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근/ 아라요양병원 원장

1979년 필자가 의과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와 방사선과의원(지금의 영상의학과의원)을 열자 모두들 다른 병원에도 다 X-ray 기계가 있는데 방사선과로 개업해서 되겠느냐고 걱정해 주셨다. 그때만 해도 도민 대부분이 방사선의학을 모르던 시절이니 그런 걱정을 하시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개중에는 방사선과가 다른 내과나 정형외과와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있었다, 참 난감한 질문이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이 분들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까 궁리한 끝에 얻은 대답은 이랬다.

“방사선과 검사는 크게 일반촬영과 특수촬영으로 나뉘는데, 일반촬영은 지명이 빼곡히 적혀있는 지도에서 지명 찾기 게임과 같다. 지명이 분명히 적혀 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걸 찾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며, 어떤 사람은 영영 찾지 못 하기도 한다. 그걸 방사선과 의사는 빨리 찾는다. 특수촬영은 T. V.에서 줌업(ZOOM-UP) 하는 것과 같다. 일반 영상으로 관객석을 비추면 거기에 외국인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줌업해서 외국인을 비추면 모두들 거기에 외국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방사선과 의사들은 특수촬영을 통해 의사라면 병변을 알 수 있도록 찍어내는 역할을 한다.”

물론 거기에 더해서 영상에 나타나는 병변을 병리해부학적으로 분석하여 무슨 병일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많은 어린이들이 청진기로 병을 진단하는 것을 보며 신기해한다. 의사들 사이에 그렇게 묻는 어린이이게 “청진기를 갖다 대면 감기면 감기, 폐렴이면 폐렴이라고 청진기가 일러준단다.”고 농담으로 대답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떠돈 적이 있다. 물론 사실이 아니다. 청진기를 통해 들려오는 심장박동 소리나 호흡음을 듣고 병태생리학적으로 판단하여 진단을 내린다. 마찬가지로 X-ray 사진 상에 나타나는 소견이 바로 병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사진 상에 나타나는 많은 비슷한 소견들을 병리해부학적으로 분석하여 최종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현대는 영상의학과가 매우 발달하여, 일반의들은 물론 다른 과 전문의조차도 판독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3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도 있듯이, 가슴 사진을 보는데도 적어도 일만 장을 보아야 감을 잡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일반의들이 사진을 제대로 보기는 무척 어렵다. 그래서 필자가 고향에 처음 내려왔을 때에는 서귀포에 개업하고 계신 일반의 선생님들께서 올바로 가슴 사진 판독을 하시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한 달에 한 번 강의를 나가곤 했었다.

사진 판독이 이렇게 어려운데 요즈음 한의사 협회에서 한의사들도 X-ray로 사진도 찍고 판독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는 모양이다. 학교 다니면서 방사선학을 배웠다고 한다. 그런 식이면 간호사들은 물론 방사선사들도 X-ray 사진도 찍고 판독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의학과 한의학은 그 근본 원리와 접근방법이 다른데 몇 시간 배웠다고 인체에 해로운 방사선을 이용한 기기를 쓰겠다는 주장은 정말 이해하기 곤란하다. 이것은 마치 어린이에게 칼을 쥐어주는 것과 유사하다고 여겨진다.

영상의학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간단하다면 무엇 하러 영상의학과 기사들이 몇 년씩 공부를 하고 그 어려운 면허시험을 합격해야 X-ray로 촬영할 수 있는 자격증을 딸 수 있도록 했을까! 더구나 ‘의사의 지도하에서’라는 단서를 달면서.

영상의학과 의사 입장에서 보면 다른 과 전문의들께서 ‘안 보이던 것이 보이는 것’은 잘 아시지만, ‘보여야 될 것이 안 보이는 것’은 놓지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리고 사진은 평면인데 영상의학과 의사들은 그걸 입체로 보는데 반해 다른 과 선생님들은 그런 훈련이 부족한 것 같다. 이것은 X-ray 영상의 특성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즉 영상의학의 사진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 있어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이 주위 조직과 방사선흡수계수의 차이가 우리가 눈으로 인식할 수 있을 정도이 차이가 있을 때라야 보인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즉 한의사들께서 X-ray를 찍고 판독하겠다는 것은 국민 보건에 막대한 지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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