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기인 신부
"조성 중인 4.3평화공원이 정말 진정한 4.3의 역사정신을 담아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로 알려진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 송기인(宋基寅ㆍ66ㆍ부산교회사연구소장) 신부가 10일 오전 배편으로 제주를 찾았다.

이날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가 운영하는 민주공원(관장 설동일)의 이명곤 사무처장을 포함해 민주공원 관계자 6명과 함께 찾은 그는 제주에 오자마자 오전 11시부터 열린 북촌 주민 희생자 위령제를 비롯해 '너분숭이' 애기무덤 등 최근에 발굴된 4.3 현장들을 꼼꼼히 둘러봤다

"4.3은 가슴 아팠던 역사의 기억입니다. 4.3 유적지와 사업 현장들을 직접 보고 마음속으로 배우고 싶었습니다."

이날 북촌리 주민들이 마련한 합동 위령제 현장에서 4.3 당시 희생된  479기 영령들에게 분향을 한 그는 마지막까지 남아 음복에 참가하며 4.3의 고혼을 위로했다.

그는 4.3평화공원이 어떻게 들어설지에도 관심이 많다.

"민주공원 운영을 경험해본 저희들로선, 무엇보다 4.3 기념 사업에 국민전체가 공감하는게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4.3이 지역사만이 아닌 이유이기도 하지요."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가 운영하는 민주공원은 4.19혁명, 부마 민주항쟁, 6월 민주항쟁 등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을 헤쳐온 부산시민의 민주항쟁 정신을 재조명하고 계승하는 공간으로 설립됐다.

제주4.3연구소는 민주공원 (부설) 민주주의 사회연구소'와 네트워크를 이루며 각종 교류사업을 해오고 있다.

이날 4.3연구소팀과 함께 북촌 4.3 현장을 돌아본 이들은 선흘 4.3 흔적지지역과 제주시 봉개동에 조성 중인 4.3평화공원 현장을 둘러본 송 신부는 "부산 민주화기념사업과 4.3 기념사업과의 체계적인 연관성을 많이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주소가 '한림읍 협재리'
▲ 부산 민주공원.
부산민주공원(www.demopark.or.kr) 은 1995년 (사)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에서 민주화 상징공원 조성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시작, 다음해인 지난 96년 7월 부산민주공원조성 범시민추진위원회가 구성되고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속에 지난 97년 10월 16일 착공, 이어 99년 10월 16일 개관하는 등  만 2년만에 완공됐다.

부산 중구 영주동 중앙공원 안에 위치한 민주공원은 국비 80억원과 시비 80억원등 총16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돼 2만3백여평방미터의 부지에 지하 1층,지상3층, 연면적 5천280평방미터 규모로 건립됐다.

지상1층에 중강당과 소강당 지상2층에 사무실과 자료실, 휴게실, 상설전시실 지상3층에 기획전시실과 전산실을 갖췄으며 야외는 야외공연장과 휴식공간으로 조성됐다.

상설전시장은 숲과 철조망이 있는 체험공간인 '회상의 숲'을 비롯해 부산의 함성, 확산의 망, 연대의 공간, 추모의 공간 등 11개의 개별공간으로 분리돼 민주공원의 심장부 역할을 한다.


그 밖에 환경친화적으로 조성된 수목원과 야생초류공원,주차장을 겸비한 일주도로,"고난의 장, 추념의 장, 염원의 장,정의의 장"등 테마별로 꾸며진 쉼터가 건물 주변 곳곳에 위치해 지난 20년을 회상하며 휴식할 수 있고 관광객들에겐 또다른 테마공원으로 자리잡을 것 같다.

학생시절부터 제주를 좋아했다는 송 신부는 현재 한림읍 협재리에 방 한칸을 마련해 놓고 가끔 제주에 내려올 때마다 머물고 있다.

이미 90년초에 한림읍 협재리로 주소지를 옮겼을 정도로 제주 애착이 강하다.

"이미 제주에 오기 전부터 제주의 허승조 신부, 소설가 오성찬씨,  화가 강요배씨와 4.3과 관련한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을 정도예요."

오성찬 소설가는 송 신부가 요산문학상위원회에 있을 당시 오씨가 요산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인연을 텃다.

강요배 화백과는 민주공원에서 초정 작품 전시를 가진 적이 있을 정도로 막역하다.

"1년에 60일 정도는 제주에 머무는 편입니다. 이번에도 대략 두 달가량 제주에 머물 계획입니다"

노 대통령과의 인연

그는 19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때 변론을 맡은 당시 노무현 변호사를 처음 만난 후 "정치하기 싫다"는 오늘의 노 대통령을 정계로 이끈 장본인이다.

"정치는 할 생각이 없지만 선거운동은 한번 멋지게 하고 싶다"는 당시 잘 나가던 변호사를 구슬려 오늘의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어낸 것이다.

부산원예고, 카톨릭대를 나와 1972년 서품을 받은 송 신부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창립 멤버로서 유신철폐를 주장한 '3ㆍ1 민주선언'에도 참여하는 등 70년대 부산 민주화 운동을 이끌어왔다.
 
지금도 부산재야세력의 대부로 통하는 송 신부는 주변에서 노 대통령의 '원형'(原型)이라고 말할 정도.

한때 대통령이 결정한 이라크 파병에 대해 파병 반대 시위를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던 그에게 현재 노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에 아쉬움이 많지 않느냐고 물어봤다.

"지금 대통령은 잘 하고 있어요. 그런데 개혁은 국민 누구나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좀 더 천천히 가는 개혁의 속도조절이 필요한 것 같아요."

노 대통령의 약점을 지적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그는 조금 조급해 보이는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서도 "조금만 조급증을 버리라"고 고언했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