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를 맞이하면 일본에서도 민족 대이동이 시작된다.
귀향이라는 궁극적인 목표 속에서 빚어지는 교통기관의 과잉 승차율과 역류현상은 연어가 강과 내를 필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회귀본능을 연상케 한다. 전형적인 농경사회였던 일본인의 귀향의식은 한국과 다를 바 없다.

어려웠던 유년 시절들까지 세월의 잔상 속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미화되면서 어느 사인가 고향은 모두의 마음속에 유토피아로 자리 잡는다.

이 자장가와 같은 시골 고향에 이변이 일어났다.
지난여름부터 일본 전국의 농촌 지역에서 농작물 도난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처음에는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된 수박의 도난 사건이었다.  출하시기를 조절하면서 수확하려던 수박 이십여 개가 하룻밤 사이에 도둑맞았다.  신문 기사에는 가쉽(gossip)란에 게재될 정도였다.

 그런데 그 후 여기저기서 수박만이 아니고 메론 등은 물론 과수원의 복숭아, 앵두, 배까지 도난당하는 사건이 계속 터졌다.  가쉽(gossip)란에 실리던 신문 기사가 사회면을 크게 장식하고 TV, 뉴스에도 방영되었는데 그것만이 아니었다.

추수철에는 막 거둬들인 쌀과 심지어는 논에 있는 벼까지 탈곡기를 갖고 와서 훔쳐 가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처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났을 때는 여유 있는 웃음 속에 별난 도난 사건도 다 있구나 하고 모두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었다.

그러나 계속 일어나는 농작물 도난 사건에 각종 메스컴은 사태의 심각성을 일깨우면서 심층 보도하기 시작했다.   도시에서 일어나는 절도나 강도 사건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요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농촌에서 연일 발생하는 농작물 도난 사건은 농경사회의 기본 질서를 송두리째 파괴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생활 범위가 동일 지역이라는 사실이었다.

도시에서 일어나는 각종 범죄는 외국인의 개입된 측면도 부정할 수 없으나 농촌 지역의 농작물 도난 사건은 일본인 스스로가 빚어낸 파렴치한 새로운 범죄 형태였다.

일부 몰지각한 자들의 소행이지만 경제 대국이라는 풍요로움 속에 일어난 도덕의 빈곤성에 일본인들이 받은 충격은 너무나 컸으며 일본 사회에서 공존 공생하는 외국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추수기를 지나면서 이러한 사건은 종식되었지만 다시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김길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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