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도 무서워도, 그리고 전율하면서도 우리들은 죽음에로 귀성(歸省)해야 한다. 소름을 치면서도 떨면서도 절망하면서도 거기 되돌아가야 한다. 그리곤 붙들어야 한다. 우리들 눈앞에 바로 잡아앉혀야 한다. 뭉크의 그림에서 그렇듯이 에누리 없는 죽음의 리얼리티, 박진하는 그 현실을 향해서 눈길을 곧추잡아야 한다."


죽음, 그것은 쉽게 말해지지 않는다. 우리는 죽음을 언제나 유예된 것이라고 애써 믿는다. 그리고 죽음을 우리 자신의 삶에서 추방하려 한다. 죽음을 말한다는 것은 곧 우리의 불안하고, 두려운 삶의 끝을 바로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문학자인 김열규 선생-내가 그를 선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내가 그와 특별한 사제간의 인연을 맺어서가 아니다. 다만 그의 책에서 보여준 죽음에 대한 진지한 사색. 그것이 삶을 앞서 살아간 사람이 내게 전해준 하나의 사사라고 믿기 때문이다-의 '메멘토 모리 ...'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어느 성현이 이야기했다고 했던가. 삶도 어려운데 어떻게 죽음을 논할 수 있겠는가하고...


한국인의 죽음론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 '삶을 다그치듯 죽음을 잊지 말자'고 하는 그에게 죽음은 삶의 다른 체현이자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자아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세 가지 태도를 보인다. 그 중 하나가 외면이다. 또 하나가 유예이다.
삶에서 죽음을 외면하는 것이나, 죽음을 먼 피안의 세계에 도래하는 것이라고 믿는 것, 그것은 삶을 단순화하는 과정이며, 죽음 이후의 세계를 종교적 유토피아에 맡기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이데아로서의 타나토스론이다. 흔히 옷 갈아입기로 비유되는 그것은 죽음은 삶의 옷을 버리고 또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라는 믿음이다. 영혼이 불멸하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이 실체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는 것이며 삶이라는 헌 옷을 벗어던지는 일이라면 죽음은 대수롭지 않은 것이 되고 만다. 이데아로서의 타나토스론은 결국 죽음을 걸레고 만들고 쓰레기로화하고 결국 황폐화시킨다.


그는 말한다. 삶은 한 번뿐이기에 그 중요성, 중대성을 확보한다고. 이러한 삶의 일회성은 삶의 허무나 삶의 포기를 종용하는 것은 아니다. 죽음은 삶의 끝에 오는 것이 아니다. 삶 속에 보이지 않게 간직되어 있던 죽음이 어느 날 문득 다 갖추어진 모습으로 삶 전체를 뒤집어 보이는 것 뿐이라고.


죽음을 삶의 한 복판에서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죽음을 생각하고 삶을 사랑하라. 우리 삶의 태도가 곧 죽음에 대한 태도이다.


제주에서 짧은 일정을 마무리 하고 3년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들었다. 불과 며칠전, 제주에서 만나뵜던 분의 부음을 전해들었기 때문이다. 문화부 기자시절, 남다른 인연을 맺었던 분이라 더욱 실감나지 않았다.


쓴 소주 한잔을 빈 속에 털어넣으며 우리의 삶은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뜬 이들이 만들어낸 대지 위에 발붙이고 있음을 새삼 생각했다.
부디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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