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새도우를 바르고 마스카라로 눈썹을 올린다.
입술 선을 붉게 바르고 핑크빛 볼 터치를 한다.
어떤 옷을 입을까 거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인다.
그녀의 외출.
”$%^&*”
“&%^&*”
그들의 이야기는 담배연기처럼 허공을 떠돌 뿐.
그 곳에 「너」는 없다.

낮선 호텔에 앉아 있는 그녀.
일상의 탈출을 꿈꾸며 떠나온 여행. 
그 곳에 「나」는 없다.

무거운 걸음으로 퇴근하는 길.
카페에 들려 술을 마시는 그.
그 곳에 「우리」는 없다.

▲ Hotel-room (1931 . Oil on canvas, 60 x 65 in)
손에 들려있는 건 누구의 편지일까? 낮선 호텔 방에서 그녀는 망연하게 앉아있다. 모자와 구두는 그녀의 마음처럼 아무렇게나 버려져있다.
  20세기  리얼리스트 화가인 에드워드 하퍼(Edward Hopper.미국.1882∼1967).
1909년과 1910년 유럽을 여행하고 돌아온 에드워드 하퍼는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의 영향으로 빛의 움직임에 대해 민감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는 저감도의 필름으로 스냅사진을 찍듯이 일상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내고 있다.
움직임이 없는 도시의 삭막함, 호텔 방의 낮설음, 적막감이 흐르는 외떨어진 주유소, 카페의 고립된 인간의 모습 등 그의 그림은 조용하다 못해 음산하다.

20여 년 전, 미국 여행을 다녀오신 아버지가 사 오신 화집 속의 그림. 어떻게 그 화집을 고르셨는지 모르지만 하퍼의 그림은 단번에 나를 뒤흔들어 버렸다.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가는 사람들. 바로 내가 .
그려보고 싶었던 그림들이 그 속에서 나를 비웃고 있었다.
나를 그림의 세계로 유혹한 이가 고흐라면, 그림이란 테크닉이 아니라 또 하나의 언어임을 일깨워 나를 벙어리로 만들어버린 이가 에드워드 하퍼다.
그는 누구와도 교감하지 않는 현대인들의 뿌리뽑힌 삶과 실존적 고독을 리얼하게 형상화하고 있는데 어쩌면 겉으로 들여내 놓지 못하는 또 하나의 내 모습이 그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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