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교차로, 제주에만 100개 넘어
보기 좋은 꽃밭, 혈세 집어삼키는 블랙홀 될 수도
합리적 관리 방안 마련해야

2018년 3월. 와흘리 원형교차로의 모습. 원형교차로에 꽃양배추와 주변 교통섬에 꽃들이 식재돼 있다.(사진=다음지도 로드뷰 캡처)

회전교차로에 식재된 ‘꽃양배추’. 겨울철 마땅한 꽃이 없는 상황에서 거리 화단과 화분에 관상용으로 식재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진과 같은 꽃양배추 화단을 조성하기 위해 투입한 예산이 1000만원에 달한다면? <제주투데이>의 취재 결과 회전교차로에 꽃을 식재하는 데 상당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제주도는 2010년 ‘교통신호등이 없는 회전교차로 녹색교통 시범도시’로 선정돼 국비와 도비 50%씩 투입해서 회전교차로를 설치했다. 도내 회전교차로 수는 2018년 초 기준으로 109개다. 원형교차로라고 부르는 회전교차로는 과속 예방 효과 등이 알려지며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참고로 회전교차로와 비슷한 교차로 형태로 ‘로터리’가 있다. 신제주로터리가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회전교차로와 로터리는 차량 우선 방식 등에 있어 차이가 있는 별개의 교차로 형태다.)

이 회전교차로 꽃을 식재하는 사업을 읍면 단위에서, 또 시에서 추진하기도 해서 전체 규모를 정확히 집계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읍면 단위에서 꽃을 구입한 뒤 식재 사업을 부녀회 등과 함께 시행하는 경우도 있다. 조경업체에 전체 용역을 맡기는 경우도 있다. 조천읍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회전교차로 한 곳에 한철 꽃을 식재하는 데 약 10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천읍 회전교차로 식재공사 용역 수의계약 내역(2016~2018년)(표=김재훈 기자)

문제는 매년 비슷한 금액이 소요되고 있다는 것. 여러 해를 살 수 있는 다년생 화초가 아닌 한 계절 관상을 목적으로 하는 계절화를 심기 때문이다. 겨울철에는 마땅한 꽃이 없기 때문에 계절화로 꽃양배추를 이용하기도 한다. 꽃양배추를 심고 한 달 넘도록 관상용으로 이용한다 해도 결국은 한철을 넘기지 못한다. 결국 상반기에 꽃을 심고 식재한 화초가 죽으면 하반기에 새로운 꽃을 또 식재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 와흘리 회전교차로의 경우 매년 2000만원에 달하는 혈세가 경관 개선 목적으로 꽃 식재에 투입되고 있다.

조천읍은 회전교차로 꽃밭 조성에 유독 의욕을 보이고 있다. 한철 눈요기를 목적으로 꽃을 심는 데 많은 돈이 투입되고 있는 것. 2016년부터 작년 10월까지 조천읍 관내 회전교차로에 꽃을 심는 데 들인 비용이 1억4천6백만원이 넘는다. 이 비용은 고스란히 계약을 맺은 조경업체들의 계좌로 들어갔다. 회전교차로가 결국 조경업체들의 새로운 블루오션이 된 셈이다.

기사 상단의 회전교차로 '꽃양배추' 화단을 조성하기 위한 시행 계획이 담긴 공문.(자료제공=조천읍)

타 지역 역시 마찬가지. 회전교차로 꽃 식재 사업을 용역을 맡기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또 용역을 맡기지 않고 읍면 단위에서 꽃을 직접 식재하는 경우도 있다. 역시 조경업체에 만만치 않은 꽃 구매 비용이 들어간다. 이 경우는 시행 주체가 각 읍면 단위로 나뉘어져 꽃 식재에 사용하는 정확한 예산 집계를 내기는 어렵다.

도내 100개가 넘는 회전교차로에 한 곳 당 상반기 하반기 1000씩 해서 연 2000만원이 투입된다고 가정하면 한 해 20억원 이상 들어가게 된다. 회전교차로가 전국적으로 설치되고 있는 현재, 상당한 규모의 예산을 투입해 회전교차로에 한 계절 즐기고 마는 꽃을 심는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한편, 원활한 차량 흐름을 위해 특히 우회전 차량을 위해서 교차로에 설치하는 ‘교통섬’이라고 일컫는 구조물이 있다. 교통섬 중에는 보행자가 신호를 대기하는 곳도 있고, 보행자의 이동로가 아니라 차량 방지턱의 기능을 하는 것도 있다. 여기에도 또 녹지대를 조성한다는 명분으로 꽃을 심느라고 상당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당장 제주도청 수의계약 정보만 확인해도 13건 가량이 나온다. 2억원이 넘는 금액이다. 교통섬의 꽃 식재 사업 역시 행정시 또는 읍면동 단위에서 발주하고 조경업체 등이 맡아 진행한다.

교통섬의 경우는 사고를 부른다는 지적이 줄기차게 제기되고 있다. 보행자보다는 원활한 교통 흐름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 이와 같은 문제제기에 서울시의 경우 시내 교통섬을 모두 없애고 도로를 줄여나가겠다는 매뉴얼을 2017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주의 경우 보행자 안전을 위협한다는 지적을 받는 교통섬을 꾸미기 위해 꽃을 심느라 예산은 예산대로 낭비되고, 보행자 안전은 뒤로 밀리고 있는 셈이다.

한철 꽃을 보기 위해 매년 낭비되는 예산, 개선 방법은 없을까. 회전교차로는 무엇보다 시야 확보가 중요하다. 진입하는 차량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회전교차로에 대규모 시설물을 조성하는 것은 운전자 시야 확보에 어려움을 줄 수도 있다. 예산을 아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회전교차로에 조성된 화단을 그대로 두는 것. 야생화 씨앗들이 날아와 자리 잡고 자라기 마련이다. 혹은 깔끔하게 잔디밭으로 유지한다 해도 회전교차로의 기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유지하면서 필요할 때 웃자란 풀들을 한 번씩 정리해주는 정도면 충분하다.

꼭 꽃을 심어야겠다면 한철에 1000만원씩 들일 게 아니라 다년생 화초를 식재하는 방법도 있다. 혹은 깔끔한 잔디밭에 ‘퐁낭’이든 ‘소낭’이든 도민이 좋아하는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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