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비환경적인 환경정책'들...누구의 태만인가

천연기념물 두견이의 소리를 녹음하려고 거슨새미오름 둘레길을 걷던 중이었습니다. 예초기와 기계톱소리와 중장비소리에 놀라 멈춰설 수밖에 없었어요. 제주 난개발의 상징이 된 이름 ‘비자림로 도로확장 공사’는 중단되었으니까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동물의 서식지 조사를 위해 영산강유역 환경청에서 공사 전면중지를 요청했고 제주도가 이를 받아들였기에 이러한 공사 소음을 듣게 될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어요.

문화재청과 환경부의 모니터링단과 함께 거슨새미오름 숲으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들리기 시작한 공사 소음. 그 소음을 따라서 가보니 <오름자연보전이용시설 정비공사>로 인한 것이었어요. 오름·자연·보전이라는 것은 허울일 뿐이죠. 이용객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이유로 자연의 흐름에 위배되는 공사를 하는 것은 전해오는 말로 ‘아랫돌 빼서 윗돌 막는다’는 식의 조치에 불과합니다.

지금은 멸종위기 야생동물이자 천연기념물인 팔색조 그리고 많은 생물들의 번식기인데 공사소음으로 인해 팔색조가 번식을 포기하고 떠난다면 이 지역에서는 그 귀한 새를 다시는 찾아보기 어렵겠죠. 이 생태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그뿐일까요. 돌이킬 수 없는 환경적 변화가 뒤따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태적 연결 고리에 우리 사람 역시 이어져 있습니다.

지금 세계의 시대정신은 특히, 제주에 요구되는 시대정신은 개발이 아니라 보존입니다. 제주도는 천연기념물 두견이 소리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고 시민들이 마음먹으면 멸종위기종인 애기뿔 쇠똥구리를 쉽게 찾아낼 수 있는 정도로 천혜의 자연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연은 지켜낸 것이 아니라 아직 ‘남아있을 뿐’이며, 다양한 생물종 역시 개발로 인한 급격한 개체수 감소와 번식 감소에 시달리고 있죠. 이대로 가면 전멸입니다.

더욱이 비자림로 도로확장공사 구간을 단순히 삼나무 인공조림지로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국민적 반대여론이 일고 공사 중단 요구 성명이 끊이지 않는, 장대한 오름 군락 사이를 지나는 이 비자림로 공사가 재검토되지 못한다면 앞으로 이어질 자연 파괴의 행진을 암묵적으로 합의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시민들은 서둘러 제주시청 환경관리과에 정비공사 중단 민원을 냈습니다. 전국적 이슈가 된 비자림로 공사중지 소식을 모르는 듯 했던 담당자는 서둘러 정비공사를 중단시키고 철수시켰지만 이번 일을 통해 다시 눈여겨 보게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동물들의 번식기를 고려하지 않고 중장비를 동원해 커다란 소음을 유발하는 벌목과 정비 공사. 여전히 이런 일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과연 누구의 태만 때문이며, 누구가 책임져야 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정과 공존’은 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환경정책은 무엇보다 환경 그대로를 보전하기 위한 정책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관광의 섬이라는 슬로건 아래 허용되어온 인간을 위한 정비 공사(환경정책이라는 명분으로 자행되는)에 회의감이 듭니다. 제주의 난개발이 최대 이슈인 이 시기에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비환경적 환경정책’들은 재검토 되어야하며 우리 제주에 더 이상 아픔의 봄이 없기를 희망합니다.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 모임의 김키미 씨(달빛서림 운영)

<김키미씨는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 모임'의 일원으로 함께 활동하며 멸종위기종 동물인 팔색조와 애기뿔 쇠똥구리를 발견하며 비자림로 확장공사 소규모환경영향평가의 부실을 밝혀냈다. 멸종위기종 동물이 발견됨에 따라 현재 비자림로 공사는 중단되고 야생동물 서식 조사가 진행중이다.

김키미씨는 구좌읍 송당리에서 달빛서림을 운영하고 있다. 김키미씨는 개발로 제주 자연이 신음하는 데 대해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책임 질수도 없는 일들을 벌이면서 미래 세대의 몫으로 돌리고 있다"며 "요즘 팔색조라는 이름이 우리 모두의 이름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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