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도내에서 한서나 한시를 번역하는 작업이 가히 붐을 이루고 있다. 이런 작업은 여러 해 전부터 이 방면에 정진하는 오문복(吳文福)씨에 의해 이뤄져오더니, 지난 ’96년부터는 김익수(金益洙)씨가 번역한 청음 김상헌의 <속음청사(續陰淸史)>를 비롯하여 최근에 나온 노봉 김정의 <노봉문집(蘆峰文集)>에 이르기까지 10여 권이 제주문화원에 의해서 발간되었다.

사실 해방 후 우리 교육은 한자보다는 영어를 비롯한 유럽 쪽의 언어에 치중해 있었고, 한자는 거의 폐지 상태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어차피 한자 권 나라에서 과거의
역사와 사회를 아는데는 한자를 모르고는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의식이 싹터오고 있다.

더구나 그것은 중국이 부흥하고, 중국과의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심지어 시내에 중국어 학원까지 생겨있는 판이다.

그러나 지금 한서를 번역할 정도로 깊은 경지에 들어있는 분들의 경우 외롭게 독학을 하거나 육지의 스승을 찾아다니며 공부한 사람들이다. 이제 후세들은 편하게 옛 사람들의 글에 접하고, 그들의 사상을 알게 되었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오문복씨가 편역을 하고, 최근 재판한 '영주풍아(瀛洲風雅)'라는 책은 고려 적부터 해방 후까지 제주도에서 활동했던 시인들의 한시들을 모은 한시집이다. 이 시집의 말미에는 ‘시인 소개’가 가나다순으로 나열되어 있는데 대충 봐도 120여 명이나 된다.

이것은 지금 도내의 시인들과 거의 맞먹는 숫자다. 게다가 그들은 그 어려운 역경 속에서 서울과, 남도의 선비들과 교류한 것을 알 수 있으며, 음풍농월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도 깊이 스며들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가을이 언뜻 가고 초겨울이 들어서니/ 글벗들 모두 불러 대위에 올랐어라/ 골짜기 서리 단풍에 노란 노을 걷히고/ 울타리엔 남은 국화 / 늦게 피었네 /십 년을 글만 읽어 청춘을 다 보내고/ 반평생 하릴없이 백발만 늙어가네(김순생의 ‘10월’ 부분)

우리들 섬사람은 바다 일을 배워서/ 물일이 아니면 옷과 밥을 얻지 못해/섬 안에는 옛부터 물을 대는 논이 없으니/ 어디서 삼백 석 벼를 얻는단 말인가(실명씨의 ‘잠수가 화답하는 노래 부분)

오문복씨의 제자 백규상(白圭尙)씨도 오태직, 오진조, 오방열씨 등의 <삼오시집(三吳詩集)>을 번역해 냈다. 그 당시 선비들은 시회(詩會)를 열고, 여기서 지은 시를 병 속에 담아 바다에 띄웠다고 한다. 그 병이 떠다니다가 표착한 바닷가나 포구에서는 문촌(文村)이 될 징조라고 해서 크게 기뻐했다니 이런 옛 풍속은 오늘에 가져와도 모자람이 없겠다.

이 시대를 사는 문인들도 100년, 1000년 후세 사람들이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아름답고 감동 깊은 시를 양산하는데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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