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대표하는 저널리스트 치쿠시 데쓰야(筑紫哲也.73)씨가 폐암으로 7일 타계했다.

일반적인 보수성만이 아니고 우경화로 기울고 있는 일본에서 리버럴의 선구자이며 필자가 존경하는 일본인의 한 사람이었다. TV와 신문은 이 사실을 크게 보도했다.

19년전, 1989년 10월 토쿄TV는 <뉴스23>이라는 뉴스 방송을 밤 열한시에 편성했다.  심야에 가까운 밤 열한시에 누가 새삼스럽게  그날의 뉴스를 볼것인가 모두 회의적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4년 빠른 1985년에 아사히TV가 밤 열시에 <뉴스스테이션>이라는 뉴스 방송을 시작해서 인기를 끌었었다.

<뉴스23>은 이에 대한 모방 방송이라는 빈정거림과 기우도 있었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는 결과를 낳았다.
<뉴스23>은 <뉴스 스테이션> 못지 않는 인기를 끌면서 심야 뉴스 방송시대를 열었다.

이 방송의 뉴스 캐스터가 치쿠시 데쓰야씨였다.  치쿠시씨 특유의 부드러운 어조로 시작되는 방송은 취침전의 시청자들에게 안온함을 안겨주었다.

뉴스는 일방적으로 전한다는 개념을 깨트리고 전함과 동시에 들려주는 뉴스로서 정착했다.

그렇다고 뉴스 자체를 희석시켜버리는 것이 아닌 정제된 뉴스들의 깊은 본질을 파헤치고 들려주는 것이었다.

특히 뉴스 논평코너인 <다지소오론(多事爭論)>은 뉴스방송의 신선한 기획이었다.

문제성 있는 뉴스를 또다시 거론하여 날카롭고 독자적인 분석에 의한 그의 지적은 이념의 대립과 갈등을 초월하여 많은 시청자들의 지지를 얻었다.

1995년에는 재일동포 2세 가수 아라이에이이치(본명 박영일, 57)씨의 (청하에의 길)의 곡을 (뉴스23)의 테마곡으로 선정하여 그 방송에서 아라이 씨의 더큐멘터리를 방영했었다.

치쿠시 데쓰야씨는 1935년 규슈 오이다현(대分縣)에서 태어나서 와세다대학 정경학부 경제학과를 졸업하여 아사히 신문사에 입사했다.

정치부기자 시대에는 자민당의 미키다케오 수상의 담당 기자를 역임하면서 자민당 온건파들과 인맥을 맺었다. 

미국이 오키나와 통치시대에는 오키나와 특파원을 지냈으며, 그후 워싱턴 특파원 당시에는 워터게트 사건 등을 취재했었다.

귀국하여 <아사히저널> 편집장때에는 <신인류의 기수들>이라는 기획 속에 <신인류:新人類>라는 유행어를 창조하여 화제를 모았다.

1989년 아사히 신문사를 퇴직하여 <뉴스23>의 토쿄TV 뉴스캐스터로 18년간 활약했다.

1996년 이전에 당시 문제시 되었던 옴진리교의 위법을 조사하던 변호사 인터뷰 영상을 방영전에 옴진리교의 간부에게 토쿄 TV가 보여준 적이 있었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그 변호사 일가족 3명이 이 종교 단체에게 살해 당했다.

1996년 3월 치쿠시씨는 자신의 방송에서, 자국(自局)의 토쿄TV에게 <TBS는 죽은거나 다름없다>는 질타를 가해서 일본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이르켰다.

취재 대상에 대한 비밀 보안이 뻥뚫어져 버린 자국에 강렬한 비판의식은 그의 반골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주목을 끌었다.

작년 8월에는 방송에서 자신이 폐암에 걸렸다는 것을 고백하고 반드시 완치하고 복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후 치료에 전념하면서 몇차례 특별 출연했으나 완전 복귀를 다하지 못하고 별세했다.

금년 4월 이명박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 국민과의 대화> 특집방송을 토쿄TV에서 실시했고 치쿠시씨가 담당했다.

항암제 사용으로 머리카락이 다빠져서 빵모자를 쓰고 출연한 점을 이해해 달라면서 방송을 진행하는 모습은 마음을 뭉쿨하게 하였다.

이명박 대통령만이 나니고 노무현, 클리턴 전 대통령도 같은 방송형식으로 나왔었다.

외국 수뇌가 민영방송의 스타지오에 나와서 일본국민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기획은 처음 있는 일로서 일본 국민에게 많은 친근감을 주었다.

이렇게 생생한 현장 위주의 방송을 진행하면서 일본의 저널리스트는 물론 TV뉴스 캐스터의 맏형으로서 매스컴계를 리더해왔다.

이외에 영화.음악.연극 등에도 조예가 깊어서 광범위한 활동을 했으며, 저서로는 <총리대신의 범죄> <뉴스캐스터>등이 있으며, 리버럴 잡지 <주간 금요일>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었다.

금년 5월, 일본기자클럽상을 받은 것이 공식석상의 마지막 모습이었고 TV 출연은 8월에 철학자 우메하라 다케시씨와의 대담이 마지막이었다.

필자는 밤 열한시 <뉴스23>을 시청해야 하루가 마감 되는 생활을 되풀이 해왔다.

그만큼 인상 깊은 뉴스방송이었으며 치쿠시씨의 독특하고 해박한 뉴스 해설들은 일본의 양심 바로 그것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일한국 대사관을 통해 치쿠시씨 유족에게 개인적인 조의를 표했다는 기사가 같이 게재되어 눈을 끌었는데 참 좋은 배려라고 필자는 생각했다. 치쿠시씨의 명복을 빕니다.<제주투데이>


▶1949년12월 제주시 삼양출신,  1973년 병역마치고 도일, 1979년「현대문학」11월호 단편「오염지대」초회추천, 1980년<오사카 문학학교>1년 수로(본과52기), 1987년「문학정신」8월호 단편「영가로 추천 완료,  중편「이쿠노 아리랑」으로 2005년 제7회 해외문학상 수상, 2006년 소설집 <이쿠노 아리랑>발간, 2007년 <이쿠노 아리랑>으로 제16회 해외한국 문학상 수상, 1996년 일본 중앙일간지 <산케이신문>주최 <한국과 어떻게 사귈 것인가> 소논문 1위 입상. 2003년 인터넷 신문「제주투데이」'김길호의일본이야기'컬럼 연재중, 한국문인협회,해외문인협회,제주문인협회 회원. 현재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면서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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