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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행정과오 민원인에게 떠넘기고도 사과없는 제주시 행정'45년 전 땅주인 알아서 찾고 동의받아 오세요'...찾고 보니 "땅 가져간 게 언젠데 이제 와서"
김재훈 기자 | 승인 2019.05.03 15:17

임순월씨(제주시 노형동)는 애월읍 고성리에 건물을 지으려고 지난해 9월 제주도에 건축 설계변경 신청을 넣었다. 11월부터 공사를 시작해 두세 달이면 충분히 건물이 들어서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사무실로 사용할 컨테이너도 현장에 가져다 두고 공사 시작을 위한 준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올봄에 완공할 예정이었다. 오산이었다.

제주시청 상하수도과에서 발목이 잡혔다. 상하수도과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임씨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오수관을 도로로 빼내 연결해야 하는데 그 도로가 사유지라는 것이었다. 상하수도과 담당자는 오수관 시공을 하기 위해 땅 주인의 동의서를 받아 올 것을 임씨에게 요구했다. 개인의 도로 즉 사도에서는 땅 주인의 동의서를 받지 못하면 건축행위를 할 수 없다. 도로에 접한 토지였지만 도로가 사유지이니 사실상 맹지나 다름없는 셈이었다.

임씨의 토지(사진=다음 맵)

임씨는 말문이 막혔다. 땅주인을 어떻게 찾나? 등기부등본에는 45년여 전의 기록이 전부였다. 땅 주인의 생사여부조차 확인 불가능했다. 땅 주인이 살아있는지 만이라도 알려 달라 했다. 답을 얻지 못했다. 결국 직접 알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등기부등본에 기록된 거주지를 찾아갔다. 오피스텔이 들어서 있었다. 막막했다.

고성리 지역 어른들이라면 45년도 넘은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을까? 임씨는 고성리 유지들을 모시고 사정을 밝혔다. 멀리 화북동에 살고 있을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나마 제주도에 살고 있어 다행이었다. 실낱같은 기대를 갖고 화북으로 찾아갔다. 화북에서 수소문한 끝에 간신히 땅주인을 만날 수 있었다.

사정을 토로했다. 그러나 문전박대 당하고 말았다. 수십년 전에 땅을 가져가놓고 이제 와서 뜬금없이 동의서를 써달라는 게 무슨 말이냐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 땅이 자기 명의로 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45년여 전 도로로 편입됐지만 행정당국이 등기처리를 하지 않은 부지(사진=다음 맵)

3개월 가량 발품을 팔고 시간을 쏟아 부은 뒤 땅주인을 만났으니 오수관 공사 동의서를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다. 동의서를 받을 수 없다는 막막함도 컸지만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행정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임씨는 세무서를 찾았다. 세무서에서는 해당토지에서 지방세를 걷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임씨는 비로소 일이 이렇게 된 전모를 알 수 있었다. 45년 전 땅주인 A씨가 내놓은 땅을 행정당국이 제대로 등기처리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행정당국의 미숙한 일처리로 인해 임씨는 심적, 물적 피해를 입고 말았던 것이다.

임씨는 동의서를 받기 위해 발품을 팔며 3~4개월의 시간을 허비하게 되었고 시공업체도 일정을 마냥 늦출 수 없었다. 공사는 여름으로 미뤄졌다. 임씨는 이번 일을 거치며 제주시 공무원의 민원 대응에 치를 떨었다.

임씨가 직접 만난 제주시 공무원은 소극행정의 본보기라 할 만한 모습이었다. 소극행정을 넘어 갑질행정이라 할 만했다. 임씨는 “내가 잘못 한 일도 아니라 행정의 잘못된 일처리로 인해 일이 이렇게 된 걸 해결해보겠다고 공무원들에게 사정사정해야 만했다. 모멸감도 많이 느꼈다”고 토로했다.

임씨는 시청 민원실도 찾아가고 제주도 고충민원신고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그러자 상하수도과 담당자로부터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며칠 뒤 허가가 떨어졌다. 간단했다. 토지주의 동의서는 필요 없었다. 물론 담당 공무원의 사과도 없었다.

임씨는 “6월부터 공사를 하려 하는데 불이익이 있을까 걱정된다. 하지만 바로 잡을 건 바로 잡아야 한다”며 제주시 공무원의 일처리 방식에 대해 쓴소리를 내뱉었다.

임씨는 “행정은 주민을 위한 서비스를 하는 걸 말하는 것 아닌가. 행정의 과오로 인해 발생한 일을 민원인으로서 혼자 감당해야 했다. 또 담당자가 바뀌면 담당자 바뀐다고 일을 아주 새로 해야 할 지경이었다. 도저히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 공무원들에게 사정사정하며 모멸감도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제주시 상하수도과 담당자는 이에 대해 어떤 입장일까. 제주투데이와의 전화 통화에서 해당 담당자는 “민원인이 많아서 일일이 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짧게 답했다. 임씨에게는 제주시 행정 당국으로부터 느낀 모멸감은 평생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일이 되었지만 담당 공무원의 기억 속에서는 쉽게 지워졌다.

한편 소극행정에 대한 비판여론을 의식한 제주도는 최근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적극행정 설명회를 개최했다. 민원인을 위한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대응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일선에서 소극행정 문화가 개선될 때까지 임씨와 같은 상황이 얼마나 더 발생하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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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 기자  humidtex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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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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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유근 2019-05-07 10:42:16

    공무원들은 지역 주민들을 위해 정말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사안일에 빠지면 알게 모르게 많은 피해를 끼치기도 합니다. 물론 거기에는 잘못된 감사제도의 탓도 있지만 결국은 사명감의 문제라고 봅니다. 행복한 제주도를 만드는 데 공무원 여러분들의 역할의 중요함을 살피어 분발하시기를 기대합니다.   삭제

    • 임연식 2019-05-04 01:42:36

      아직도 구태의연한 공무원들이 있다는게 믿어지지 않는군요.국민의세금으로 먹고살아가는 공무원들은 법테두리안에서만 움직이려고만 합니다.
      이번일로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을 민원이의 고충이 느껴집니다.
      어느 누군가는 문제제기를 해야하는 일들을 하셨군요.박수를 보냅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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