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디오니소스마을을 소개하는 걸 TV에서 봤다. 재미있는 것 중의 하나가 손님이 오면 오전이든 오후든 시간에 상관없이 와인을 내 놓는 것이었다. 우리 식으로 얘기하자면 커피나 차를 내 놓는 것처럼.

디오니소스(박카스)는 두말 할 필요도 없이 그리스 신화 속의 포도주 신이다. 서구의 포도주 제조소나 성(城) 같은 곳에 가보면 현관에 디오니소스의 상(像)이 서 있다.

그러나 포도덩쿨로 된 관을 쓴 풍모는 헤라클레스나 헤르메스보다는 좀 쳐진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들이 이복형제들인데도 말이다. 

 디오니소스의 얼굴이 그리스 조각의 미신(美神)과는 결정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어린아이로 화신된 모습도 어딘가 익살맞고 못생긴 쪽이다. 디오니소스를 왜 그런 이미지로 표현했는지 내게는 아주 흥미롭다.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그의 애인 세멜레 사이에서 생긴 아이다. 그의 어머니는 제우스의 본처 헤라의 계략에 넘어가 죽고 만다. 제우스는 그 아이를 받아 자신의 허벅지에 넣고 꿰맨다.

디오니소스는 결국 10개월의 절반은 어머니 세멜레의 뱃속에서, 절반은 아버지 제우스의 허벅지에서 자라다 태어났다. 

헤라는 대단한 질투심을 가진 여자였다. 제우스의 애인들뿐만 아니라 아이들까지도 못살게 굴었다.

 어머니가 없는 디오니소스는 아버지 제우스가 교육담당 요정에게 맡겨 키우게 한다.
 그러나 어른이 된 후 다시 헤라에게 구박을 받으며 나라 밖으로 쫓겨나고 만다.

방랑자의 신세가 된 디오니소스는 따뜻한 여신 레아(제우스의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병을 고치고 마침내는 먼 길을 떠난다. 아시아를 여행하면서 포도재배를 가르치고 인도까지 가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런 후 인도에서 그리스로 디오니소스는 범과 표범의 호위를 받으며 하인을 데리고 당당하게 돌아온다. 열광적인 신자들을 거느린 이 젊은이는 테베에 왔을 때 신의 좌에 끼어줄 것을 요구하지만 그에게 두려움을 느낀 왕들로부터 거절당한다. 

다시 방황하는 신세가 된 디오니소스.

그런데 귀족의 아이로 잘못 알고 선원들이 소년으로 화신한 디오니소스를 유괴한다. 이 부분이 디오뉘소스와 포도와의 관계로는 결정적이다.
 붙잡힌 아이는 배 위에서, 태어난 집이 있는 나그소스섬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호소한다. 몸값이 목적인 선원들이 들어 줄 리가 없다. 오히려 조소하면서 반대방향 이집트 쪽으로 뱃머리를 돌린다.

바다 한 가운데쯤 오니 배가 갑자기 움직이질 않는다. 배가 멈춘 뒤 눈 깜짝 할 사이에 큰 돛대에는 포도덩쿨이 감겨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내 푸르고 푸른 잎이 우거지고 돛대가 휘청일 정도로 포도열매가 달렸다. 주위는 온통 와인향기로 그윽했다.

마침내 범과 표범을 발 밑에서 놀게 하면서 디오니소스가 모습을 나타낸다. 놀란 선원들은 달아나려고 다투어 바다에 뛰어들었는데 모두 돌고래가 되었다.

디오니소스는 풍요와 와인과 연극의 신으로서 서민 신앙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카오스(혼돈)를 가져오게 하는 위험한 신으로서 두려워했다고 한다.

이것은 와인이라는 알코올의 이면성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디오니소스가 민중에게 사랑 받는 싹싹하고 명랑한 신이면서도, 어떤 때는 파괴적인 힘으로 만용을 부리는 점으로 봐서, 고대의 교훈도 역시 술은 적당히 마시는 게 좋다고 말하는 것 같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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