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당시 군사재판 과정에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수형인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재심이 시작됐다.

4.3 당시 제주 주정공장의 모습(자료사진=4.3아카이브)

제주4.3희생자유족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회장 김필문, 이하 행불인유족협의회)는 3일 오후 2시 제주지방법원에 행불인 수형자 10인의 재심청구서를 제출했다. 

이번에 선정된 10명은 호남과 영남, 대전, 경인, 제주 등 5개 위원회에 소속된 희생자들 2명씩이다. 유족협의회는 현재 유족들 중 연로한 분들을 대상으로 우선순위를 정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가운데 제주위원회에 속해있는 故 이기하 씨와 故 김원갑 씨는 1949년 옛 주정공장에서 사형 당했다. 다른 8명은 육지의 다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6.25전쟁이 터지면서 사형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필문 행불인유족협의회장은 "지금까지 우리 행불인(행방불명인)과 수형인은 피 맺히는 아픔으로 살아와야 했다"며 "지금이 아니면 우리는 무덤으로 간다. 그 전에 우리 자손들이 이것을 받지 않도록 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협의회장은 "죽은 희생자들은 생존자들보다 몇 백배의 억울한 슬픔을 가지고 있다"며 "우리는 죽을 때까지 행불자 3,600명과 수형자 2,530명의 모든 것을 걸고 투쟁하겠다"고 강조했다.

청구에 나선 유족들도 이번 재심을 시작하게 된 포부를 밝히면서 과거사가 다시금 재평가받기를 기대했다.

제주4.3희생자유족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가 제주지방법원에서 재심청구서를 제출하고 있다.(사진=김관모 기자)

故 이모 씨의 동생인 이상하 씨는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 씨는 "형님이 당시 사형당했을 때 나이가 25세였다. 형님이 산에 올라갔었는데 그것을 이유로 조부모님과 부모님, 누님과 형님, 그리고 형님의 딸과 아들 이렇게 8명의 가족이 몰살당했다. 저만 총에 안 맞고 살아났다. 이후 형님이 자수를 했는데 끝내 비행장에서 총살당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씨는 "대통령이 사과하고 4·3특별법이 개정되면서 해결될 줄 알았는데 안 되고 있으니 재심청구에 나서게 된 것"이라며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를 아쉬워했다. 아울러 "이제 저도 84세다. 살아있을 때 빨리 해결했으면 하는 바람뿐"이라고 밝혔다.

한편 대구 형무소에서 사형당한 故 오형율 씨(당시 28세)의 유족들도 하루속히 고인의 무죄가 밝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형율 씨의 부인인 현경아 할머니(97세)는 "이대로 제가 죽으면 남편을 못 만날 것 같다"며 "이를 바로잡아서 우리 남편이 어디 던져졌는지만이라도 말해줬으면 하는게 원이다"라고 말했다. 현경아 할머니는 "무덤 하나 못 만드는 나는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하다못해 머리카락만이라도 찾아주면 감사하겠다"고 애원하기도 했다.

한편, 송승문 제주4·3유족회장은 "행불인유족협의회는 3년 전부터 모든 준비를 해왔지만 생존수형인 18분들이 먼저 신청을 하면서 이제서야 재심을 청구하게 됐다"며 "생존수형인분들이 공소기각으로 사실상 무죄를 받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재판부가 현명한 판단을 하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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