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주십경의 하나인 영구춘화로 알려진 들렁귀(등영구)
제주시 보건소 사거리를 지나 한라산 쪽으로 십여분쯤 가니 울창한 숲이 보인다. 나무 사이를 비집고 내려서면 저절로 탄성이 나올만한 기암 괴석들로 가득 찬 골짜기를 만난다.

바로 이 곳이 영주십경의 하나인 영구춘화를 볼 수 있는 등영구이다. 제주도에 왔던 목사나 풍류객들에겐 놓칠 수 없었던 풍광이다. 한켠에 널마루 같은 평평한 암반들이 넓게 펼쳐져 있어 술 한잔에 시 한 수 읊조리는 풍류를 즐기는데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으랴. 그 많은 세월동안 제주도를 거쳐간 옛사람들의 흔적인 마애명이 유독 많은 이유를 알만하다. 얼마전 이 곳에서 음악회가 열렸다는데 아마 그 시절의 풍류객처럼 소리로 신선을 불러봄인지도 모르겠다.

등영구(登瀛邱. 속칭 들렁귀)

이 곳에는 마애명이 무수히 많은데 그 중에서 신선을 찾아가는 문[訪仙門]과 신선을 부르는 대[喚仙臺]가 대표적인 마애명이다.

▲ 마애명(환선대)
옛 어른들은 한라산은 신선이 살고 있는 물가의 산[瀛洲山]이라 하였다. 그 정상에 있는 못은 신선이 타고 다니는 하얀사슴이 마시는 못[白鹿潭]이며, 이 곳에 홍예(무지개)와 같이 생긴 바위는 신선이 살고 있는 영주산의 대문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신선을 찾아온 문의 뜻을 지닌 방선문(放禪門), 또 그 문안에 들어서서 신선을 부른다는 환선대(喚仙臺)라 이름을 붙여 글자를 새겼다.

방선문은 누가 쓰고 새겼는지 기록이나 구전이 없으며 환선대는 정조 2년(1778)에 목사로 왔던 김영수(金永綏)의 필적이다.

방선문 일대는 마애명으로 뒤덮여 빈 바위가 없을 정도이다.

이 곳에서 가장 오래된 마애명은 김치(金緻 : 광해군 원년. 1609.)의 시이다. 어쩌면 제주도에서 가장 오랜 마애명일 수도 있다. 이름자 중에서 치(緻)자만 전서(篆書)로 썼는데 석면이 구멍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곳에 시를 지어 남긴 많은 시인들 중 영초는 김병필(金炳弼)의 호로 일제강점기 초에 모슬포에 살았던 시인임이 밝혀졌으며 그의 시집은 제주교육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양응상도 일제강점기 초까지 거로, 화북에 살았던 인물인 듯 하나 자세한 행적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 많은 이름들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영주산에 살고 있다는 신선이나 기억하고 있으려나.

▲ 곳곳에 있는 마애명
자신의 이름자를 후세에 남기고 싶어하는 인간의 헛된 욕망이 남긴 마애명. 글씨가 좋고 시가 뛰어났다면 좋은 경치에 보탬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옥에 티가 될 수도 있다.

행여 이곳에 있는 마애명을 보며 거기에 자신이 이름자를 더하려는 자가 있지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에 思菴의 시 한 수 소개해 본다.

亭臺溪巖皆有名號刻石其上因感而腑之
정자의 축대와 시내의 바위 위의 돌에다 이름자를 새겨 놓은 것을 보고
鏤字巖阿勞費日
바위 위에 수고롭게 이름자를 새길 때는
擬將悠久與天期
저 하늘이 끌날 때까지 남기고 싶어서였겠지
堪嗟一瞬隨灰劫
아! 한 순간의 재앙이 닥쳐
川山湮後孰知
시내가 별안간 산을 막는다면 누가 알아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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