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철 시인의 시집 "사고 싶은 노을"을 일본인 후지나가 시인을 비롯해서 두분이 오시인으로부터 받으셨다.

이것이 인연이 돼서 필자가 오시인의 작품을 번역하게 되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번역하여 일본인 시인들과 감상회를 갖을 생각이었다.

이 사실을 제주에 계신 김순이 시인님께 알렸더니 "제주 문인협회" 홈페이지에 게재하셨다.

지난 7월 20일이었다.

제주 시인의 작품을 일본어로 번역해서 감상회를 갖는다니 참 기쁘다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필자는 깜짝놀랐다.

격려해 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다시 김순이 시인님을 통해서 FAX로 보냈다.

필자는 한글 파소콘 메일 주소도 없고 보낼 줄도 몰라서 언제나 FAX로 연락하고 있다.

인터넷 신문에 글 쓰는 사람이 메일을 사용않고 FAX로 보내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다.

한국에는 FAX 사용하는 사람들 거의 없습니다.

제주투데이 조맹수 대표 이사로부터 언제나 놀림 받고 있지만, 읽을 수는 있으니 만족하고 있다.

이렇게 문협 홈페이지에 8월 30일까지 46건이 댓글이 이어졌다.

한 사람이 복수로 올린 댓글들도 있지만 그 격려의 고마움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8월 27일 감상회 때, 제주문인협회 고성기 회장님의 시 "별도봉 앞에서"와 채바다 시인님의 "내 사랑 제주"도 같이 번역했다.

문인협회 회장이라는 고성기 시인님에 대한 예우였고, 채시인님의 경우에는 일본에 대한 시를 많이 쓰셨고 뗏목을 타고 일본에 오셨던 점에 대한 보답이었다.

오승철 시인의 시집 번역을 일본인에게 부탁 받은 필자는 "딸새" "인동초" "사고 싶은 노을"을 번역했다.

8월 27일 저녁, 이곳 후지나가 시인 댁에서 식사를 나누면서 밤 열한시 넘도록 다섯편의 시를 감상했다.

또 오승철 시인께 멧세지를 부탁했더니 제주 문인협회 문인들과 오사카 문인들과의 교류도 앞으로 이뤄지기 바란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리고 십여년간 오사카에 사시다가 2년전에 이곳에서 갑자기 돌아가신 누님 얘기도 써 있었다.

작년 9월 이 난에 "사고 싶은 노을"에서도 썼지만 오시인 누님이 돌아가신 전후를 필자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시집 제목이기도 한 "사고 싶은 노을" 시를 참 좋아한다.

내용은. 전략(前略)

일본말 서울말 보다/제주말이 더 잘통하는/쓰루하시.저 할망들 어느 고을 태생일까/좌판 옥돔의 눈빛 반쯤 상한 고향 하늘/

송키.송키 사압서 낯설고 언 하늘에/엔화 몇 장 쥐어 주고 황급히 간 내 누님아/한사코 제주로 못 가는 저 노을을 사고 싶다.

작년 3월 제주에서 오 시인을 만났을 때, 지금 병석에 누워 계시는 어머님께 누님이 돌아가신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1일 오후 여섯시 반에 제주 문협회원들께서 조문 가신다는 기사를 문협 홈페이지에서 읽었다.

깜작 놀랐다.

8월 27일 감상회 때 "사고 싶은 노을"을 낭송하면서 돌아가신 누님과 어머님 관계도 설명했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오 시인의 시와 고성기 회장님 채바다 시인의 시를 번역하게 이르러 감상회도 마쳤었다.

이떤 인연을 느끼고 있다.

먼저 돌아가신 딸과 어머님은 지금 무슨 얘기들을 나누고 있으실까

명복을 비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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