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열심히 한 일 중 한 가지가 담배를 피운 일과 담배를 끊은 일이다....별 것 아닌 담배하나에 의미를 두게 만든 한국사회의 복잡하고 이상스러운 생리에 울컥하면서도....금연을 위해서라도 흡연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제주출신 중년 저널리스트 서명숙씨(47.전 시사저널편집장)가 첫 작품으로 낸 '흡연여성 잔혹사'(웅진닷컴.247쪽)는 27년간 열애했던 '마법의 풀'에 관한 이야기다.

담배에 대한 저자의 자전적 보고서이기도 한 이 책은 대학 입학 후 선배로 부터 배운 담배가 끝내 흡연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여성의 흡연 문제를 사회·문화적 식견으로 촘촘히 짚어낸다.

'여자와 담배에 대한 도발적인 담론'

자신이 담배를 피우며 겪었던 파란만장하고 엽기발랄한 경험담을 통해 풀어낸 '흡연 여성'의 이야기는 언뜻 27년 흡연사에 종지부를 찍은 '금연기'로 비쳐진다.

하지만 여성 인사들의 숨겨진 흡연 일화와 보통 여성들이 '남성 사회의 틀'속에서 숨죽이며 피워올린 '봉홧불'에 대한 절절한 이야기는 결코 간단치 않은 여성들의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

여성흡연을 통해 본 '여성문화사'라고나 할까.

▲ 한 생애의 담배를 다 피워버린 여자의 담배 이야기.(웅진닷컴.247쪽.9000원)
남자들에게는 그저 단순한 기호품일뿐인 담배가 여성의 손에 들려지면 무언가 이유와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존재로 탈바꿈해 버리는 시대.

"아빠가 알면 둑음, 남친(남자친구)가 알면 절교. 바로 이 것이 담배 피우는 여자는 많은데 정작 당신 주변에는 흡연 여성이 없는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키워드다. 그들은 모르는 사람앞에서는 익명성에 기대어 자신있게 담배를 피우지만 가족이나 직장 동료들에게는 흡연사실을 철저히 숨긴다."

'무언가 마음조이는 것…치욕스런 일'

그렇다면 왜 '잔혹'일까.

저자는 "무언가를 마음 조이면 한다는 것은 치욕스러운 일이다. 자유와 위안의 유일한 덕목인 흡연을 마음졸이며 한다는 건 고문에 가까운 일이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은 오늘도 베란다에서, 카페에서, 골방에서 부엌 한켠에서 몰래 피워야하는 여성들의 또 다른 수난사(?)의 기록 다름 아니다. 

한때 정치부 기자였던 저자가 첫 책을 담배이야기로 들고 나온 까닭 가운데 하나. 

"대학시절 시국사범으로 끌려가 취조를 받는 과정에서 담뱃갑이 나오자 '담배나 피우는 갈보같은 년들'이라며 자신들을 대하는 경찰들이 남학생들에게 협박 반 회유 반으로 넌지시 담배를 권하는 모습을 보면서 담배가 남자와 여자에게 얼마나 다르게 작용하는지 처절하게 깨달았다."

재클린 케네디와 명성황후의 비밀?..담배에 얽힌 재밌는 이야기

▲ 아빠! 엄마 못봤어? ⓒ 김경수
담배라는 물체와 한 시대의 현실을 통해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통제와 여성 문제를 읽어내려한 저자는 명사들의 흡연 이야기를 통해 여성사의 단면을 재미있게 드러낸다.

만인의 여인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가 하루 두세갑을 피워대던 체인 스모커라는 사실.

재키의 오른쪽 검지손가락은 늘 담뱃진으로 누렇게 변해있었다.

재미언론인 문명자씨가 북한 땅을 방문, 김일성 주석과의 첫 인터뷰 자리에서 당당하게 담배를 꺼내물자 김 주석이 허리를 구부려 담뱃불까지 붙여주었다는 일화.

언론인 류숙렬씨가 방북 당시방송계 인사들의 공식 모임에서 문화적 충격을 주기위해 '정치적 흡연(Political Smoking)'을 시도했던 이야기 등 뜨근뜨근한 읽을거리와 야릇한 정보도 담겨있다.

여송연을 좋아한 고종과 달리 권련을 즐겨 피웠던 명성황후의 '애연사'와 1914년 '대한매일신보' 광고속에 등장한 흡연여성의 모습도 저자의 촘촘한 그믈망을 벗어나지 못한다

▲ 언제부터 피운게냐…ⓒ 김경수
청년기에서 시작해 중년때까지 이른 왕골초의 금연 성공기는 눈물겹다.

스스로 '담배에 대한 열정이 단순한 '습(習)'이 아닌 '중독'이 되었음을 안 저자는 5년 동안의 줄다리기끝에 상습금연가의 길로 들어서다 지난해야 비로소 27년 흡연사에 마침표를 찍었다.

저자는 여전히 지금 이순간에도 어딘가 한켠에서 몰래 푸르른 봉홧불을 피워올리고 있을 수 많은 '자신'들을 생각한다.

31일은 세계 금연의 날…"당당하게 그러지 못하면 끊을 것"

그리고 31일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세계 금연의 날을 기해 '흡연여성으로서 나를 사랑하는 첫 걸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 동안 숨기고 포기하고 있었다면 이 날을 핑계대고 당당하게 선언해보자. 담배, 피우려거든 당당하게하자, 그러지 못한다면 과감하게 끊을 것."

흡연의 자유가 보장돼야 담배를 손에서 놓는 것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저자의 흡연 철학은 촌철살인 카툰으로 유명한 시사만화가 김경수씨(www.edtoon.net )의 일러스트가 더해져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값 9000원.

▲ 제주출신 저자 서명숙
1957년 제주 서귀포에서 낳고 자란 그는 서귀포 초등학교, 서귀여중, 신성여고를 거쳐 고려대 교육학과를 나왔다.

대학선배 언니 영초('연초'가 아니다)로 부터 처음 담배를 배운 그는 외부의 강권에 못이겨 '담배'와 헤어진 짧은 시간을 제외하고는 20년 넘게 골초생활을 했다.

월간 <마당> 월간 <한국인>기자에 이어 89년 창간한 시사주간지<시사저널> 기자로 입문, 정치팀장을 거쳐 지난해 4월까지 편집장을 지냈다.

언론인 출신 허영선씨(47.전 제민일보 편집부국장)와는 둘도 없는 막역한 친구.

이번 책의 감수를 친구 허씨에게 일일이 의뢰할 정도로 가깝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백일장 선수'였던 이 둘은 공교롭게도 지난해 20년 넘게 걸어왔던 언론의 길을 함께 접었다. 

허씨는 언론계에 몸담으며 간간히 써왔던 시(詩)를, 서씨는 산문 등 비소설을 쓰며 비슷하지만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본인 스스로 '욕쟁이'라고 할 정도로 '욕'을 즐기는 그가 다음에 낼 책은 '욕에 대한 이야기'.

주변에 정치인 친구와 선.후배가 많아 심심챦게 '러브콜'도 오지만 정작 그는 '글로 살겠다"고 말했다. 벌써 인터넷 다음에 팬카페(http://cafe.daum.net/smsook )까지 생겼다.
 
서씨에 대해 "글 못지 않게 말 또한 맛갈스럽게 한다"는 벗 허씨는 "담배를 피우며 아이 둘까지 키워낸 그가 몸으로 직접 겪어내며 깨달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 한때 왕골초 언니였던 서명숙씨. ⓒ 우먼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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