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양길현/ 제주대학교 윤리교육과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고 제주미래담론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30년 전에 베트남 호치민을 처음 방문한 적이 있다. 제주대로 오기 전 서울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에 다니고 있을 때, 한국동남아연구회의 일원으로 베트남, 필리핀, 미얀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사회를 현장 답사하는 기획의 하나인 여정이었다. 당시에는 막 베트남식 개혁개방인 도이모이(Doi Moi)가 출범을 하고 있는 때인지라 기대도 넘치고 또 우려도 없지 않은 그런 때였다.

하도 오래 전일이지만, 가장 강렬했던 기억은 우리의 현지 베트남인 가이드의 신상이었다. 깡마르고 담배를 즐기며 별로 말이 없는 그 베트남 가이드는 이른바 스스로는 조국해방전쟁이라고 지칭하는 제2차 인도차이나전쟁을 얘기할 때면 눈이 반짝거리고 목소리도 높이지면서 말도 많아졌다. 베트콩의 일원으로 지하 전쟁에 직접 참여를 한 자부심이 한쪽에 있는가 하면, 통일 이후에는 자본주의로 변신하고 있는 베트남을 보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베트남 통일 이후 북한의 김일성대학에 유학 갔다 온 바람에 한국말을 잘 하게 된 그 가이드는 도이모이 시대에 이르러 한국인 관광객 가이드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었다. 게릴라 전투의 계급장과 혁혁한 전과는 이미 안방 어느 귀퉁이에 걸려있을 뿐, 자신의 미래 삶에는 크게 도움이 안 되는 듯 했다. 그나마 한국어를 할 수 있어서 관광 가이드로 짭짤한 수입을 낼 수 있는 게 사후 보상일 것이었다. 그렇게 통일 이후 베트남의 경제사정은 결코 호락하지 않았다. 전쟁과 정치 그리고 경제는 각각 별개의 영역이자 다른 수완을 요하는 것인 모양이다.

지난 주에 다시 호치민을 찾게 된 것은 필자가 제주국제협의회 회장을 맡으면서 ‘국제’에 어울리게 회원들과 세계 어딘가에 가 보자는 기획에서였다. 호치민에서 의류 수출 공장을 3개나 갖고 운영하고 있는 김세억 제주국제협 부이사장의 추천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여, 베트남 호치민을 첫 번째 연수지로 잡았다. 베트남 호치민에 부산, 인천 등 주요 지자체가 파견되어 호치민과의 교류협력을 하고 있다는 주호치민 정민철 부영사관의 얘기를 들으면서, 제주국제자유도시를 지향하는 제주가 호치민까지 진출을 하지 못할 정도로 구호에 머물고 있구나 하는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호치민 현지에서 만난 김경언 사장에게 제주국제협의회 호치민 담당 국제이사를 위촉하면서 주호치민 제주도민향우회를 만들어서 항차 제주와 호치민간 교류협력의 가교 역할을 해 달라고 신신당부하기도 했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같이 연수에 동행했던 울산의 모정희 사장은 호치민 외에 다른 해외 지역에도 제주국제협의회가 나서서 해외제주도민 모임을 만드는 데 일조를 한다면 큰 보람이 있겠다고 한 수 더 나가기도 했다. 국제협의회의 역량이 그다지 크지 않은 게 퍽 마음에 걸린 추천이자 격려였다. 그래도 하나씩 하노라면, 티끌 모아 태산이 되리라는 기대를 갖는다고 누가 흉보지는 않을 터이다.

3박 5일 동안 호치민 일대를 편안하게 여기저기 돌아보면서 느낀 첫 소감은, 30년 전의 호치민은 자전거 천국이었는데, 지금은 오토바이 천국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다시 20-30년이 지나면 한국처럼 자동차천국으로 변모할 지는 미지수이지만, 부디 전철이나 트램 등 대중교통 체계를 잘 세워서 마이카시대로 가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몇 년 전부터 교통체증으로 크게 몸살을 겪고 있는 제주의 교통지옥이 생각나서 더욱 그랬다. 한국이 1970년대에 시작했던 지하철 공사를 호치민은 이제야 막 시작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인구 1,000만의 호치민에는 만시지탄의 교통 정책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만큼 2010년대 후반인 베트남은 여전히 가난한 나라이다. 다만 가난은 수치가 아니다. 가난에 계속 머무르고 있다면 그건 부끄러워 할 사안이고 반성할 일일 것이다.

호치민 사람들은 열심히 오토바이 타고 일하러 다니고 있음을 보았다. 우리보다 더 역동성이 커 보였다. 열대지방의 기후 조건이 1년 12달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도 무방한 한, 자동차보다 오토바이가 저비용 고효율 교통수단으로 적실해 보였다. 800만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버스 등 대중교통 수단이 자리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이 점은 한국과의 큰 차별성이다. 버스와 전철이 아닌 개인별 오토바이도 쉽게 여기저기를 아무 때나 이동해 다니기가 편할 것 같아 괜찮아 보였다. 관광버스에서 오토바이 행렬을 내려다보면서 베트남인의 활력을 다시금 재확인 하였다. 호치민 1,000만의 생기를 70만 제주가 어떻게든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기회의 땅인 호치민에 제주협력관이 들어서야 할 이유가 바로 이것임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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