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주벽립(曾朱壁立). ‘증자와 주자가 벽에 서 있다’ 다시 풀이하면 증자와 주자가 우뚝 서 계신 것 같이 생각하여 그를 본 받는다는 뜻이다.
길을 나서려는데 지금 제주시는 번개와 함께 비가 오고있으니 잘 챙겨 입고 출발하라는 전화가 왔다. 한라산을 가운데 두고 산남과 산북의 날씨 차로 낭패하는 경우가 많음을 아는 이의 따뜻한 마음이다.

성판악을 넘으니 다행히 비가 그치고 일정대로 마애명(磨崖銘) 답사 길에 올랐다.

한학자이신 오문복 선생님의 뒤를 따라 간 곳은 옛 오현고등학교가 있었던 오현단으로 가까이 있지만 늘 스쳐 지났던 곳이다.

오현단 앞에서 정중하게 배례를 올리시는 하얀 두루마기 차림이 오문복 선생님은 옛 선비의 모습 그대로이다. 선생님께서는 먼저 요즘 사람들이 즐겨 입는 개량한복의 오류에 대해 지적하셨다. 우리의 전통한복은 음양의 이치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개량한복은 그러한 이치를 배제한 채 마들어지고 있다고 안타까워 하셨다. 우리 옷의 선을 살린다며 내 나름대로 디자인하고 생활한복이라며 즐겨 입는 나에게 하시는 말씀 같았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와 유적들 속에 담겨있는 정신을 읽을 줄도 모르고 관심도 없는 대다수의 우리에게 던지는 질책 같기도 하였다.

오현단(五賢壇)
오현단은 귤림서원(橘林書院)의 옛 터이다. 이 곳에 있는 마애명은 서원이 있을 때 새겨진 것들이며 그 내용도 거의 서원의 교육내용에 연계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서원은 지금의 사립학교에 해당되지만 교육내용은 국립학교 격인 향교와 같다. 조선의 건국이념이며 국시인 정주학(주자학)의 골격인 사사로운 욕심을 막고 하늘에서 주어진 원리 즉 본성(착한 마음)을 간직(溫人欲存天理)하게 하여 인격을 도야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 표준을 제시한 것이 이 곳에 있는 마애명의 내용이다.

▲ 광풍대(光風臺) “가슴 속에 품은 것이 말끔하여 비 개인날 화창하게 부는 바람과 맑은 달과 같다”
증주벽립(曾朱壁立).
‘증자와 주자가 벽에 서 있다’ 다시 풀이하면 증자와 주자가 우뚝 서 계신 것 같이 생각하여 그를 본 받는다는 뜻이다.

이 네 글자는 우암 송시열(오현의 한사람으로 귤림서원에 배향되었음)이 그의 강당 뒷 벽에 써서 새겼던 것을 1786년 본도 사람 변성우가 성균관 직강으로 있을 때 본떠 온 것을 1856년 당시 제주 목사였던 채동건과 판관이었던 홍경섭이 이 곳의 벽에 다시 새겨놓은 것이다.

옛날에는 자기의 이름을 쓸 때에는 이름자 위에 반드시 직함을 써서 지위를 밝히는데 본 마애명에는 목사, 판관 모두가 직함을 후학(後學)이라 썼다. 이는 학통(學統)을 표시하는 것으로 국가 관청의 뜻에 따른 것이 아니라 학통을 잇는 민간인의 입장에서 새긴다는 뜻이다.

또 연호를 국가에서 공식 사용하는 청나라 연호를 쓰지 않고 이미 없어진 지 오래된 명나라 마지막 황제 종(宗)의 연호 다음 네 번째 병진년이라고 어렵게 표시하였다.

네 번째 병진년은 철종 7년(1856)으로 본 마애명을 새긴 해에 해당된다. 이렇듯 불편하게 쓴 이유는 송우암의 의리사상(義理思想)을 따른다는 뜻이다. 목사나 판관의 공식 문자라면 응당 청나라 연호를 썼겠지만 개인자격으로 송우암을 경앙(景仰)하는 뜻의 마애명임을 내보이기 위하여 명나라 연호를 쓴 것이다. 이와 같이 옛 사람들은 도탑지 못하거나 꺼려할 일에 대해서는 글자를 가려 써서 은근하지만 분명한 뜻을 내보였다.

광풍대(光風臺)
광풍의 뜻은 비가 온 뒤에 화창하게 부는 맑은 바람 또는 맑은 날씨에 화창하게 부는 바람인데 송나라 육현(宗朝 六賢) 중의 한사람인 염계(濂溪) 주돈이는 “가슴 속에 품은 것이 말끔하여 비 개인날 화창하게 부는 바람과 맑은 달과 같다”(光風霽月)고 그의 인품을 기르는 대(臺)라는 뜻이다.

이 글씨를 쓴 사람과 새긴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증주벽립을 새길 때에 같이 새겼을 것이라 믿는 사람들이 많다. 서풍(書風)과 도법(圖法)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유천석(溜穿石)
광풍대 앞에 있는 돌인데 새겨진 글자는 없고 작은 구멍이 하나 뚫어져 있다. 글자가

▲ 유천석(溜穿石) “성실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또는 약하더라도 올곧기만 하면 마침내는 이겨낸다”는 가르침을 내보이던 돌이다.
새겨져 있지 않기 때문에 마애명이라 할 수는 없지만 뜻은 마애명과 같다.

처마물(溜)이 계속하여 떨어지면 돌(石)을 뚫는다(穿). 귤림서원에서 원생들에게 “성실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또는 약하더라도 올곧기만 하면 마침내는 이겨낸다”는 가르침을 내보이던 돌이다. 귤림서원 서쪽 처마 밑에 있었는데 서원이 훼철된 뒤 여러번 옮겨지다가 이곳에 있게 되었다. 돌에 있는 구멍은 실지로 처마물이 떨어져 뚫어진 구멍이라 전한다.

한자교육이 폐지되었던 시절에 공부한 탓인지 생경하기만한 마애명 앞에서 계란으로도 바위를 계속 치면 조금은 자국이 날것이라며 오문복 선생님은 웃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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