형했다. 공소사실을 특정할 수 없었기 때문. 재판부와 검찰 측은 재판 내내 이 재판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고려했다.

재판부는 재심청구인들이 정당한 재판을 통해 ‘무죄’를 증명할 기회를 주고자 하는 의지를 내비쳤고, 검찰 측은 재판 중 역사적 고통을 겪은 재심청구인들을 배려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증인심문도 4.3생존수형인들의 당시 행적을 추궁한다기보다는 그들이 입은 피해와 역사적 사실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한편 이번 판결을 통해 생존수형인 12명의 2차 재심청구와 이미 숨진 2500명에 대한 재심 청구도 예고돼 있다. 하지만 실태 조사 및 유가족과 협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고 예산과 인력 확보에 있어서도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도민들의 관심이 더욱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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