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케<大池>중학교의 <오이케 중 PTA 오야지 반도>가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아사히.마이니치 신문은 물론 TV에서도 소개되고 있는 <오야지 반도>는 오이케 중학교 학부형과 선생들이 결성한 밴드이다.
오야지라면 일반적으로 아버지를 의미하지만 중년 이상의 남자나 할아버지를 뜻할때도 있고 회사사람이나 가게 주인을 일컬을 때도 사용한다.
밴드 멤버가 모두 사오십대의 중년이어서 오야지 밴드라고 명명했는데 2004년 10월에 결성됐다.
결성 비화가 이색적이어서 가슴 뭉쿨하게 하고 사회에 알려지게 되었다.
2004년도 오이케 중학교 학부형 회장직을 맡을 사람이 없어서 동포 2세 고용철<高用哲 49>씨가 입후보했다.
1947년 개설된 오이케 중학교 학부형회장직에 외국인이 입후보한 것은 처음이었다.
학부형 임원과 OB회 회장단 일부에서 <전례가 없다>면서 반대했다.
신학기 4월이면 구성될 학부형 임원단이 이로인해 8월까지 늦어졌다.
결국 고용철씨는 부회장직을 맡고 회장직은 현직인 사카모토아키라< 坂本明 57>씨가 맡기로 해서 해결됐다.
오이케중학교 학생수 350여명중 약 8할이 한반도의 피(한국.조선 국적, 귀화, 부모중 어느 한쪽이 동포)를 이어 받았다.
관례가 없다는 이유로 빚어진 학부형 회장 선출건은 오이케중학교에 많은 휴유증을 남겼다.
여름방학때 교사들과 학부형들이 관할구역내의 순회를 마치고 선술집에서 몇차례 교류회를 갖었다
우선 <어른들이 즐겁게 살지 않으면 어린이들도 즐거울리 없다>는 목표 속에서 후유증 해소를 위해 많는 의견들이 오갔다. 학부형들간의 갈등은 민감하게 학생들에게도 만연되고 있었다. 마음 툭 터놓고 주고 받는 의견속에 밴드를 결성하자는 얘기가 농담처럼 나온 것이 그해 10월 정식으로 발족됐다.
<처음 모인 사람이 모두 3명이었습니다. 밴드 결성은 실패할 줄 알았습니다>
20여년만에 기타를 다시 쳤다는 강전호<康典浩 52>씨의 술회였다.
학부형도 그렇지만 교사들도 밴드결성에 정열적이었다.
오호리 하지메<大堀肇 54>교장과 후루카와 마사히로<古川正博 54> 교사들은 기타를 갖고 적극적으로 참가해 교장실에서 맹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후루카와 선생은 삼선<三線>까지 연주했다. 삼신은 오키니와 전통악기로서 일본 삼미센 <三味線>과 비슷하다.
강전호씨는 고용철씨에게도 장고 담당으로 참가 요청했다. 사카모토씨는 가수로 참가했다.
2005년에 학부형회장이었던 히라야마 히로시씨<平山浩可>와 2006년에 한국국적 동포로서 처음으로 학부형회장직을 맡은 조정화 <趙正和 47>씨는 기타를 담당했다. 모두 8명이었다.
첫 출연은 2006년 2월 히가시나리<東成區 > 구민홀에서 열린 <와이와이 후라이데>였다.
극도의 긴장감속에서 두곡을 불렀지만 도중에 몇군데 틀린 곳도 있었다.
의기소침하고 혐오감에 빠졌던 멤버들에게 힘이 된 것은 꽃다발까지 갖고와서 응원을 해준 학부형들이었다.
그후 교장실에서 정기적으로 연습을 거듭하면서 각지의 출연요청에 응하여 6월 현재 44회의 공연을 하기에 이르렀다.
<저는 오야지 반도 공연을 보고 저의 아이들을 오이케 중학교에 입학시켰습니다>
지난 8월 6일 필자가 오이케중학교 교장실에서 연습하는 오야지반도 취재차 찾아 갔었다.
여름방학의 고즈넉한 교정이 저녁 7시를 넘으니 더욱 조용했다.
그 속에서 들리는 기타와 장고의 악기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6명이 땀을 흘리면서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필자가 처음 보는 악기 담버린과 스타벨과 페루의 전통악기 가홍을 연주하는 가이누마 유키오<海沼由紀夫 49>씨가 연습을 마치고 이자카야(선술집) 갔을 때 들려준 말이었다.
오야지 반도의 마네저역을 담당하는 후루카와 선생은 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면서 <생활과 안전>이라는 A4 사이즈의 2페이지 뉴스를 매주 발행해서 전교생에게 배부하는 열렬 선생이다.
현재 교사 3명, 동포 3명, 일본인 4명으로 10명이 활동하고 있다.
동포 3명은 모두 제주가 본적지인 2세들이다. 그들은 학부형회에서 임원직을 맡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외국인 보호자회>의 회장직을 담당하고 활동하고 있다.
강전호씨는 샌들 가공공장을 경영하면서 지난해 NHK에서 상영했던 김시종씨의 <우미나리의 시>의 다큐멘터리 방송에서도 출연하여 동포의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오는 10월에는 <원코리어 페스티벌>에도 출연 초청을 받았다.
오야지반도 동포 최대 밀집지인 이쿠노에서 새로운 차원에서 생겨난 운동이다.
특히 일선 교육현장에서 동포와 일본인 학부형과 교사사이에서 일어난 쓰라린 경험을 토대로 승화된 <오야지 반도>이기에 그 의미는 더욱 크다. <제주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