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글 편 하나를 읽어보면 얼마나 섬 땅 제주를 사랑하는지 안다.

우리 땅 어딘들 아름답지 않는 곳이 있을까마는 제주 만큼 독특한 문화와 태고의 신비가 가득한 곳이 또 있을까.

돌뿌리가 생채기를 내듯 팍팍한 땅 제주에서 나고 자란 시인 허영선(47)은 제주의 찬란한 아름다움 속에 꿈틀거리는 여성의 한(恨)을 숨을 죽이고 오랫동안 엿보아 왔다.

그리고 화산회토가 빚은 천혜의 풍광 뒤에 오랜 세월 아픔으로 남아 있는 '항쟁사'(抗爭史)의 현장이자 '저항의 땅'에서 그는 제주를 통해 세상을 보려 애썼다.

치밀한 글쓰기로 '세상 읽기'

다소 메말라 보이는 낯빛에 풍부한 감성을 풍기는  그는 시(詩)인지 에세이인지 모를 정도로 문체의 경계선을 맘껏 넘나들며 치밀한 글쓰기를 보여준다.

그래서 어쩌면 펴 낸 이번 칼럼집은 한편의 산문집으로도 읽힌다.

시인 이기형씨(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는 이 책을 읽고 '제주도 인간과 풍물을 중심으로 세계사 전개에 대한 서정·서사시적 접근'이라는 명제를 떠올렸다.

모두 4부로 이뤄진 각각의 글마다에는 제주에서 본 문화 코드를 통해 세상을 읽어내려 했던 그의 생생한 경험이 녹녹이 스며있다..

'여성의 눈으로 말하라'

수많은 제주여성들의 실명을 통해 현대사의 비극인 제주4·3의 아픔을 다룬 제1부 '4·3 그리고 여성-잃어버린 기억'.

섬 땅 할머니들의 입을 통해 '4·3을 말하는' 저자는 여성운동의 시각을 바탕에 두고 여성폭력과 인권유린을 고발한다.

제2부'선흘곶을 아십니까'는 제주의 자연과 환경에 관심을 가져온 저자의 무너지는 제주자연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절함을 전한다.

팽나무, 동자석, 제주습지 등 제주 자연과 풍토를 다뤘다.

제3부 '아름다운 사람들'에서는 희망가를 부르는 숱한 이웃들을 찾아간다.

주로 우리 사회의 그늘진 구석에서 따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북에서 만난 얼굴들, 비룡스님의 수행법, 무명의 제주 마라토너였던 '황영조', 노어부 김래반씨 등.

제4부 '이 땅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은'에서는 통일음악가 윤이상, '감자꽃' 시인 권태웅, 재일동포 화가 송영옥과 시인 김시종 등 타지인의 삶과 예술을 통해 자칫 지역주의에 매몰될 수 있는 문화의 지평을 넓히려 애썼다.

그리고, '당신은 누구인가'

그 속에서도 지역 문화 현실을 꿰뚫고 예술인들의 복지를 촉구하는 애정도 잃지 않았다.

시대를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살아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는 저자.

마치 질주하는 자동차 처럼 브레이크 없는 삶의 궤도속에서 자연의 흐름처럼 깊이있는 '느림의 문화'를 말하는 저자는 '좀 더 더디게 가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되묻는다.

'자연과 삶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이땅, 고통스러울 만큼 황홀한 몸을 가진 이 땅에 생을 기대는 나는 누구인가'<도서출판 책만드는 공장 刊. 정가 9000원>

▲ 허영선 시인.

제주시 출신으로 신성여고와 제주대를 나왔다.1981년 제주신문(현 제주일보)에 입사해 제민일보 창간멤버로 참여, 22년간 기자생활을 했다.

'섬, 기억의 바람'은 제민일보 문화부장 시절부터 올해 3월 편집부국장까지 지내는 동안 5년여에 걸쳐 '제민일보' 문화컬럼으로 연재한 글 94편을 마치 '구슬 꿰듯' 엮은 책이다.

1980년 '칸나' '제주바다' 등으로 '심상신인상'을 통해 등단한 후 1983년 첫 시집 '추억처럼 나의 자유는'(청하출판)을 출간한 시인 답게 감성적인 문체와 특유의 단문으로 처리한 글솜씨는 기존의 컬럼집과는 다른 맛을 준다.

시인의 따뜻한 감성과 컬럼니스트의 날카로운 분석력이 공존한다고나 할까.

그만큼 제주에 대한 사랑과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고민이 컬럼 하나 하나에 녹아있다.

'한라산의 꽃' '한라산의 노루' 등으로 유명한 생태 사진작가 서재철씨(포토갤러리 자연사랑 대표)의 서정적인 흑백 사진이 읽는 맛을 더해준다.

저자는 조만간 두번째 시집을 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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