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자 시인(60)의 신간 시집 '내가 읽은 삶'을 받아 읽으며, 동료 소설가이며, 지금 한국문예진흥원 현기영(63) 원장은 일생의 좋은 아내이며 문학의 길의 반려자를 얻었다는 생각을 했다. 100여 편 그녀의 시집을 읽으며 아, 이것은 이제 이순의 나이에 든 그녀가 살아온 삶의 기억을 아주 맘먹고 솔직하게 꺼내 놓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이 시집의 차례만 봐도 '어머니'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최초의 기억들' 어린 시절 6.25를 만나 한강을 건너가던 '피난 긴', 피난지인 논산 외가에서의 어린 시절에 만났던 '준식이'와 '원숙이 언니' '첫사랑' 그리고 연작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친구', '집'들 모두가 털어놓고 자기 이야기 한판 늘어놓겠다는 각오를 내비치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은 그녀의 시각이 어린 시절에 멈추어 있는 듯 솔직하고 깨끗하다.

지금 내 나이 예순 살. 그렇게 부끄럽고 절절했던 기억들도 이제 다 풍화되어 아련한 그리움만 남았네. 아무리 부끄럽고 아팠던 기억이라 할지라도 지나간 기억들은 어째서 그토록 아름답고 애틋한 것인가? ...대체 나는 누구였던가. ...아무 미련 없이 앞으로 다가올 죽음을 의연히 맞을 준비를 하리라.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부분

그녀의 삶의 자세를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듯 그녀의 시는 현학적이지도 않고, 솔직하게 속을 터놓아 독자들을 끌어당긴다.

8.15 직후 네가 아마 세 살 때였지. 우리 세 식구 쌀 배급을 타면 저녁 한끼 무와 시래기를 섞어 얼굴이 들여다보일 만큼 멀건 죽을 끓여도 꼭 열흘이 모자랐지.
-'엄마의 옛이야기' 부분

지금 60~70대가 누군들 주리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렇듯 슬픈 기억을 그대로 털어놓기는 쉽지 않을 터이다. 더구나 주위를 의식하기라도 한다면.

친구 제재소에서 나무를 얻고 형무소 땅을 얻어 천신만고 끝, 가난했던 내 아버지가 지으셨던 마포 도화동 5번지 3호. 사연 많던 그 집. ...너른 마당 한가운데 놓여 있던 대들보/ 나는 왜 그때 그것을 폴짝 뛰어 넘었을까? ...여자애가 가랑이를 벌려 한 집안의 대들보를 뛰어넘다니/ 자라면서 집안 일이 안될 때마다/ 그 기억은 무거운 죄처럼 내 의식을 괴롭혔네.
-'뜨거웠던 기억' 부분

어린 시절 피난길의 기억은 더 리얼하다. 6월 28일 새벽 세 시. ...창문이란 창문이 와장창 모두 부서져 내리고. 잠자다가 식구들 혼비백산, 그때부터 모두들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그녀는 피력한다. 밤마다 늦게 술에 취해 들어오시던 무궁화 하나 짜리 경찰관 아버지에 대한 딸의 추억도 매우 따뜻하다. 제주의 며느리, 양 시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우리 문단의 이 두 부부작가가 샘이 난다. 많이 팔리기를 멀리서 빈다.

<실천문학사 간. 값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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