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오름 가운데 정상에 화구호(火口湖·칼데라)가 있는 곳은 사라악·동수악·물장오리·물찻오름 등 9군데다.


산지 늪 기행 첫 행선지는 동수악이다. 동수악은 제주의 식생 변천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왜 그럴까. 동수악은 지금 산지성 육상식물과 습지식물의 영역싸움이 한창이다. 그러나 지금 내륙화가 진행됨에 따라 결국 습지식물의 분포역이 감소될 것이다.

5·16 도로를 타고 성판악을 지나 남원읍 신례리 동수악으로 간다. 동수악(東水岳·표고 700m)은 산정 화구호가 있는 오름이다.

제주의 오름은 생태자원이며 살아있는 보석이다. 분화구·화산탄·쇄설물 등을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볼 수 있는 자연학습장이며 곤충과 야생식물의 집이다. 세상의 어떤 돈으로도 계산할 수 없는 값어치를 지니고 있다.

오름은 오랜 세월을 두고 화산이 폭발할 때마다 화산재가 쌓여 이루어진 중산간지대의 '작은 한라산'이다. 크건 작건 꼭대기에 분화구(굼부리)가 패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부는 바람은 풀을 눕히고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오름 속 한적한 굼부리는 어찌나 따사로운지…. 오름의 대부분 선은 부드럽고 풍만하다. 여성적인 곡선미가 뛰어난 오름이야말로 전통 초가지붕과 함께 뭍에서는 볼 수 없는 제주만의 이색풍경이다.

특히 물영아리와 동수악·물찻오름·금오름·사라오름·소백롬담과 같은 오름들은 화구호, 즉 산정호수를 갖고 있다. 이 화구호는 항상 물이 고여 신비감을 더해 준다.

동수악은 5·16도로 숲 터널 중간쯤에서 15분  가량 걸어 들어가야 한다. 제멋대로 자란 나무. 하지만 상관없다. 높고 낮음, 입체와 평면, 다정다감….

동수악으로 가는 길은 곱고 한적하다. 가끔 숲을 어슬렁거리는 노루를 만날 수도 있다.

여느 오름이 그러하듯 이곳에도 특산식물과 희귀식물이 많다. 특산식물로는 개족도리·사위질빵·새끼노루귀가 있다. 희귀식물로는 제주지네고사리·겨여뀌·새덕이·한라돌쩌귀·개승마·개구리갓·조록나무·털괭이눈·제주피막이·개선갈퀴·홍노도라지·누운기장대풀·모기방동사니가 있다.

또 천마·새우난초·금새우란과 같이 개체수가 희소하고 분포역이 줄고 있는 식물들이 눈에 띈다.

며칠 전에 내린 비 탓일까. 마른 수초로 덮여 누르스름한 못 바닥은 한발 내디딜 때마다 푹푹 빠질 정도로 물이 흥건하다. 장마 때면 특히 물이 많아 한라산 그림자가 물에 비치기도 한다.

못 둘레는 약 220m. 작은 운동장 만한 못이다. 못 바닥은 육지식물과 습지식물이 ‘네땅 내땅’을 사이좋게 나눈 듯, 군락 경계선을 뚜렷이 나타냈다.

동수악 습지의 식생을 살펴보면 골풀·기장대풀·물고추나물·진땅  고추풀·넓은 잎 미꾸리낚시·좀네모골·올챙이 고랭이·세모고랭이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 가운데 기장대풀 군락은 습지와 산지 식생의 경계역에 발달하는 벼과 초본식생이다. 솔비나무와 누운기장대풀 군락은 습지 중앙부에 자리잡고 있다. 이는 토사 유입으로 인해 중앙부 지형이 완만하게 튀어나와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골풀 군락과 가막사리 등은 종종 덤불을 형성하고 물 골이 형성돼 있는 게 특징이다.

오름 바깥쪽 능선부의 경우에는 서어나무·졸참나무·단풍나무·꽝꽝나무 등이 있다.

제주특산곤충들도 눈에 띈다. 대표적인 게 제주땅콩물방개·제주애기물방개와 제주 도룡뇽이다. 제주도룡뇽은 다른 지역 종들과는 유전적으로 다를 가능성이 높아 유전자원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곳도 급격하게 훼손되고 있는 실정이다. 오름 탐사 붐으로 인해 동수악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것. 사람들은 습지주변까지 마구 드나들어 주변 식생 또한 짓밟았다.

동수악 화구호는 지금 육지화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습지의 가장자리에서부터 육지로 변해 가고 있는 것. 못  바닥에는 습지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지만 그 주변으로  육지식물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한라산연구소 고정군 박사는 "동수악 화구호의 경우 주변 식생이 발달하고 기저층에 토사가 유입되면서 수십년 내에 내륙화가 완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연환경 변화에 따른 습지 생태계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동수악과 같은 오름의 분화구내 습지는 희소가치가 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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