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이 안개 낀 밤중에 남원읍에서 제주시로 차를 몰고 오는데, 한참을 가도 눈에 익은 길이 나타나질 않았다. 이슥히 헤맨 끝에 그들이 닿은 곳은 조천읍 지경의 한 골프장 입구. 다행히 그곳 수위가 나와서 친절하게 길 안내를 해줘서 밤늦어서야 겨우 제주시에 닿을 수 있었다.

한번은 역시 안개 낀 날에 서귀포에서 서부산업도로를 타고 제주시로 오는데 한동안 가다보니까 저지리 쪽으로 많이 진행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우회하여 제 길을 찾노라고 꽤 애를 먹었다.

최근 들어 도로들이 많아지고, 도로 폭이 비슷해지면서 일어나는 부작용들이다.

제주도내 도로는 제주지방국토관리청이 개설하고, 관리하는 국도와 제주도가 관리하는 지방도, 그리고 각 시.군이 관리하는 시.군도가 있다. 서부산업도로와 제1,2우회도로,  5.16도로와 1100도로가 국도이며, 나머지는 지방도와 시.군도이다.

올해 제주지방국도관리청은 모두 595억 원을 들여 표선~남원 간 국도 확.포장 등 8건의 계속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거기다 지방도와 시.군도까지 합치면 아마도 수십 개소의 도로 확.포장사업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길을 빼놓고도 1100도로 같은 데는 이미 국도로서의 기능을 상실해서 제주도로 넘겨주고 싶으나 관리 때문에 받지 않을 것 같아 그대로 있다고 관계자는
말했다.

이 길은 1970년대 초기에 뺀 것인데, 30년을 내다보지 못하고 사업을 했는데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조차 없다.

최근 들어 시.군들이 다투어 무절제하게 빼놓은 해안도로도 문제가 되고 있다. 너무 바짝 바닷가에 붙여 도로를 빼놓은 데다 구역 안에 산재한 환해장성 같은 역사 현장을 그대로 밀어버리는 바람에 괜찮은 역사자원이 소멸해버린 결과를 낳고 있다.

거기다 이 길 주변으로 무턱대고 들어서는 조잡한 시설들은 아름다운 경관까지 해치고 있으나 당국은 손을 놓고 앉아있다.

그리고 택시기사들에 따르면 중산간지대에는 30분에 차가 한 대도 안 지나다니는 길들이 있다는 것이니 아무래도 도로 개설 행정이 너무 앞선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서부산업도로 같은 경우 해외 정상들이 공항에 도착하여 컨벤션센터까지 닿는 시간(30분)을 고려해서 언덕을 깎고, 구렁을 메우고 곧은길을 빼놨다는 관계자들이 말인데, 도대체 1년에 정상들이 몇 차례나 오는데 이런 엄청난 투자를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길을 뺀 때문에 유수암 등 길에 인접한 여러 마을들은 산 쪽의 동네나 밭엘 가려면 과거보다 1~2km는 돌아야 한다고 하며, 개관한지 10년이 넘은 신천지미술관이 장사가 잘 안되어 주인이 바뀌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구나 생태계의 파괴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것인가?

길을 빼고, 포장 공사를 하노라고 섬 안의 길들은 차를 타고 반 바퀴만 돌아도 몇 건의 파헤쳐진 길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공사가 심지어 러시아워에도 계속되고 있다. 제주에 관광을 온 사람들이 이런 파헤쳐진 길 때문에 불쾌감을 느낀 적은 없는지 한번 앙케트조사라도 벌려보는 것이 어떨까.

길이 많아서 나쁠 게 뭐 있느냐고 물을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지나쳐서는 안되며, 무절제한 인상을 주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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