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미에(踏み繪)"

후미에는 일본만이 사용하는 관용어(慣用語)이다.

에도(江戶:東京의 옛이름)시대인 서기 1629년에 당시 금지했던 기독교 신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사용했던 수법이다.

예수나 성모 마리아를 새긴목제 조각이나 금속판을 지면에 놓고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면 그것을 밟고 앞으로 나오고 또 신자였지만 앞으로는 기독교를 안 믿는다는 의미에서 밟으라고 강요했던 권력자의 명령이었다.

생명을 건 선택이었다.

밟지 않으면 처형이고 밟으면 기독교를 안 믿었다는 것과 안 믿는다는 의사 표시이고 가령 믿지만은 목숨이 아까워서 밟는다면 자기 배반이다.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때 유리한 입장에 있는 쪽이 상대방을 굴복 시키기 위해 굴욕적인 조건 제시를 하고 복종하라는 의미에서 내미는 안(案)을 <후미에>라고 한다.

최근 일본 여당인 자민당이 이 안을 내놓아서 어제 결착을 봤다.

작년 9월 고이즈미 전수상은 우정(郵政)민영화가 참의원에서 부결되자 중의원을 해산했다.

헌법상 이것은 위헌이라는 맹비난을 받았지만 고이즈미 수상에게는 마의 동풍이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우는 격이었다.

이때 자민당 중의원 국회의원 중에 우정 민영화에 반대한 의원들을 당 공천에서 배제하고 그 지역구에 새로운 후보를 내세웠다.

자객(刺客)후보라는 유행어가 나왔고 지금도 그때 당선된 자민당 의원들에게는 이 꼬리표가 붙어있다.

자민당 거물 정치인들도 공천을 받지 못해서 이당을 해서 신당을 만들거나 무소속으로 입후보했다.

울분 속에 자민당을 떠나 무소속으로 입후보한 후보자 중 12명이 자객 후보들을 물리치고 당선됐다.

금년 9월에 임기 만료로 물러난 고이즈미 수상의 뒤를 이어 아베진조오 정권이 탄생했고 내년 여름에는 참의원 선거가 있다.

그런데 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이 겨우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인데 내년 선거 때는 과반수를 넘지 못할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과반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민당에서 제적 당한 무소속 중의원 의원 12명의 지원이 절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그들은 우정 민영화를 반대했던 의원들이어서 복당 시키는데는 대의명분이 필요했다.

그들 또한 자민당 복당을 위해서 모소속으로 남았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지역구에서 무소속 후보들에게 패배하고 비례 대표로 당선된 의원들과 자민당 압승으로 예상 외로 당선된 의원들의 맹반대와 과반수를 넘는 국민여론의 비난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자민당 집행부는 그들에게 서약서를 요청했다.

당의 규칙을 준수하고 아베 수상의 소신 표명과 우정 민영화에 찬성하며, 이러한 서약을 위반했을 때는 의원 사직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12명 중 11명의 의원은 이 서약서를 27일 날 제출해서 아베 수상의 재가를 받았다.

그런데 히라누마 다케오(平沼 赳夫 67)의원만은 서약서를 제출하지 않고 입당원서를 냈다.

우정 민영화에 찬성할 수없다는 것이었다.

여러 부처의 대신(장관)을 역임하고 수상 후보중의 한 사람이었다.

자민당에서 제명 당했지만 그의 영향력은 막대하고 12명의 무소속 의원의 복당 협의 때는 대표로서 창구 역할을 담당했다.

11명의 의원들은 복당을 위해 전부터 우정 민영화를 찬성했었지만 그 만은 마지막까지 반대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를 굴복 시키기 위해 자민당이 서약서 제출을 요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굴욕적인 서약서는 제출 않겠다고 해서 입당원서만 냈지만 거부 당했다.

이로 인해 지금 자민당은 갈등을 빚어내고 있지만 앞으로 그의 움직임은 주목의 대상 속에 내년 참의원 선거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없는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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