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말하는 주 오사카 대한민국 오태규 총영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주오사카 대한민국 총영사 오태규입니다.

먼저 시인 김시종 선생님의 '생탄 90주년, 도일 70년'을 축하합니다. 아울러 이를 기념하여 오늘 열리는 국제심포지움 '월경(越境)하는 언어'에 초대 받아 참석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아마 여기에 계신 분들 가운데, 왜 이런 자리에 한국총영사가 와서 인사를 할까,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문학은 그 속성상 현실 정치 세계에 가장 거리가 멀어야 제몫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시종 선생님의 삶이 바로 현실 정치, 현실 권력과 길항 내지는 싸움의 연속이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확실히 김시종 선생님과 한국총영사의 만남은 어색합니다. 그러나 문학이 현실 정치의 부족함과 경직성을 비판하고, 현실 정치가 이를 경청하고 자신의 모자람을 수정해 나간다면, 그것만으로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를 떠나 저 개인적으로 김시종 선생님의 삶과 인격을 존중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왔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김시종 선생님의 삶은, 사선을 넘나들었던 1948년 제주 4.3사건을 비롯해. 지금까지 고난과 고통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 그 자체라고 할 수있습니다."
 
"특히, 망명지인 일본 땅에서 편치 않은 마음으로, 분단된 조국을 바라보며 일본말로 쓴 시에는 얼마나 많은 고뇌와 고민, 바람이 담겨 있을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저는 지난 해 4월 부임한 뒤 얼마 되지 않아 김 선생님을 처음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조선과 일본에 살다'라는 책의 한국어판에서 "항상 고향이 바다 건너 편에 있는 자에게 어느새 바다는 소원으로 밖에 남지 않는다"라는 글을 써 주셨습니다."
 
"그 글을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그 소원이 바다에만 머물지 말고 바다 건너 고향땅에도 도달하길 기원합니다. 오늘 뜻 깊은 행사에 초대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건강하시고 더욱 좋은 글을 많이 써주시길 바라며 인사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떠한 행사 때나 '내빈 인사'는 판박이처럼 되풀이 되며 내용은, 공적 기관이든 사적 기관이든 관계 없이 그 행사에 알맞는 교과서적인 인사가 적당히 나열된다. 공공 기관의 기관장 인사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번만은 달랐다.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실실장을 역임했던 저널리스트인 오태규 총영사의 인사가 그렇다.  짤막한 내용이지만 그 행사에 걸맞는 기조강연 같았다. 그래서 다른 때 같으면 오태규 총영사의 인사가 있었다고만 간단히 소개하지만, 교과서적인 인사의 한계를 벗어났기 때문에 생략, 중략 없이 전문을 게재했다. 
 
6월 16일 오사카시 '오사카대학 나카노시마센터'에서 <월경하는 언어> -시인 김시종 씨의 생탄 90년과 도일 70년을 기념하여-의 국제심포지움이 '오사카대학대학원 문학연구과 월경문화연구 이니시어티부' 주최로 열렸다.
 
오노다 쇼야 오사카대학대학원 교수의 사회로, 김시종론을 써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아사미 요오코 씨가 작성한 슬라이드 상영이 있었다. 김시종 시인이 걸어온 스냎 사진들을 영상화 했는데 그 속에는 필자의 사진도 몇 장 들어있었다.
 
어렸을 적에 시인의 아버지가 즐겨 부르던 '클래멘타인'의 경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김시종 시인 스스로가 나레이션으로 나오고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 모르는 딸 있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90세 김 시인의 조용한 노래 소리에는 감동의 애수가 넘쳐흐르는 깜짝 연출이었다.   
시인 김시종

기조강연은 우가이 사토시 히토쓰바시대학 교수의 '김시종씨가 응시해왔던 것'이라는 주제 속에서 강연했다.

1. 김시종의 21세기 '일본시에의 러브콜'(2005년)에서는 2004년 12월에 일어난 '스마트라' 지진의 쓰나미로 20만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자연 피해를 중심으로, 이라크전쟁에 일본 자위대 파병, 일본 국내의 지진, 폭우 등을 예로 들면서 김시종 시인이 쓴 시를 곁들여 파괴에 대한 경계론을 피력했다.
 
2. '반위령:反慰靈'에서는 '잃어버린 계절 -김시종사시(四時)시집-'(2010년)에서 제주 4.3사건 70주년에 보내는 시를 중심으로 말했으며, 3. 원발 사고 이후 -背中の地図:세나카노치즈-뒷면(등)의 지도-(2018년)는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이 일어았을 때에는 공교롭게도 김시종 시인은 타카미쥰상을 받기 위해 토쿄행의 신칸센을 타고 있었다.
 
지진으로 수상식은 중단되어 다음 해에 있었지만, 시집 '등의 지도'는 동일본 지역이 일본의 등과 같다는 의미이고 낙후 지역이라는 상징성도 갖고 있었다. 김시종 시인의 이러한 시각이 필자에게는 퍽 신선감을 안겨 주었었는데. 이때에 원자력발전소의 피해 문제의 여파를 시집으로 낸 것을 인용한 내용이었다.
 
마지막 4항은 '김시종의 <시(詩)와 반시(反詩) 사이의 코뮌(?)>에대한 견해였다. '코뮌'은 불어인데, 민주적, 자율적,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정치적 공동체를 뜻하는데, 여기에서도 원발 문제로, 반원자력발전의 소리에 귀를 막는 지역 주민들의 모습을 어떻게 작품에 넣을까에 대하여 김시종 시인의 시를 인용하면서 강연을 마쳤다. 
 
패널토론에서는 호소미 카즈유키 쿄토대학대학원 교수 사회로 <월경하는 언어 -김시종을 읽는다-> 주제 속에서, 동포 3세 정장 시인의 '재일조선인어로서의 일본어, 그 행방', 미야자와 쓰요시 니쇼가쿠대학 강사의 '역사를 월경하는 시'와 캬사린,류 미시건주 주립대학 조교수의 '북미에 있어서의 김시종'이 있었다.
 
정장 시인의 '재일조선인어의 일본어'는 또 하나의 일본어를 말하는데 이것은 일본어를 원어로 사용하고 일본어로 토론할 때에는 가능하지만 다른 언어로서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아니, 불가능 할 것이다. 왜냐하면 '재일조선인의 일본어'는 다른 언어로서는 번역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야자와 쓰요시 강사는 천황제를 중심으로 국가 충성을 요구하는 '야스구니사상' 속에 '역사를 월경하는 시' 에서 김시종 시인의 시 3편을 예로 들었다. 캬사린,류 조교수는 미국에서의 재일동포 작품에 대해 영어로 발표했는데. 재일동포 사회가 있는 것조차 제대로 모르는 미국사회에서의 재일동포 작품 번역의 열악한 환경을 소개해서 주목을 받았다.
 
이어서 '죠루리(淨瑠璃)에 의한 <이카이노시집> 중에 '노래 또 하나'의 서사시를 와타나베 하치다유씨가 일본 전통악기인 샤미센(세줄의 현악기)을 치면서 리듬과 시에 감정을 곁들인 낭송은 압권이었다. 
일본의 유명한 가수이며 배우, 연출가인 미와 미키히로의 '요이토마게'의 노래를 방불케 하는 아니, 능가하는 박력이 장내에 울려퍼졌다.    
 
끝으로 김시종 시인의 '인사와 낭송'이 있었다. 일본국 헌법 수호를 위한 집회나 회의를 하기 위해 일본의 공공 시설물을 빌기 위해 신청하면 불가이고, 이와 반대로 헌법 개헌을 위한 모임이라면 허가하는 일본의 현재 상황의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김 시인의 목소리는 90세라는 고령의 한계를 뛰어넘은 젊음에의 복귀였다.
 
헌법 개헌론자였던 미시마 유키오의 문학상을 비판하고, "러시아 귀속령인 일본 북방 영토를 되찾기 위해서는 전쟁 밖에 없다."  북방영토 방문 속에 30대 젋은 국회의원의 막말 발언의 역사 인식은 전후, 왜곡된 일본 교육의 산물이라고 비난의 억양은 더욱 높아 갔다.
 
스스로가 열렬한 황국신민었던 것을 자인하고 일본 패전은 조국의 해방을 안겨주었지만 그 당시 좌절의 충격은 상상도 못했었다는 노 시인의 변함없는 고백은 장내를 숙연하게 했다. 
 
이렇게 일본의 현실을 직시하고 비난하는 가운데 극도로 악화되어 해결 방법조차 모호한 한.일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했으면 좋은 기회였지만, 이에 대한 발언이 없었다는 것이 솔직히 아쉬움을 남겼다.
 
인사를 마치고 김시종 시인은 자작시 8편을 쉬지 않고 커렁커렁한 목소리로 낭송을 해서 심포지움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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