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할수록 돌아가라’했다. ‘급히 먹는 밥이 체 한다’는 말도 있다.

서둘러서 얼렁뚱땅 시간을 번다해도 제대로 길을 들지 않으면 되레 시간을 낭비한다는 뜻의 속담이다.

갑자기 발생하는 급체(急滯)도 급하게 먹다 일어나는 소화불량 체증(滯症)의 하나다.

그것이 위가 뒤틀리고 구토와 설사를 동반하는 곽란(癨亂)을 부를 수도 있다.

지금 대한민국 국회가 심한 곽란을 일으키고 있다. 입에서는 막말이 거침없이 쏟아지고 있다. 뒷구멍에서는 야바위 같은 협잡과 꼼수가 쏟아지는 설사처럼 역겹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이름도 생소한 ‘패스트트랙’ 요리를 집권여당인 더불어 민주당과 2중대, 3중대 군소야당이 야합하여 급하게 먹으려다 급체가 일어난 것이다.

따돌림 당한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패스트트랙 요리상’을 뒤엎으려고 안간힘이다.

‘망치’와 ‘쇠 지렛대(일명 빠루)’가 동원되고 악다구니 몸싸움이 진흙탕 개싸움을 방불케 했다. 짖고, 물어뜯고, 할퀴고, 말씀이 아니었다.

지난주 여의도 국회 의사당 안에서는 이러한 여․야 국회의원 간 난장판 충돌을 여과 없이 국민에게 보여줬다.

‘패스트트랙(Fast track)'은 ’신속처리안건‘으로 풀이된다. 안건을 하나로 묶어 신속하게 처리한다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문제의 패스트트랙은 선거제 개편과 공수처(고위공직자 범죄 수사처), 검경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이다.

내년 총선 룰을 정하는 선거제 개편안을 포함한 공수처, 검경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은 국민의 선택권과 삶, 국가운영과 국가 미래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중요한 법안들이다.

하나로 묶어 ‘플러스 원 패키지 상품’처럼 판매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각각의 법안이 그만큼 중요하고 예민한 것들이어서 그렇다.

여․야의 심도 있는 토론과 협상과 합의 등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는 법안들인 것이다.

시장 통 야바위 꼼수나 끼리끼리 주고받으며 끼워 팔기 식 야합이나 졸속적으로 처리되어서는 아니 되는 사안이다.

특히 선거제 개편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언제나 여․야 합의로 처리해 왔다. 그것이 관행이었다.

그런데도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제1야당인 한국당을 따돌리고 만만한 군소야당을 꼬드기고 이들과 야합하여 패스트트랙 지정을 강행하려는 것이다.

의회민주주의 견인의 조건인 ‘게임의 룰’과 ‘절차의 룰’을 모두 팽개쳐버렸다. 방식은 비겁하고 과정은 졸렬했다.

물론 관련 법안 논의 과정에서 보여준 한국당의 ‘소극적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았다.

관련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거나 무산시키려는 ‘꼼수’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사당 난장판 극한 충돌의 책임은 집권여당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타협과 합의․협치의 노력보다 물리력을 동원한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려 했기 때문이다.

“마치 조폭 두목이 똘마니들을 앞세워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듣도 보도 못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똘마니들에게 던져주는 달콤한 ‘미끼’나 다름없다.

제왕적 무소불위의 ‘공수처 법안’을 밀어붙이기 위한 고도로 계산된 기획 상품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축소를 전제로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축소되는 지역구에 포함되는 의원들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을 터이다.선거제 개편안의 국회통과가 안 될 수도 있는 이유다.

집권여당 입장에서는 패스트트랙에 함께 태운 ‘공수처’, ‘검경 수사권 조정’, ‘선거제 개편’중 ‘공수처’와 ‘검경수사권 조정’만 처리하면 그뿐이다.

그렇게만 되면 ‘패스트트랙’은 그들에게는 ‘밑져야 본전‘이다. ’꿩 먹고 알 먹는 셈‘이다.

“선거제 개편은 되어도 그만, 안되면 더 좋다“는 식의 오만방자한 생각인 것이다.

국회의 극한 충돌의 책임이 집권여당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음은 바른미래당 지도부의 비겁한 ‘야바위’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1차적으로 국회 충돌의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국회법 상임위원 사․보임(사임 또는 보임)관련 조항(48조6항)에는 '임심회 회기 중에는 위원을 개선할 수 없다고 했다. 사․보임이 안 된다는 국회법 조항인 것이다.

부득한 경우는 있다. 해당 위원이 질병 등 부득이한 경우에는 의장의 허가로 사․보임을 할 수 있다. 이 역시 선택은 해당 의원 몫이다.

그런데도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 대표는 단독 헌법기관인 해당 국회의원의 의사에 반하여 ‘사․보임’을 밀어붙였다. 국회법을 무시한 불법행위다. 이해하기 힘들 일이다.

여기에다 국회의 공정한 운영을 책임진 문희상 국회의장의 비겁한 국회운영과 무소신도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국회의장은 여․야 갈등의 조정자이자 타협의 중재자다. 불편부당해야 한다.

편향적이지 않고 공정한 운영을 책임진 입법부 수장이기에 당적을 갖지 않는다.

그럼에도 문의장은 이번 사태에서 집권여당의 눈치를 보며 국회법을 무시하고 ‘사․보임’을 허가했다.

스스로 공정함과 불편부당을 걷어 차 버렸다.

가장 공정해야 하고 가장 법을 잘 지켜야 할 의무를 지닌 입법부 수장이 편파적 국회운영과 불법을 조장 한 것이다.

‘사․보임’ 서류를 사상 유례 없는 팩스로 보냈고 문의장은 병상에서 이를 허가 했다.

같은 당 소속이었던 문의장 직전 정세균 국회의장은 의원 개인의 의사와 배치된다는 이유를 들어 ‘사․보임’을 정중히 거절했던 전례가 있다.

무슨 일 그리도 급했었는가? 병상 ‘사․보임’을 한 문의장은 부끄러워하며 이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 일이다.

국회는 이제 ‘동물국회’라는 국민적 비난과 비아냥, 지탄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립이나 대치를 접고 정상의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위해서는 우선 국정을 책임지는 집권여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말썽 많은 ’패스트트랙‘ 법안 지정 밀어붙이기를 그만 접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제1야당인 한국당을 파트너로 인정하고 타협과 협치를 통해 상생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여기서 원인 제공자나 다름없는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가 고집을 풀고 ‘사․보임’ 문제를 원 위치로 돌려놓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래야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던 반성이 진정성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제1야당인 한국당도 장외투쟁이나 국회에서의 물리적 방어력을 풀고 철수해야 할 것이다.

러셀은 일찍이 ‘인간은 본래 무엇이든 상대하여 투쟁하려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고 했었다.

‘자연과 투쟁하고, 자신과 투쟁하며, 인간과 투쟁 한다’는 것이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대립, 충돌, 투쟁이 계속되면 사회적 혼란과 무질서로 이어지고 끝내는 삶이 위태로워지며 사회가 해체되기에 이른다.

여기에 정치가 있다. 정치는 이러한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거나 해결해 가는 일련의 과정이고 활동이다. 그 중심에 대화와 타협이 자리한다.

이해관계의 대립과 충돌을 해결하고 사회의 통합과 질서를 유지하는 행위를 정치라 한다면 지금 여의도 국회의원들의 할 일은 자명해진다.

대립과 충돌이 아니고 대화와 타협의 테이블에 앉는 일이다.

‘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일천년 세월도 부족하지만 그것을 무너뜨리는 데는 단 한 시간이면 족하다’는 경구(警句)도 있다. 바이런의 말이다.

“여의도 국회의원들, 그대들은 선대들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키운 대한민국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려 하는가? 당장 정신을 차리고 정상으로 복귀하기 바란다“

국민의 명령이다.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