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근/ 아라요양병원 원장

며칠 전 모 방송에서 자사고(자립형사립고등학교) 재지정 탈락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대부분의 토론회처럼 한 시간 넘게 진행된 토론에서 의견일치가 이뤄진 부분은 없었다. 지정을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 모두 상대방 의견을 틀렸다고 보는 것 같다. 의견이 다른 것이 아니고 틀렸다고 보니 애당초 의견이 모아지기는 글렀다.

그 토론회를 보다 보니 우리나라의 많은 갈등이 결국 우리나라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즉 사회주의로 갈 것인지 자본주의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의견 통일이 되지 않고 그 간격이 넓으니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나라 헌법의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되어 있다. 아무리 민주주의 국가라 하더라도 사회주의 정책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사회주의인민공화국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수립된 이후 70년 넘게 우리나라는 자본주의에 입각한 시장경제를 옹호하여 왔다. 그런데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많은 부분에서 사회주의 체제로 바꾸려고 하니 마찰이 생기는 것 같다. 이것은 마치 몸은 고등학생으로 다 컸는데 중학생 옷을 입히려고 하니 어려움이 따르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과거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했던 사항들조차 무리하게 바꾸려고 하니 마찰이 심하다.

필자가 알기로는 이 자사고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고교평준화로 고등학교 교육이 하향평준화 되니 인재육성이라는 측면에서 많은 문제가 드러나고, 수월성 교육을 위해 외국으로 나가는 학생들이 많아지니 고육지책으로 마련한 것이 자사고이고 국제학교다. 공산주의 국가에는 사립학교가 없지만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에는 사립고등학교가 있다. 심지어 일제시대에도 사립학교는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학교법인이 세운 사립학교에는 국가에서 인력비나 건축비 등을 지원해 주고 있다. 이처럼 국가의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학교에 정부의 통제가 가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국민의 세금을 사립학교에서 마음대로 쓰도록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자사고는 애초에 국가의 지원이 없으니 간섭도 하지 않겠다고 하며 만들도록 한 것이다. 시장경제 하에서 법을 위반한 것도 아니데 국가가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으면서 간섭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과거 유신독재 시대에는 혼식을 장려한다고 도시락으로 쌀밥을 싸간 학생들이 제재를 받았던 적이 있다. 이 민주화 시대에 또다시 그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자사고를 반대하시는 분들의 주장을 보면 자사고 때문에 일반고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 불이익이 자사고가 저지른 것인가? 영어교육도시에 있는 학교들이 제주도 내의 학생들에게 어떤 실체적 불이익을 주고 있는가? 과거에 고교평준화가 이뤄지기 전에는 대부분의 명문 고등학교가 공립이었다. 사립학교들이 법인에서 재정적 지원을 하지 못 하고 있는데, 공립학교는 세금으로 지원을 해 주니 공립학교가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자사고를 허가해 주는 바람에 절약되는 세금이 일년에 수백억 원이라고 한다. 상산고등학교인 경우 그 동안 460억 원을 쏟아 부었고, 전국에서 오는 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해 190억 원을 투자해 기숙사도 건립했지만, 일반고로 바뀌면 그 지역 학생들만 다니게 되니 그 기숙사도 쓸모없게 된다. 자사고를 폐지하면 결국 법인에서 지원하던 금액을 세금으로 메워야 하니 그만큼 일반고들에게 돌아가는 지원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면 지금보다 일반고들이 더욱 나빠질 것이다.

지금은 소비자가 왕인 세상이다. 소비자들이 만족하는데 왜 제3자가 왈가왈부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국민 위화감을 들먹이는데, 그렇다면 6성급 호텔도 문 닫게 하고, 삼성의료원이나 현대아산병원도 폐쇄해야 한다. 이런 곳을 이용하고 싶지만 돈이 없어 못 하는 국민이 얼마나 많은가! 돈 없는 사람들이 이용할 수 없으니 문을 닫아야 한다는 논리는 적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통할 수 없는 논리다.

많은 국민들이 평등을 얘기한다. 모든 국민들이 평등하게 살 수 있다면 그처럼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근본적으로 평등하게 살게 되어있지 않다. 공산주의 국가들이 그 좋은 슬로건에도 결국 무너진 것이 이를 웅변적으로 증명한다. 능력이나 하는 일이 다른데도 일 한 시간에 따라 같은 보수를 받는다면 누가 힘든 일을 하려고 할까? 더구나 지금은 지구촌 시대다. 우리가 평등하게 살고 싶어도 다른 나라가 있는 한 이것은 실현 불가능하다. 돈 있는 사람들이 평등이 싫다고 돈을 싸들고 우리나라를 떠나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빈털터리가 된다. 모두가 공평하게 못 사는 사회를 우리 국민들이 바라고 있을까?

평등을 주장하면서, 왜 우리나라 국민들 중에는 노벨상 수상자가 없을까를 언급하지 말자. 남들과 똑 같이 하고서는 노벨상을 받을만한 업적을 이룰 수는 없다. 우리나라처럼 자원이 없는 나라는 인재를 키우는 것 이상 중요한 일이 없다. 고교평준화로 모든 고등학교 학생들이 대학을 골고루 가도록 하여서는 훌륭한 인재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깨달아야 한다.

국가의 세금이 쓰이지 않는 곳까지 오지랖을 넓히는 일은 그만 중단해야 한다.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