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도지사의 20일 제2공항 담화문 발표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20일 오전 담화문의 핵심은 제2공항 건설은 반드시 필요하며 국토부가 세운 기본계획이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부적절한 발표시점

원희룡 지사 담화문은 바로 전날 제주도의회에서 제2공항 절차적 정당성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는 직후에 발표됐다. 도의회 김태석의장, 김경학 의원 등은 제2공항과 관련해 국토부의 일방적 강행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기초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아서 논란이 됐다. 도의회가 팩트 체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한 비판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도의회의 요구는 명확하다. 이미 정민구 의원을 중심으로 제2공항 기본계획수립 중단 촉구 결의안이 추진되고 있었다. 환경도시위원회에서 이 문제가 거론될 예정이었다. 원희룡 도지사의 발표문은 이 모든 논의에 찬물을 끼얹은 거나 마찬가지다. 국토부의 제2공항 일방 추진에 대해 우려의 입장을 보여왔던 정민구·홍명환 의원은 당황스럽다는 입장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히기도 했다. 제주도의회는 도민의 대의기관이이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지방자치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사실 모르지 않을 거다. 그런데 이 시점에 제주도지사가 발표문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제2공항 건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잘못된 전제...잘못된 결론

원희룡 지사의 발표문을 그대로 옮겨보자.

제2공항 추진은 도민의 숙원이자 제주의 미래를 위한 필수 사업입니다.

2015년 11월, 제2공항 입지발표 후 4년째를 맞는 동안,

이와 관련한 갈등을 충분히 풀어내지 못해 안타깝고 죄송합니다.

앞으로 소통에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원 지사의 발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제2공항 추진이 제주 미래를 위한 필수 사업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제2공항 갈등을 충분히 풀어내지 못해 안타깝고 죄송하다, 소통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제2공항 건설을 기정사실로 전제하면 갈등 해결 방법과 소통의 대상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지금 제2공항 문제에 대해서는 일단 추진 과정을 멈추고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보자는 게 시민사회와 반대주민들의 요구사항이다. 제2공항 건설을 전제로 하면 갈등의 해결은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한 보상 문제로 국한될 수밖에 없다. 소통은 제2공항 건설을 찬성하는 사람들로 제한된다. 원 지사의 발표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제주도지사로서 공항추진계획과 발전방안에 대해 지혜를 모으고 도민의 이익과 의견을 최대한 반영시켜야 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이 같은 발언은 공항 건설이 필요하다는 전제가 있기에 가능하다.

논리가 아닌 정치적 소신

원희룡 도지사 발표문을 논리적으로 구성하면 이렇게 된다. ①제2공항 건설은 제주도의 꼭 필요한 사업이다. ②제2공항 건설은 제주 경제에 기회가 될 것이다. ③ 그러므로 제2공항은 건설되어야 한다. 논리 정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매우 엉성한 형식 논리이다. 논리학에서 순환논법이라는 게 있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여기 있는 사람은 모두 미쳤다. 왜냐하면 여기 있는 사람은 모두 미쳤기 때문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원 지사의 발언이 이와 유사하다. 제2공항 건설은 제주도에 꼭 필요하다. 왜냐하면 제2공항 건설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게 원 지사 발표문의 형식 논리다. 누가 썼는지 모르지만 잘 쓴 글은 아니다. 제2공항 건설이 필요하다는 게 타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논리적 주장이라면 토론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신념이라면 토론이 불가능하다. 마치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5.18 망언을 하는 것이나 지만원 씨가 5.18이 북한군 특수부대의 소해이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논리가 없다는 건 그게 정치적 소신이라는 거다.

제2공항 발표문과 얼마 전에 끝난 원희룡 도지사의 선거법 재판 1심 선고는 별개의 사안이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원희룡 지사는 1심 선고에서 도지사직을 유지하는 벌금 80만원을 선고받았다. 선고 직후 원희룡 지사 이렇게 말했다. “이제 법원의 판결로 도정 업무에 집중함으로써 도민의 성원에 보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제2공항 담화문은 선거법 1심 선고 이후 원희룡 도지사가 처음으로 제주 현안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견해를 밝힌 거다. 발표문 영상을 보면 제2항 건설에 대한 원희룡 지사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2공항은 그 자체로 당위다. 흔히 기독교에서 소명이라고 말하는 데 제2공항 건설에 대해서 원 지사가 소명의식을 지니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굳힐 수밖에 없다. 발표문에서 선택한 단어들이 그걸 말해준다.

‘무거운 책임감’ ‘국책사업 사상 유례없는 재조사’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도지사의 언어는 개인의 말이 아니다. 행정적 책임과 정치적 판단 모든 게 반영되어 있다. 원희룡 지사는 정치적 족쇄가 되었던 선거법 재판 선고가 끝나자 곧바로 제2공항 입장표명을 했다. 그 언어에는 단정적 표현이 넘친다. 제2공항 추진 과정에서 절차적 민주주의 지켜져야 한다는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입장표명과 비교해보면 원 지사의 발언은 신념이자 확신의 언어다. 이런 언어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 학자는 이런 말을 써도 된다. 학자는 조금의 다름도 인정해선 안 된다. 그게 학문적 염결성이고 소신이다. 하지만 행정은, 정치인은 그래선 안 된다. 행정과 정치는 수많은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한다. 정치적 소신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제2공항 건설이 원희룡 지사의 정치적 소신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은 수많은 타협과 조정이라는 과정의 진실이 필요하다. 원 지사의 발표문에는 목적의 정당성만 있을 뿐, 과정의 진실이 빠져있다. 과정의 진실이 실종된 정치를 우리는 독단, 독선이라고 부른다. 원희룡 도지사 선거법 재판 1심 선고는 원 지사의 무죄를 증명해준 판결이 아니다. 유죄를 인정한 판결이었다. 다만 그 죄의 크기를 재판부가 감안했을 뿐이다. 마치 1심 선고가 원희룡 지사의 정치적 소신에 면죄부를 준 건 아니다.

그래봐야 4년짜리 비정규직

제2공항 건설. 원희룡 지사가 밝힌 대로 제주 경제 지도를 밝힐 중차대한 사업이라고 가정해보자. 제2공항 건설은 그 전후를 확연히 나눌 것이다. 국토부의 계획대로 2025년 제2공항이 완공된다면 제주는 다시는 제2공항 건설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원 지사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래봐야 임기 4년짜리 비정규직이다.

원 지사는 실력 있고 정치적 자산이 좋으니 임기가 끝나면 서울로 가도 된다. 서울대 법대의 학벌에 검사 출신, 3선 국회의원, 그리도 광역단체장 도지사까지. 이만하면 요즘 유행하는 말로 ‘스카이 캐슬’의 일원이다. 하지만 제주도민들에게는 임기가 없다.

제2공항이 건설되면 그 모든 성공과 실패는 오롯이 도민들의 몫이다. 우리 세대만이 아니다. 미래 세대 역시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제2공항은 찬성과 반대를 떠나 무엇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반대하는 도민들은 반대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찬성하는 도민 역시 마찬가지다. 찬반 논쟁이 서로를 적대시하는 혐오를 만들어내면 안 된다. 충분한 토론과 논쟁을 통해서 늦더라도 조금씩 작은 부분부터 합의를 봐야 한다. 과정이 충분치 않으면 찬성이 됐든 반대가 됐든, 상대편이 입을 사회적 피해가 너무 크다. 우리는 과정이 생략된 정책의 문제를 똑똑히 알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도입된 부동산 투자 이민제, 우근민, 김태환 전임 지사 시절 인허가 된 각종 대규모 개발사업. 당장 예래동 휴양단지 사업만 하더라도 과정이 생략된 정책집행의 현재를 우리는 똑똑히 보고 있지 않은가. 그래봐야 4년짜리 비정규직이다. 원 지사에게 묻고 싶다. “이 모든 걸 정말 감당할 수 있습니까”

갈등 해결, 이제야말로 정치가 필요하다.

원희룡 지사는 발표문에서 소통하겠다고 밝혔지만, 그 소통의 주체는 자신과 정치적 소신을 같이하는 집단으로 한정하고 있다. 범도민추진협의회와 성산주민들과 소통하겠다는 말의 속내는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만 이야기하겠다는 선언이다. 이건 제주도지사로 제2공항 문제와 관련된 갈등을 해결하지 않겠다는 자가당착이다. 원 지사가 말한 소통에 최소한의 진정성이 있었다면 국토부의 태도에 대해 도지사로 최소한의 유감은 밝혔어야 한다. 그동안 제주도의 해명대로라면 제2공항 설명회도 국토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한거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제주도지사로서 국토부에 입장은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원 지사는 발표문에서 이와 관련해서 정부로부터 확실한 보상과 제주의 이익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의견을 모으고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토부의 일방적 설명회 개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못하면서 제주도의 이익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발언을 할 수 있을까. 원 지사의 발표문 스스로 갈등 해결을 포기한 거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이제는 누가 나서야 하나. 청와대가 나서야 한다. 제주 지역 국회의원들이 팔 걷어붙여야 한다. 제주도민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정부 측에 전달해야 하는 역할이 있다. 지금이야말로 정치가 필요하다. 도의회에게 부탁하고 싶다. 의욕은 좋으나 기본적인 사실 관계 파악부터 충실하자. 디테일에서 관료들에게 지지 말자. 치열함을 가지기 바란다. 제주 지역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의원회관의 안락 의자에만 앉지 말고 천막촌 사람들과 함께 대화해라. 그것이 갈등 해결의 시작이다. 천막이야말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다. 현장에서 만나자. 언제든 따뜻한 커피 한잔 함께 할 용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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