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이라크에서 무장 집단에 의해서 납치 되었던 일본인 3명이 석방되었다.

그 후 또 다른 무장 집단에 납치 되었던 2명도 석방 되었지만 일본열도는 환희 일색이 아니고 우울하기만 하다.

여러 방면으로 많은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 3명을 납치한 그들은 3일 이내로 이라크에 파견된 자위대 철퇴 지시를 요구했고 이것이 관철되지 않으면 한 사람씩 산채로 태워 죽이겠다고 했다.

그러나 코이즈미 수상은 즉각 성명을 내고 “자위대의 이라크 철퇴는 결코 있을 수 없으며, 어떠한 테러에도 굴하지 않는다”고 했다.

수상의 굳은 의지는 국민의 과반수이상의 지지를 얻었다. 이러한 지지 속에는 27년 전의 쓴 경험이 일본인 뇌리에 옹이처럼 박혀 있었다.

서기 1977년 파리발 토오쿄행이 하이잭으로 인해 방글라데쉬 닷카에 강행착륙 범인들은 일본에 구치중인 동료의 석방과 600만 달러를 요구했었다.

당시 후쿠다 다케오 수상은 <인명은 지구보다 무겁다>면서 그들의 요구 조건을 전부 들어주었다.
이로 인해 일본은 테러 수출국가라는 오명을 씼을 수 없었다.

<시대가 우선 다릅니다. 의미도 다릅니다. 그 당시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객관정세도 있었으며, 이번 사건과는 비교도 안 된다고 생각 합니다. 자위대를 철퇴할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정부 대변인인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의 기자회견이다. 그는 아이러니컬하게도 후쿠다 수상의 아들이다.

이러한 인연은 전혀 관계없지만 코이즈미 수상의 단고한 거부 성명으로 일본인은 이 주박 속에서 풀려날 수 있었으며 테러와 싸우는 국가로 부각 되었다.

그러나 사건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피해자 가족들은 자위대 철퇴를 요구하며 초조감에서 오는 감정적인 발언들이 나오면서 일본 정부 관계자는 물론 일부 국민들의 비난과 빈축을 샀다.

코이즈미 수상까지 <이라크의 위험한 지역에 자위대를 파견 할려고 한다고 비난하던 사람들이 무방비 상태인 민간인들은 제멋대로 가도 아무런 비난이 없다>면서 정부의 아집적인 논리로서 비난했으며, <정부에서 몇 차례의 퇴피 권고를 낸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에 간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자기책임을 강조하는 각료들의 비난의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또 3명중의 한 사람은 금년 고교를 갓 졸업한 미성년자여서 피해자 가족들은 더욱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고 어느 가족은 사죄 성명까지 발표하게 이르렀다.

어떻든 불행 중 다행으로 납치당한 그들이 모두 이라크 국민을 위한 봉사활동으로 입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석방됐었는데 그때의 발언이 또 일본 국민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 못한 그들 중의 한 사람은 계속 이라크에 남아서 활동하고 싶다는 발언이 나왔으며, 나중에 석방된 두 사람은 일본 대사관에 석방 사실을 알리지 말라는 얘기까지 했었다고 한다.

일본열도가 발칵 뒤집혀서 연일 이 사건이 톱뉴스로 나오는데 당사자들의 너무나 안일한 태도에 일본정부와 국민들은 아연했다. 사실 이 사건으로 인해 가장 큰 톱뉴스가 될 한국 국회의원 선거의 지각변동은 지방 뉴스처럼 구석으로 밀려 나기도 했다.

이렇게 납치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냉담한 반응에 미국 파웰 국무장관은 <위험을 무릅쓰고 용감히 나선 이들을 일본 국민은 나무라지 말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여야 한다. 또 이러한 일이 없다면 모든 일은 전진하지 못 할 것이며 우리들은 이러한 사람들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 그들을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일본 국민을 위한 발어이라기보다는 이라크 국민을 향한 발언처럼 들렸으며, 자국민과 군인들을 위한 메시지처럼 들리기도 했다.

석방된 세 사람은 어젯밤(18일) 일본 외무부 부대신과 칸사이 공항에 귀국했으나 <자업자득> <세금 도국>이라는 저질적인 플랜카드를 들고 항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 일본은 이 문제를 놓고 <자기책임>이라는 말이 난무하고 있다.

정부에서 위험 지역이라는 곳에 국민들이 개인적으로 도항하여, 예기치 않은 불상사를 당했을 때에 모든 책임은 그 본인이 져야 한다는 논리가 지배적이다.

우익화 경향으로 향하는 코이즈미 정권의 가혹한 논리처럼 들릴런지 모르지만 이 정책만은 필자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선의의 목적인 봉사활동을 위해 위험 지역에 간다고 해도 자국의 주권 행사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도 본인 밖에 그 책임을 질 수 없는 것이다.

이 상황은 일본만이 아니고 우리 한국인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지난 번 한국인 목사 일행 칠명이 하루에 다섯 번이나 구속 됐다고 석방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종교 전쟁으로 불리울만큼 긴박한 이라크에 기독교 목사들이 무엇 때문에 갔었는지 모르겠지만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질 수 있는 각오가 필요하다.

이번 사건으로 인하여 일본은 아직도 그 파문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남의 일이 아닌 우리 일처럼 주시해야 할 사건이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