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대표하는 시인들의 시집이 계속 나와서 반가웠다.
김순이 시선집 <제주야행> 속의 시 8편을 소개한다.
  
해녀 금덕이

바다가 운다
우렁우렁 운다
뒤척이며 밤새도록 운다
마을은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데
금덕이여가 있는 성산포 바다
소용돌이치며 운다
하얗게 거품 일며 운다
성산포 사람들은 알고 있다
금덕이여가 울면 며칠 없어 태풍이 들이닥친다는 걸

금덕이는
200년 전 성산읍 신풍리에 살았던 대상군 해녀
아기 낳고 사흘만에 바다에 나갔다가
어지럼증에 그만 정신을 잃어

파도에 실려 먼바다로 떠밀려갔다
문득 정신이 들고 보니 바다 한복판
몸은 바닷 속으로 가뭇없이 잠겨갔다
아들 낳다고 좋아했는데
핏덩이를 두고 이렇게 죽는구나
그런데 이게 웬 조화인가
발바닥에 바위의 감촉이 닿았다
바위를 딛고 서보니 물은 겨우 허리께에 찼다
허리에 묶은 테왁줄 잡아당기니
구명보트 같은 테왁이 저만치서 이끌려왔다
이렇게 금덕이는 살아났고
그여에는 '금덕이여'라는 이름이 붙었다

금덕이여는 30만평, 바닷속 보물창고
최상품의 미역밭이었다
한양 임금님 수라상에 올리는 진상품 미역은
금덕이여에서 캐낸 것이 최고
금덕이여 자리돔은 성산포 일대에서는
물회로 젓갈로 크기는 작아도 사랑받는 물고기
전복도 구젱기도 금덕이여에서 잡은 건
크기도 크거니와 맛도 깊어 진미 중의 진미더라

금덕이는 대상군 해녀
뙤약볕 아래서 콩밭 검질 매다가도
물때가 되면
안장도 얹지 않은 말을 타고 바다로 내달렸다

불턱에서는 잡은 구젱기 손 크게 내놓아
허기진 동료 해녀들 군입거리로 주고
언제나 걸쭉한 입담 푸짐한 웃음으로
모두의 가슴을 훈훈함으로 덮혀줬던
진정한 대상군 해녀 금덕이 
금덕이여에서 캐낸 해산물로
집도 장만하고 밭도 사서 다들 부러워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장부
해녀 금덕이는 갔어도
금덕이여는 남아
저 바닷속 보물창고로 남아
지금도 해녀들 먹여 살린다

태풍이 올라치면
성산포 마을에 퍼져나가는
우렁우렁 바다의 울음소리
금덕이여 물결이 우는 소리
해녀 금덕이가 알려주는 태풍경보

제주 출신 문인만이 아니고 한국 문인 거의가 해녀 주제의 시를 쓸적에는 자신들 눈 높이보다 낮추고 비하 시키면서 쓴다.  그러면서 해녀를 제주 여성의 삶의 고생의 상징으로까지 비약 시킨다. 필자는 이것이 언제나 못 마땅했다.

그것은 아주 단순하다. 어째서 자신들은 고고한 척하면서 해녀를 그렇게 비하 시킬 수 있는가 말이다.
'우뜨리(중산간 마을)에서 동경의 해변가로 시집 온 처녀, 결국 해녀가 되고 말았다'라는 해녀 비하의 상징적인 시들도 등장한다.

우리는 해녀의 진취성과 도전성에 머리 숙이고 우리들의 눈 높이보다 위에다 두어야 한다. 진취성과 도전성 이전에 해녀들의 경제성도 무시할 수없다. 어려운 시절 시골에서 현금 유통이 제대로 아니 될 때에 해녀가 캐온 수산물들은 바로 현금이었다. 시골 경제구조의 엄청난 혁신적 개혁이었다. 그녀들은 해녀이고 어부(漁婦)였다.

순응의 발상 속에서 그 험한 바다에 뛰어든 해녀의 모습은 제주의 전설적 인어(人魚))로 승화되어야 한다. 인류의 유구한 역사 속에 이러한 예가 없었기 때문에 제주 해녀가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인들은 태어났을 적부터 해녀들과 같이 지냈기 때문에 변함없는 하나의 일상으로 인식하고 그 경이로움을 제대로 몰랐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해녀 금덕이>는 해녀의 시에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일대 서사시이다. 읽으면서 저절로 흥이 난다. 과장된 해녀 찬양이 아니고 사실 그대로가 아닐까. 여태까지 수 많은 해녀 시 속에 이러한 시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해녀 금덕이>는 오늘도 여기저기 제주 바다에서 인어처럼 유영하고 있다.
    
제주바다는 소리쳐 울 때 아름답다

맨살의 얼굴로
제주바다는 소리쳐 울 때 아름답다

외로울 때마다
바다를 생각하는 버릇이 있는
나는 바닷가 태생
구름에서 일어나 거슬러 부는 바람에
쥐어박히며 자랐으니
어디에서고 따라붙는 소금기
비늘 되어 살 속 깊이 박혔다
떨치고 어디론가  떠나보아도
되돌아오는 윤회의 파도가
내 피 속에 흘러
원인 모를 병으로 몸이 저릴 때마다
찾아가 몸을 담그는 나의 바다

깊은 허망에 이미 닿아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몸이 되었을 때
나는 바다로 가리라
소리쳐 울리라
제주바다는
맨살의 얼굴로 소리쳐 울 때 아름답다

 
태풍이 몰아칠 때마다 포효하는 파도 소리와 파도는 모든 것을 뒤집어버리고 새롭게 출발한다. 가슴에든 일상생활이든 간에 그저 흐르는대로 흘러가던 애매모호하고 미지근한 것들을 일시에 파괴 시키고 안고 가버린다. 그 시원함과 통쾌함은 바닷가에 나가서 본 사람들은 모두 한번쯤은 느꼈을 것이다.

산과 들은 사계절마다 변한다. 바다가 언제나 잔잔하고 조용한다면 한 때는 그 풍경에 매혹될런지 몰라도 바다가 소리쳐 울지 않는다면 그 바다는 죽은 바다이다. 바다가 소리쳐 울 때 산과 들의 사계절의 변화처럼 변해서 아름답다.
      
즉사를 꿈꾸며 

나의 죽음을 주문할 길은 없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외람되다 하지만
뜨겁게 사는 것 소망하듯이
그렇게 죽음도 뜨거운 죽음 바라면 죄 될까
연약함과 강인함이
얼음과 불처럼 엉켜서
소용돌이치는 내 영혼
그저 그렇게 살기엔
참 아름다운 세상에서
어디라 매인 곳 없이
어떤 사랑의 구속도 싫어했지만
나는 죽음의 올가미 다가오면
두려움 없이 뛰어들어 단숨에 베이는

즉사를 꿈꾼다
운명아 나를 사랑하라
오래 앓아 문병객의 연민어린 눈빛과
마주치게 하지 마라
내 고통의 씨앗을
사랑하는 이의 가슴에 뿌리게 하지 마라
가족들에 둘러싸여
할 일 다하고 남길 말 다 하고
잠자듯이 평온하게 사라지는 것
내게는 너무 과분한 끝장인 것을

천천히 사라지기엔
참 아름다운 이 세상
운명아 내게 목숨의 연장을
구걸하게 하지 마라
나는 일격의 고통
비명 지를 틈도 없는 즉사를 꿈꾼다

처음 이 시의 제목 '즉사를 꿈꾸며'만을 읽었을 때는 갑작스런 사고와 사건에 휘말려 목숨을 잃을 것 같은 아니면, 잃은 것 같은 착각과 충격 속에 전율을 느끼고 소름이 듣는다. 그러나 시를 읽은 후에는 안도와 긍정적 인생의 종말에 납득할 수 있다. 제목에 의해 손해 보는 시와 반대로 제목에 의해 득을 보는 시가 있다. '즉사'라는 단어의 거부 반응에 이 시는 손해 보는 시일런지 모른다. '즉사'와 대응할 수 있는 단어가 없지만 '순사(瞬死'는 어떨까.      

제주야행:濟州夜行
-가을-

나는 떠날 것이다
사라센인의 단검 같은
초승달을 벗 삼아서
한 마리 타박거리는 조랑말 등에 얹혀서
작은 바람에도 물결치는
바다를 품을 가슴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의 손을 잡고

나는 지날 것이다
어질게 잠들어있는
중산간 마을의 베개 맡을
전설의 열매가 소곤대는

아름드리 멀구슬나무 아래를
억새꽃 피어 뽀오얀 젖가슴 이룬
오름의 능선을
아이들 숨박꼭질하던 시골 초등학교
사철나무 울타리 곁을
밤이슬에 눈시울 적시는
들국화 핀 들판을
은빛 침 흘리는 초승달에

목축이며
이 밤에 나는 떠날 것이다
그 조용하고 단순한 풍경 속으로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 시간을 향하여 

타원형의 제주도는 지도에서 바라보는 시각적인 면에서도 안정감을 준다. 어질게 잠들어 있는 중산간 마을, 억새꽃 피어 뽀오얀 젖가슴 이룬 오름의 능선을 아이들 숨박꼭질 하던 시골 초등학교, 은빛 침흘리는 초승달에 목축이며 이 밤에 나는 떠날 것이다. 시각적 안정감을 넘은 소박스러운 제주도의 정서를 가득 담은 제주도 나그네이다. 

남아있어야 한다

남아있어야 한다
실없이 웃으며 지껄였던 말들이
날아가 꽂혔을 상처
모르는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스쳐 간 위험한 순간들
아니디 아니다 하면서도
그렇다고 긍정해야만 했던 거짖
그런 것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얼굴이 남아있어야 한다
안타깝게 떠나보내야만 했던 것들이
쓰러지는 소리 뒤에

밀려오는 슬픔과
모든 슬픔이 쏟아지는 소리 뒤에
찾아오는 공허와
마주할 수 있는 가슴
남아있어야 한다

위선과 거짖말도 살아 가는 삶의 한 방법이겠지만 그 부조리를 신부 앞에서의 고해성사보다는 자신이 자신에게 행했던 위선의 행위들은 자신에게 해야할 일이다. 남은 속일 수 있지만 자신은 못 속이는 진실이 있다. 그 속에 자신을 객관화 할 수 있는 가슴은 자신에게 향하는 스스로의 결자해지로서 '남아있어야 한다'  

길가에 서 있는 그대를 보았지

길가에 서 있는 그대를 보았지
파란 신호등 켜지길 기다리며
서 있는그대
광고 전단 붙였다 떼인 자국으로 얼룩진
도시의 전신주처럼 허름해 보였다
한때 내 사랑이었던 그대
주름이 풀린 바지 축 처진 어깨를 보며
곳곳에서 저렇듯 빨간 신호등에 발이 묶여
그대 삶이 고단하였구나
우산도 없이 빗길 같은 삶을 질척였구나

길가에 서 있는 그대를 보았지
빨간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며
서 있는 그대
기껏해야 일 년에 서너 번 세금고지서나 배달되는
시골집 우편함처럼 쓸쓸해 보였다

한때 내 사랑이었던 그대
굽 닳은 빨간 구두와 풀린 파마머리를 보며
곳곳에서 저렇든 파란 신호등 기다리며
그대 삶이 시들었구나
우산도 없이 빗길 같은 삶을 질척였구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우연의 만남 속에서도 모닥불처럼 피어오른다. 사랑했던 사람만이 아니드라도 많은 만남 속에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라는 쓸쓸함이 맴돈다. 을씨년스러운 시골집 우편함처럼, 파란 신호등 켜지길 기다리며, 곳곳에서 저렇든 빨간 신호등에 발이 묶여, 그대 삶이 고단한 것처럼, 우산도 없이 빗길 같은 삶을 질척였구나. 길가에 서 있는 그대를 보면서 자신의 삶의 회한이 아니고 그대의 삶의 회한을 신호를 기다리는 한 순간에 그려내었다. 
 
정신의 그믐

화려한 것의 이면에는
깊은 슬픔이 있다
향기로운 꽃송이 아래쪽에는
어둠을 뚫고 가는 잔뿌리의 아픔이 있다
즐겁게 노래하는 새의
뼛속은 텅 비어 있다
드러나지 않은 생의 이면이 우리를 만들어 간다
갈림길에서 나는 기꺼이 비포장도로를 택하였다
부르튼 발을 앓는 밤마다 
태아처럼 웅크리고 건너가는 불면:不眠

두려운 것은 궁핍이 아니라
기름진 삶이 가져오는 정신의 그믐이었다
높이 날기 위하여 창자를 비우는 새
겨울을 건너가기 위하여
알몸이 되는 나무
그들에게서 나는 배운다
무거운 이 세상 건너는 법을

'정신의 그믐'은 위에 소개한 '남아있어야 한다'는 시와 일맥상통하고 있다. 두려운 것은 궁핍이 아니라 기름진 삶이 가져오는 정신의 그믐이었다. 겨울을 건너가기 위하여 알몸이 되는 나무, 그들에게서 나는 배운다. 무거운 이 세상 건너는 법은 '비움의 철학'이다. 비움 속에 가득 채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채움은 언제까지 지속돼야 민족할 수 있을까. 시인은 조용히 묻고 있다.  

두서없이 쓴 시

외로운 이름일수록 한번 불러주고 싶다

키 작은 엉컹퀴 꽃아
마라도 엉컹퀴 꽃아
너는 키가 10㎝
자꾸만 후려치는 바람에 맞아
뺨이 붉다

마라도에선 바람이
땅을 샅샅이 훑으며 분다
소금기 잔뜩 묻은 혓바닥으로

외로움은 키가 작다
자꾸만 안으로 움츠리니까
외로움은 가시가 많다
바깥에다 자꾸만 울타리를 치니까

외로운 이름일수록
한 번 더 안아주고 싶다

마라도를 이렇게 응축 시킨 비유의 대상으로 선정한 신선함에 필자는 놀랬다. 외로움은 키가 작다/ 자꾸만 움츠리니까/ 외로움은 가시가 많다/ 바깥에다 자꾸만 울타리를 치니까/ 그래서 더 작아지고 외로울 수 밖에 없다. 그 조그마한 섬 마라도에서는 엉겅퀴 꽃도 자꾸만 후려치는 바람에 맞아 키만 작은 것만이 아니고 뺨까지 붉다. 이렇게 외로운 이름일수록 불러주고 싶어서 '두서없이 쓴 시'라고 했다.

'제주야행' 시전집에는 5부로 나눠져 80편이 게재되었다. 5부 '오름에 피는 꽃'에는 '거침없이 가리라' '해녀 금덕이' '오름은 살아있다' 등의 제주를 노래한 서사시가 많았지만 지면상 소개를 못하고 있다.

김순이 시인은 1946년 제주 출생. 이화여대국문과 졸업. 1988년 계감 <문학과 비평>에서 시 '마흔살'로 등단. 시집 '제주바다는 소리쳐 울 때 아름답다' '기다려 주지 않는 시간을 향하여' '미친 사랑의 노래' 등 다수가 있으며, 1996년 시선집 '기억의 섬'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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