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색조의 바탕 위에 감필법으로 그려진 <제주 바다>는 제주 사람들의 고달픈 삶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봄을 시샘하듯 눈이 내리는 날 무작정 제주의 해안도로를 달려 보았다.
제주 토박이지만 시내를 벗어나 거의 다녀본 적이 없는 나는 제주의 해안이 조금의 거리를 두고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흡사 호수에 갈대가 자라는 것 같은 황갈색의 제주 서쪽 마을 신창 부근을 지나며 문득 변시지 화백님의 그림이 떠올랐다.

대학시절, 새로 부임했다는 서양화교수님은 작달막한 키에 지팡이를 짚고 우리 앞에 서 계셨다. 마치 로트렉과 채플린을 섞어놓은 듯 턱수염을 한 체 빙긋이 웃고있는 모습으로...
유년시절 제주를 떠난 후 1947년 광풍회(光風會)와 일전(日展)에 입선하며 조명을 받던 일본에서의 10년, 1957년 귀국하여 서울에서 작품활동을 하다 귀향한 첫해(1975)였다.


아마 이 때부터 그림이 괘도를 달리하셨지 싶은데 처음엔 서양화도 동양화도 아닌 그림이라고 비웃는 사람도 있었지만 시종일관 황색조의 바탕 위에 검은 감필법으로 그려진 제주의 바다, 나무, 외로운 인물, 조랑말 등 대부분 작가의 유년시절 제주모습들이다.
사라져버린 제주의 모습을 기억하며 화폭에 담아낸 그림들에서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그 위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겪었을 척박함에 짓눌려 고단했던 삶과 바람이 상징하는 또는 까마귀가 울음으로 토해내는 제주의 역사를 담고있는지 모른다.
변시지 화백님의 그림이 친숙하게 느껴짐은 이제 나이가 좀 들어서인가. 아니면 지팡이를 짚고 바닷가에 외롭게 서있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서일까...
군더더기 없이 그려낸 망망한 바다, 바람에 허리가 휘어버린 소나무, 조랑말, 고독한 그 사람을 만나러 내일은 기당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겨 봐야겠다.

 

바람 부는 들녘에 와서 보면

내 이제
지팡이 하나로 곧게 서서
먼 들판을 걸어가리라.

우리가 태어나고 죽고
슬퍼한 일이
바람 부는 들녘에 와서 보면
참으로 사소한 일

칼바람에 깃을 치며 날아가는
새떼의 행방을 쫓다 보면
산다는 것이 이리도 안타까운 것이냐.

땅 끝에 길게
그림자처럼 서 있다가
이 세상 어두운 곳으로
떠나는 사람

나부끼는
나부끼는 그대 옷자락

- 한기팔 -


며칠 전 원고 부탁드릴 일이 있어 화가이자 시인인 한기팔 선생님을 뵈러 갔다가 그 분의 시집을 선물 받았다. 변시지 화백님과는 막역한 사이로 술 한잔 나누며 그런 저런 말씀들을 나누시는 모양이다. 그 분의 시를 읽다가 변시지 화백님의 그림과 어울리는 듯하여 옮겨 보았다. 두 분의 좋은 만남이 오래되어 서로에게 영감을 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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