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제주사 그 현장속으로]② 인류의 출현


쟁점이 되었던 대정읍 상모리와 안덕면 사계리 경계의 사람과 동물 발자국 연대 조사는 지난 주말에 문화재청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것들을 소재로 연대 측정을 하는데는 적어도 6개월이 걸린다. 이제 보통 사람은 조사 결과나 쳐다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 중에도 시대는 요원한 구석기 저쪽에서부터 흘러왔다가 영원한 미래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학자들은 구석기시대를 기원 전 50만년에서부터 후기 빙하기인 1만년까지로, 신석기시대를 1만년에서 1천년까지로, 그 후 1천년에서 300년까지를 청동기시대로 잡고 있다. 그리고 BC 300년에서 기원 전후 시대를 거처 AD 300년까지를 철기시대로 삼는다.

이제까지 제주 섬 안에서 발굴된 사람이 살았던 최초의 흔적은 애월읍(涯月邑) 어음리(於音里) 빌레못동굴 유적이다. 학자들은 그때까지 제주는 대륙과 연결되어 있었으며, 지금 서해에는 여러 개의 강이 흐르다가 후빙기에 눈이 녹으면서 바다가 올라와 비로소 제주가 섬으로 변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이제 봉쇄돼 일반이 접근할 수 없게 된 빌레못동굴 유적은 1973년 처음으로 조사된 유적으로 제주도에 처음으로 인류가 등장한 시기가 구석기시대임을 증명해주는 가장 오래된 유적이다. 이 굴은 해안에서 직선 거리 4km, 해발 200m의 완만한 경사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굴의 길이는 1만1749m인데, 굴 안에 중심 굴과 가지굴로 나누어진 터널 식 용암동굴이다.

제주 최초의 오랜 유적은 굴 입구에서 약 900m 거리에 형성돼 있는데, 2개의 문화층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유물은 모두 84점. 12종의 석기와 소량의 동물화석이 출토됐다. 석기는 제주도산 현무암을 재료로 만든 찍개와 박편토기 등이 나왔으며, 석기의 제작 기술을 미뤄보아 그 시기는 약 4만년 전 중기 구석기시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동물 화석은 중국 주구점의 중기 홍적세층에서 출토된 갈색곰의 턱뼈와 다리뼈, 유럽 후기 홍적세층에서 번성했던 적록과 노루 등이 있었다.

갈색곰뼈·서귀포 패류화석·고산리 유적 통해
제주 역사 첫 머리의 제주도 모습·기후 상상

이런 북반구에 서식하던 동물 뼈는 이 시기에 제주도가 육지와 연결되어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천연기념물 제 34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한때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가 2001년 국립 제주박물관이 개관하면서 그곳으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 195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서귀포시 천지연 하류 유적은 약 200만 년 전 플라이오세의 화석이다. 이때도 제주도가 육지로 되기 이전이며, 약 50~100m의 바다로 이루어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제주에서 확인된 조개류는 180여 종이며, 대표적인 종류로 전복과 오분자기, 보말, 고둥, 소라, 백합 등이 들어 있었다. 대부분 식용으로 사람들이 먹었던 것이며, 육지부와는 달리 굴은 산출되지 않았다. 한반도 해안에서 확인된 패총유적이 대부분 굴 종류가 주종인데 비해 제주도 패총유적은 전복이 압도적으로 많고, 굴은 없다.

식용으로 쓰인 조개 껍질은 가공하여 칼이나 장신구 등으로 사용하였다. 전복의 껍질은 날카로운 반달칼로 만들어 썼고, 투박조개, 큰보말 등의 조개류는 패륜(貝輪)으로, 소라를 비롯한 고둥류는 중심의 돌기(軸部)를 이용한 펜던트(pendant)를 비롯한 장신구를 만드는데 사용하였다. 실제로 대정읍 상모리의 바닷가 산이수동 유적에서는 조개류를 가공하여 만든 패륜이 다량 출토된 바 있으며, 애원읍 곽지리 패총에서도 전복을 이용한 조개 반달칼과 패륜 등의 유물이 발굴된 바 있다.

제주도에서는 신석기시대에 들면서 약 1만 년 전 한경면(翰京面) 고산리(高山里) 유적이 출토되며, 이어서 김녕리(金寧里) 유적도 발견된다. 또 이 무렵에 고산리 동굴 유적이 발굴되며, 그 후 신석기 후기에 북촌리 유적도 발굴된다.

 

특히 1만년 전 고산리 유적은 돌날 석기와 화살촉, 조각칼 등이 출토됐는데, 시베리아와 일본 유적과 대단히 흡사하다. 제주문화재단 문화재연구소가 지난 해 시베리아 연해주 아무르강 유역의 발굴작업을 벌인 것도 고산리 유적과 비교연구를 하기 위함이었다.

이 연구소의 강창화(康昌和) 연구실장은 빙하기 얼음이 녹기 이전 서해에 물이 빠지고 육지였을 때 그곳 사람들이 강을 타고 보다 살기 좋은 터전을 찾아 제주 고산을 거쳐 일본 쪽까지 흘러갔을 것이라고 유추하며, 올해 9월 다시 시베리아 그로마루카 지방의 유적을 발굴할 예정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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