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그리트(rene francois ghislain magritte 1898~1967 벨기에)
물고기 여인이 되어 모래 뻘 위에 가만히 누워 보았다.
그녀의 가슴은 바다를 꿈꾸고
그녀의 몸뚱어리는 그것을 구속한다.
관념과 실재의 틈바구니에서 그녀의 눈동자는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지금 학교는 신구간이다.
어느 선생님이 떠날까, 오시는 선생님은 어떤 분일까, 올해 맡게 될 업무는 무엇일까, 어느 학년 수업을 맡게 될까 등 등 궁금증과 기대감에 들떠있는 요즘이다.
좋은 만남을 기대하면서.

유난히 큰 키에 맑은 눈매를 한 김수열 선생님과의 만남이 그러했다.
"강선생님은 왜 그림을 안 그리세요? 내 아이들이 나를 시인으로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러고는 어느 날 내 책상 위에 시와 함께 그림을 부탁한다는 메모가 놓여져 있었다.
며칠 고민하고 망설이다 끝내 손을 대지 못하고 헤어졌다.
다시 붓을 잡기는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음을 알지만 지금도 그렇게 헤어진 것이 아쉬움으로 마음에 남아있다.
마그리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니 그 선생님의 시가 생각난다.
그는 시를 통하여 그림을 그리고 마그리트는 회화를 통하여 시를 쓰고 있다.

마그리트는 모든 이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에 질문을 던지며 어떻게 다른 것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마그리트는 인간 사유의 패러독스를 작품에 담으려 했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것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우리가 사물을 본다는 것은 실재가 있고 그것을 인간의 머리 속에서 인식하게 되는 것인데 그럼 우리가 보는 사물은 바깥 세상에 실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머리 속에 투영된 것인가?
마그리트는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을 낯설게 함으로써 그 특유의 초현실주의를 창조했다.

마그리트의 반인반어(半人半漁)로 그려진 <집합적 발견>은 현실의 공간과 허구의 공간을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묘한 착각을 일으켜 보는 이로 하여금 끔찍한 충격에 빠지게 만든다.
그러면서 그 동안 익숙했던 것들의 고유한 가치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 나 죽으면>

나 죽으면
바람에 묻히리
이리저리 흐르다
바람밥 한 숟갈 뜨고
다시 바람으로 살아나리
늦가을 빈 들판
억새바람으로 되살아나리

나 죽으면
바다에 묻히리
차라리 바다 가운데 피어난
하얀 파도가 되리
밀려오면서
어머니의 앙가슴
한없이 쓸어안으리
어머니 어머니 통곡하면서
남김없이 부서지리

나 죽으면
바다 끝 맞닿은 청명 하늘가
어둑새벽 깨치는 빛이되리
빛이 다하기 전
속살 같은 바다에 내려앉아
못다한 사랑
뜨겁게 나누리

섬 하나 낳으리

- 김 수 열 -

 

※음악 - Yuichi Watanabe - PianoBellissi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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