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일인극 할머니>

일본인 야노 요오코(矢野 陽子 64)씨의 일인극은 제목부터 걸작이었다.

<와르르르...>였다.

우리말 부사(副詞) "와르르"를 사용했다.

뜻 그대로 무너지는 상황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11년전 일본에서 일어난 한신대지진(阪神大地震)때 코오베(神戶) 나가다쿠(長田百)에 살고 있던 동포 할머니의 이야기였다.

여덟 시간만에 구출된 할머니는 극한상황 속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경상도 시골 출신인 김남순 할머니는 결혼 1개월만에 행방을 감춘 남편을 찾아 일본에 왔다.

도쿄(東京)에서 재회한 남편과 함께 생활하지만 차별과 가난 속에 하루살이 일상을 보낸다.

그러다가 아는 사람이 있는 고베(神戶)로 이사를 가서 일본인이 경영하는 목장에 가서 품팔이 생활을 시작했다.

소가 먹는 먹이보다 못한 음식을 먹으면서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구두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했다.

그 사이 밀주 막걸리를 만들고 담뱃잎을 구해서 금지된 담배를 만들어서 팔았다. 그때마다 단속에 걸려서 남편은 몸을 숨기면서 제대로 일을 안했다.

김남순은 이를 악물고 구두의 미싱일을 하면서 2남1녀를 두고 가정을 지켰다.

일을 않고 빈둥거리던 남편은 술집만 기웃거리다가 쓰러져서 젊엇을 때 죽었다.

<장남은 도쿄에서 의사로서 잘 살고 있으니까 둘째 아들한테 집을 물려 준다>고 지진으로 무너진 집속에 갇혀서 유언을 쓴다.

딸 한테는 현금을 준다지만 그 돈은 미싱일 하면서 받을 돈이 있는 회사에 가서 수금하라고 적는다.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희극적으로 승화시키면서 관객들을 웃음의 세계로 유도한다.

글을 배우기 위해 어머니 야간학교에 다니면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드라마틱한 인생이 아니고 동포 어느 가정에도 있는 일세 이야기였다.

그런데 많은 감동을 준 일인극이었다.

약 두시간 동안의 극이었는데 야노 씨의 연기는 일세 할머니 그대로였다.

김치를 담그면서 들려주는 회상과 현실이 조화를 이루고, 덩실거리는 춤과 민요도 일품이었다.

여기에 판소리의 고수(鼓手)처럼 장단을 치는 악사(樂士) 조박(49) 씨의 곁들임이 극을 더욱 감동시켰다.

가수인 조박(趙博)씨가 스스로 치는 북과 장고의 반주 속에 부르는 한일 양국의 노래는 일인극을 입체화시켰다.

지난 12일 오사카 크리스찬 홀에서 공연했던 <와르르르>는 야노 씨의 우리 할머니 시리즈 네번째 작품이었다.

야노 씨는 동포 2세인 제주 본적지이며 일본에서 유명했던 배우 마르세르 타로오(太郞 2001년 별세)씨의 희극 첫 작품부터 전 작품에 출연했다.

이것을 계기로 <야노 요오코 희극 숍>을 기획하여 새로운 형식의 일인극에 도전하여 할머니 시리즈를 전개하고 있다.

조박 씨는 경남 김해가 본적지인 2세이다.

<나니와(浪速):오사카의 옛 이름)의 가수 거인>이라는 이명을 갖고 있는 가수이며, 저서도 몇권 낸 동포 문화인이다.

부인은 구좌읍 월정리가 본적지인 2세 무용가 김군희(金君姬)씨이다.

재일동포 이야기라면 제주 출신 이야기가 압도적인데 김남순 할머니는 경상도 출신이라는 것이 이색적이며 신선했다.

야노 씨가 한국어 대사로 일인극을 한다면 꼭 한국에서 공연하여 들려주고 싶은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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