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2일 국회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했다.

연설은 외교안보․경제 등 문제인 정부의 각종 실정(失政)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시장질서에 전면으로 반하는 정부의 인위적 개입과 재분배 정책이 고용쇼크, 분배쇼크, 소득쇼크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한강 기적의 역사가 기적처럼 몰락하고, 한미동맹은 붕괴되고, 경제는 얼어붙고, 산업경쟁력은 급속도로 추락하고 있다”고도 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가짜 비핵화”라고 비판했다.

“반미․종북에 심취했던 이들이 이끄는 ‘운동권 외교’가 우리외교를 반미․반일로 끌고 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는 말도 했다.

이어서 “북한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옹호와 대변,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 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 달라”고 했다.

연설 내용 중 ‘김정은 수석 대변인’ 관련 부분은 지난해 9월26일, 미 블룸버그 통신 기사 제목 ‘문대통령이 유엔에서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 됐다(South Korea's Moon becomes Kim Jong Un's top spokesman at UN)'에서 따온 것이었다.

UN에서 문대통령이 “김정은은 젊고 매우 솔직하고 예의 바르며 나이든 사람들을 공손하게 대우한다”, “나는 김정은 위원장이 진정성 있고 경제발전의 대가로 핵을 포기할 것으로 믿는다”고 했었다.

전해졌던 블룸버그 통신 보도 내용이었다. ‘김정은 수석대변인’은 이 기사의 제목이었다.

이 표현은 지난해 국회 상임위에서도 언급돼 여야 의원들 사이의 공방이 오간 바 있다.

이후 각급 방송 토론의 패널들 사이에서, 또는 인터넷 등 언론매체에서도 ‘북의 비핵화 관련 논의’가 나올 때면 자주 인용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나 원내대표가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 대변인’에 빗대어 거론하자 집권여당인 민주당의원들이 새삼스럽게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이라고 거칠게 항의하고 나선 것이다.

블룸버그 기사가 나왔을 때는 아무 말 못하고 침묵하고 있다가 나 원내대표의 인용발언에 벌떼처럼 달려드는 것은 비겁한 뒤통수치기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꼴’이 아닐 수 없다.

민주당 원내 대표 등은 국회의장석으로 뛰어 올라가 문희상 국회의장에게까지 항의 했다.

국회의장석은 대통령도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국회권위의 상징이다.

국회의원들이 감싸 안아 지키고 보호해야 할 신성한 영역이다.

그러함에도 여당의 원내 대표 등이 함부로 삿대질 하며 유린했다. 집권여당의 오만과 독선, 안하무인의 민낯을 보여주는 듯 했다.

문의장은 여야의 일촉즉발 소란 속에서 “아무리 말이 안 되는 얘기도 듣는 게 민주주의‘라 했다.

의장 중재로 30 여 분만에 연설은 계속되기는 했다.

그러나 연설이 끝나자 청와대와 민주당은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이라며 거칠게 항의하는 등 강공을 이어갔다.

그 정도가 ‘대통령에 대한 모독’라라면 민주당이 야당시절 대통령에게 쏟아냈던 ‘쥐박이’, 태어나지 말아야 할 ‘귀태(鬼胎)’, ‘그년’등 입에 담을 수 없는 막말과 엽기적인 나체그림 등의 능욕과 해괴한 행태는 무엇이라 설명 할 것인가.

‘모독(冒瀆)’의 사전적 풀이는 ‘말이나 행동으로 더럽혀 욕되게 하는 것’이다.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조심 해 달라”는 국민적 주문이 어떻게 ’국가원수‘에 대한 더럽힘이며 욕되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가.

대통령을 향한 주문이나 비판을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겁박이며 심각한 도전이다.

청와대와 민주당의 과잉반응을 보면서 문득 김정은 체제의 북한을 떠올리게 했다.

북의 조평통이나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을 ‘최고 존엄’으로 받들어 모신다.

‘민족의 위대한 령도자 이시며 존엄높이 받들어 모실 경애하는 김정은 최고 지도자 동지’라고 떠받들고 있다.

외부에서 “김정은에 대한 비판이 나올라 치면 ‘감히 우리 인민의 생명이신 ’최고 존엄‘을 모독 하느냐“며 악랄한 보복 운운 등 막말을 쏟아내기 일쑤다.

민주당의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이라는 발언을 들으면서 왜 이러한 북한 체제의 ‘최고 지도자 칭송’이 떠오르는 지 생각만 해도 씁쓸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북한식으로 ‘위대한 영도자이시며 존엄높이 받들어 모실 경애하는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칭송해야 옳은 일인가.

민주당의원들의 ‘충성경쟁’의 정도를 보는 듯하다. 모닥불 뒤집어쓴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린다.

한국당 나 원내대표의 국회교섭단체 연설 내용은 문재인 정부의 각종 정책에 대한 비판과 대안제시가 본질이었다.

‘김정은 수석대변인’ 부분은 곁가지이며 극히 일부의 인용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민주당 의원들은 정책 비판의 핵심은 외면했다. “나치보다 심하다”는 등등 곁가지만 놓고 난리를 피웠다.

문 국회의장의 말대로 내 맘에 들든 아니든 상대의 애기를 듣는 게 민주주의다.

목계(木鷄)는 장자(莊子)에 나오는 ‘싸움닭’이다.

최고의 싸움닭은 나무로 만든 닭처럼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이 없어야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살벌한 비판에도 끄떡없이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새겨야 한다는 교훈을 이야기 할 때 인용되는 말이다. 경청에 대한 교훈이다.

경청(傾聽)은 한자 ‘기울 경(傾)’과 ‘들을 청(廳)의 합성어다. 남이 말을 할 때는 귀를 기울여 주의 깊게 겸손하게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말을 하는 사람은 죄가 없고 듣는 사람이 이를 족히 경계로 삼아야 한다”는 시경(詩經)의 ‘언자무죄(言子無罪) 문자족계(聞者足戒)’도 말하기와 듣기에 대한 교훈이다.

“말에 대한 책임은 말하는 이가 아니라 듣는 이에게 있다”는 뜻이다.

상대의 말꼬리를 잡아 비판하며 치열하게 자신의 목소리만 높이는 세태에 대한 경구(警句)인 것이다.

경청보다 자신의 목청만 높이는 국회의원들이 새겨들을 이야기다.

‘지혜는 들음으로써 생기고 후회는 말함으로써 생겨난다’는 영국 속담이 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경청의 태도는 최고의 찬사‘라는 카네기의 어록도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야당의 시비나 비판도, ‘김정은 수석대변인’을 빗댄 모욕적 발언까지도 참고 들어 되새겼으면 어떻게 됐을까.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그러한 도량과 금도(襟度)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 일가.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