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년여에 걸쳐 자전적 성장소설을 통해 어린이의 눈으로 일제침략기, 해방직후의 혼란기와 제주4.3, 6.25 이후 등의 이야기를 그려낸 소설가 현길언씨(65.한양대 인문학부 국문과 교수).

그가 최근 '작가의 문명탐험'이라는 부제를 달고 '홍콩에서 예루살렘까지'(254쪽.푸른사상사.1만 5000원)를 펴냈다.

문학비평가로서 누구보다 왕성한 활동을 하며 수많은 문학이론 관련 저서를 펴낸 그가 들고 나온 주제는 '문화'와 '삶'.

이 책은 현 교수가 직접 세계의 각지를 돌아보면서 쓴 여행기다.

그러나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작가의 문명탐험'이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이 각 여행지를 문명사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독특한 여행기랄까.

인간은 각각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피부색과 체격과 언어가 다르고 음식과 사는 집의 구조가 다르다.

그런 가운데도 땅 위 하늘과 자연은 다르지 않다.

자연은 겉으로는 다르게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같은 부분이 많다는게 저자의 생각.

▲ 작가 현길언
'몽골 시골의 전통 가옥 게르에서 잠을 자다가 새벽에 깨었는데,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덜 깬 잠에서 고향집에 돌아와 있는가 생각했다. 어릴 적 새벽마다 들었던 그 소리들을 몽골의 시골 새벽에 다시 들을 수 있다니, 갑자기 불편했던 잠자리가 편안해졌다. 그런데 그 소리는 다시 하노이의 한 호숫가 호텔방에서 들을 수 있었다. 일어나 밖으로 나와보니 호텔 건너에 있는 농가에서 닭과 개가 어울려 놀고 있었다. 순간 제주도와 몽골과 하노이가 닭과 개의 불확실한 언어에 의해 하나가 됨을 느꼈다.'

몽골의 시골 마을과 저자의 고향인 제주도의 어느 한 곳과, 그리고 하노이의 호텔에서 순간 '같음'을 느꼈다는 저자.

어쩌면 저자는 여러 지역의 문화도 겉으로는 각각 다르지 마는 조금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매우 많은 부분이 비슷하거나 같음을 알게 된다는 사실을 현지체험을 통해 생생하게 들려준다.

저자는 "동질성을 확인하는 일이 바로 여행의 즐거움이요,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일 것이다"라고 말한다.

즉, 세상 사람들은 겉으로는 각기 다르게 살고 있지만 결국은 무엇인가 어떤 하나의 모습을 지향해서 살아가고 있다고 느낄 때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것이다.

또 카이로와 시나이 반도를 거쳐 예루살렘에 이르는 여행에서 야훼신의 존재성과 그를 좇아 살았던 그 민족의 삶의 양식들을 알아가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

▲ 작가 현길언 교수
1940년 제주에서 출생해,  제주대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한양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대학교 교수를 거쳐  현재 한양대학교 국제문화대학 인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제주도 설화논집인 '제주도 장수설화'를 비롯해서 소설에 대한 이론서 '한국 소설의 분석적 이해' '소설쓰기의 이론과 실제' '문학과 사랑의 이데올로기' '소설에 나타난 한국인의 얼굴' 등이 있다.

또 성경문학적독법으로 읽고 이해한 '문학과 성경', 1980년 <현대문학>을 통하여 등단한 후 '용마의 꿈' '껍질과 속살' '우리들의 조부님' 등 10여 권의 작품집을 냈다.

장편으로는 '한라산' '투명한 어둠' '벌거벗은 순례자 등과 지난해 3편으로 완간한 어린이성장소설 3부작 '전쟁놀이' '그때는 한 살이었다' '못자국'을 펴냈다.

최근엔 일제강 점기 한국의 유명소설 속 등장인물의 성격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소설에서 만나는 한국인의 얼굴」(태학사 刊)을 펴냈다.

김동인, 채만식, 최서해, 주요섭, 계용묵, 심 훈, 이 상, 이태준, 이효석, 한설 야, 현진건, 나도향, 황순원 등 작가 55명의 대표작 중 중심.주변인물의 성격과 행 동양식, 인물정보, 세계관, 서사성을 요약한 방식이다.

김동인의 경우, 「배따라기」의 '나'를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슬픈 노랫 가락에 쉽게 눈물짓는 감정이 풍부하고 예민한 인물", "배따라기에 유별난 애착을 갖고있다" 등으로 설명하며 자연스럽게 소설의 인물과 줄거리를 소개했다.

'이르크츠크'하면 떠오르는 바이칼도 서로 낯선 모습이 아니다.

바이칼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로 우리민족의 원류가 숨쉬는 곳이라는 민족 정신의 줄기가 면면히 흐르고 있기 때문일까.

이르크츠크를 상징하는 '데카브리스트' 또한 여흥에서 자유롭지 않다.
1825년 러시아 역사 최초로 개혁을 부르짖으며 혁명을 일으켰던 귀족 청년 장교들을 총칭해서 부르는 '데카브리스트'.

러시아어로 '12월'(데카브리)인 뜻으로 그들이 12월에 혁명을 일으켰기 때문에 '12월혁명당원' 이라고 부르는 그 곳.

지금도 이르크츠크 시내에서 볼 수 있는 집들은 그들이 봉기 실패 후 시베리아로 유형생활을 할 때의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세상을 이해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다는 단순 논리도 어쩌면 여행에서 터득할 수 있다.

그래서 고된 여행을 떠나는 것인가.

여행지에서 만나는 자연과 사람들과 거리의 풍물에서 사람 살아가는 모습과 숨결의 친근함을 느낄 때면 즐겁다.

여행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는 것은 사람은 결국 나그네성을 타고났기 때문일 것이다.'

<목  차>

․ 홍콩의 지혜와 그 정신
․ 원시와 문명이 공존하는 섬
․ 친자연 문화와 반문명성: 몽골
․ 들꽃의 자유와 자작나무의 순수: 이르크츠크와 바이칼 호수
․ 혼돈과 질서의 나라 미국의 풍경
․ 영원한 변방에 부는 바람: 오키나와
․ 바다와 땅이 만나는 곳: 시모노
․ 역사의 도시 로마
․ 이집트와 시나이 반도
․ 전쟁과 평화의 나라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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