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역사현장'이 '문화예술공간'으로

30일 오후 5시 반 제주4.3 집단희생터로 알려진 제주여고 입구에 있는 '박성내'에서 4.3 당시 억울한 죽음들의 넋을 달래는 독특한 마임 공연이 펼쳐졌다.

'바람, 그윽하신 넋들의 노래'를 주제로 한 이번 '부토(舞踏)' 공연은 테러 J(대표 오경헌)가 오는 5일까지 마련한 2003 제주 '머리에 꽃을' 거리예술제의 첫 장.

일본 '부토'의 1인자인 요시모토 다이스케(65)와 한국인 전승자 서승아씨(38.일본 거주)를 비롯 김원범, 이정훈씨 등 퍼포머 4명과 음악인 2명은 마치 당시의 질곡을 말해주듯 울퉁불퉁한 냇가에서 음악과 행위가 어우러진 독특한 행위예술을 선보였다.  때론 처절하게, 때론 애절하게 표현해 내는 몸 동작 하나에는 진지함과 엄숙함이 묻어났고 색다르게 '보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일본 '부토(舞踏)' 예술 1인자 '요시모토 다이스케'

▲ 공연이 끝난 후 만난 '부토' 예술가 한국인 서승아씨와 일본인 요시모토 다이스케.
60대 중반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정정한 다이스케씨는 현재 활동하는 부토 예술가 가운데 '1인자'로 알려졌다.

지금은 노환으로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는 부토의 대가인 오노 카즈오씨(95)의 무대 감독을 도맡으며 뒤늦게 '부토' 예술의 길로 접어들었다. 부토  경력 25년째.

"공연하기 전에 4.3과 박성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그는 "행위도중 냇가에 누워있는 동안 땅속에서 '원혼'들에게서 '어떤 힘'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가슴 아픈 역사와 억울한 넋을 도민들에게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이번 공연에 대한 바람을 전했다.

다이스케로부터 부토를 전수받은 서승아씨(인천 출신)는 "마른 냇가에 치유되지 못한 넋들이 잠들어 있다는 아야기를 이번 공연을 통해 들었다"며 "4.3은 예전의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 진행중인 생생한 이야기 같다"고 말했다.

주로 일본에서 활동한다는 서씨는 "이번 거리예술제 공연이 끝나면 바로 유럽공연을 떠날 예정"이라고 한다.

 4.3 당시 처절한 '느낌' 그대로


이날 마임가들은 짜여진 테크닉 보다 그대로 전해오는 '느낌'으로 원혼들의 절절한 아픔을 표현하는 이색 행위로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길거리 홍보물을 보고 '박성내'를 찾은 휴학생 김지수씨(23)는 "이 곳을 지나면서도 4.3의 상흔이 배어있는지는 전혀 몰랐다"며 "공연내내 '침묵'과 '암흑'을 떠올리게 했다"고 말했다.

또 연극반에서 활동한다는 신혜연양(17.중앙여고 2학년)는 "너무 색다르고 신비로운 공연이었다"며 "이 곳에 역사의 현장이었던 사실은 오늘에야 알았다"고 말했다.

'박성내' 거리공연에 이어 박성내 근처에 있는 양천우 화가의 집에서는 제주출신 라이브가수 양정원씨의 흥겨운 노래 공연이 이어졌다. 오랜만에 김광석씨의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도 리듬을 탔다.

또 오후 7시 부터 시청어울림 마당에서는 조성진, 유홍영씨의 마임 공연과 저글링(JAY), 퍼포먼스(박이창식), 라이브(박한경.최정은.뚜럼브라더스)의 거리 공연이 펼쳐져 행인들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

또 색동어머니회 동화구연가회의 동화구연, 제주브라스앙상블의 금관악기 연주, 고재인씨의 재즈연주, 어린이 경호시범단의 리틀보디가드 시범도 갈채를 받았다.

10월 6일까지 시청어울림마당 -  '2003 머리에 꽃을'  거리 공연

'거리문화를 살리자'며 거리 문화 복원 운동을 벌이고 있는 테러 J 공연기획팀이 기획한 '2003 머리에 꽃을'은 관객을 주인으로 한 축제. 지난해 처음 선보였으며 올해 공연은 10월 5일까지 이어진다.

도외 10개팀, 도내 32개팀의 마임, 퍼포먼스 예술가 등이 참여해 시청 어울림 마당, 제주영지학교 등지에서 라이브, 퍼포먼스, 초상화 그려주기, 칵테일 쇼 등 다채로운 행사를 펼친다.

1일 오후 5시에는 '박성내' 에서 두번째 특별 거리 공연이 펼쳐진다.

또 2일에는 제주영지학교에서 '장애인을 찾아가는 공연'으로 마임 및 라이브 등을 선보이며,
 내달 2-3일에는 제주시 일도지구 대림아파트 근처 한길자동차에서 '마을 주민을 찾아가는 공연'으로 대중속으로 파고든다.

제주시청 학사로에 위치한 미래커피숍에서는 '로모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그 밖에 '한라산문학동인회'와 '신세대'의 시화전시, MBC 아카데미 뷰티스쿨에서 준비한 동물 특수분장.페이스페인팅.뷰티쇼,  테러제이팀의 봉숭아물 들이기.양초로 동자석깍기.제주수호신 가면만들기.돌하르방 및 할망 그리기 등 체험 행사가 펼쳐진다.

▲ '박성내'는 어떤 곳?
현 제주여고 입구 동쪽에 있는 박성내(냇창)는 무자년 난리가 일어난 그해 겨울 12월 21일(음력 11월 21일)에 100여명의 죄없는 도민들이 군인들의 총칼 아래 한스럽게 숨져간 곳이다.

50, 60년대 만해도 이곳에 4.3사건때 죽은 억울한 귀신이 밤중에 나와 운다는 등의 무시무시한 소문이 나돌아 동네 주민들이 한밤중에 이 곳을 지나는 것을 꺼려했다.

테러 J는 우리 삶안에 있으면서 잊혀져가는 역사의 현장을 찾아 새로운 문화예술공간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부토(舞踏)란
부토(Butoh)란 일본 전통예술인 '노'(能)와 '가부키'(歌舞伎:일본의 3대 주요 전통극의 하나. 3대 주요 전통극은 '노'(14세기)·'가부키'(17세기)·'분라쿠(文樂)'(16세기)이다)와 서구 현대 무용이 만나며 탄생한 아방가르드 무용의 한 장르.

1959년 일본 히쓰카다 다쓰미가 창시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에서 시작된 '부토'는 당시 세계문화의 흐름이었던 표현주의와 모더니즘 그리고 일본 사회에 팽배했던 허무주의를 담아냈다.

부토는 제국주의와 전체주의에 반발하던 당시 일본 지식인들 사이에서 열렬한 호응을 받았고 그후 국가 지원을 받으며 계속 성장했다.

'부토'라는 용어는 60년대 들어 쓰이기 시작했다. 주로 '죽음'이란 주제를 다뤄 '암흑의 춤' '죽음의 춤'으로 불리기도 한다.

80년 낭시 연극제에서 오노 카즈오 등이 유럽 무대에 모습을 보인 후부터는 세계 현대무용을 이끄는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한국에 들어와서는  쌀을 먹는 민족들의 행위인  '모내기'와 '지신밟기' 등의 응용동작이 더해졌다.

부토 무용수들은 늘 얼굴에 흰 분칠을 하는데 인간 색깔을 없애고 내면 세계를 표현하려는 의지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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