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월포구ⓒ 김영학 기자
 조선초기 유민 대거 발생 "제주는 피난지"

지금 조천읍 함덕리의 옛 이름이 '감양개' 혹은 '강영개'라고 부른다. 신천강씨(信川康氏) 입도조 '강영(康永)이 들어온 포구'라는 뜻이다. 이를 입증하기라도 하듯 함덕리 남쪽 '오름밭' 지경에 강영의 무덤이 왕릉처럼 단장되어 자리잡고 있다.

 강영은 이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神德王后)의 사촌 오라버니로 전라감사를 지냈는데,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삭탈관직 당해 태종 2년(1402년) 함덕포로 제주에 들어온다. 그 때문에 함덕 포구는 과거 한 동안 '강영 개'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것이다. 그의 가계는 훨씬 불어나 이제 제주의 대성이 되어 있다.

이처럼 조선조 초기는 많은 유민이 발생했고, 제주는 유배나 망명으로 그들이 피해오는 유일한 피난지였다.
청주한씨(淸州韓氏) 한천(韓 )은 고려말 예문관 대제학(大提學)을 지내고 공양왕 3년에는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가 됐다. 공양왕 4년 7월 왕이 원주로 내쫓기자 왕의 사위 우성범(禹成範), 강회계(姜淮季) 등과 함께 이성계의 제거를 모의하다가 발각됐다.

▲ 한천의 사당
우와 강은 바로 참형을 당하고, 한천은 제주로 유배의 길에 오른다.
그는 지금 표선면 가시리(加時里)에 가 살면서 그 부근의 자제들을 가르쳤다. 고중 10년(1873년) 제주에 귀양왔던 최익현(崔益鉉) 선생은 한천의 적거지에 유허비문(遺墟碑文)을 써줬다. 지금 가시리 상동에 그를 모시는 사당(祠堂)이 세워져 있다. 우리 속담에 "사당치레하다가 신주 개 물려 보낸다"는 말이 전해오긴 하지만 이 고장에 그런 인물의 사당이 세워져 지켜지고 있는 것은 퍽 다행스런 일이다.

김해김씨(金海金氏) 김만희(金萬希)는 공민왕 때 좌헌납(左獻納)으로 그 무렵 신돈(辛旽)이 국정에 깊이 개입하자 정언(正言) 이존오(李存吾)가 신돈을 탄핵할 때 동참하였다가 파직되었다. 그 후 신돈의 불의가 탄로나 물러났으므로 복직되어 찬성사(贊成事)에 올랐다. 그러나 나중에는 좌정승(左政丞)을 하라고 했으나 신병을 핑계하여 사양하고 낙향해 버렸다.

▲ 애월포구ⓒ 김영학 기자
태조가 등극하면서 벼슬에 나오라고 했으나 듣지 않았으므로 태조 2년(1393) 10월에 제주로 유배되었다. 그는 애월 포구로 들어왔는데, 거기 머물면서 부근 아이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다. 그는 "신하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죄가 많아 밝은 하늘을 거울 삼아 빌 뿐"이라는 뜻으로 '만희'라고 이름마저 고쳤는데, 한편 애월포로 들어왔다는 뜻으로 호를 '월포(月浦)'라고 짓기도 했다.
그에게 다음과 같은 한시가 있다. 편이 상 번역문 일부만을 여기에 옮겼다.

티끌만치도 나라에 보답하지 못한 고려 유민이
죽지도 못하고 감히 새봄을 맞는구나
언제는 금마문(金馬門) 앞의 손이었지만
오늘은 신선 사는 영주산 아래 사람이 됐네 (하략)

경주이씨(慶州李氏) 입도조 이미(李美)는 고려 말 교리(校理)로 있다가 나라가 망하자 숨어 글만 읽고 있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때를 만나면 벼슬에 나가고, 못 만나면 숨어 글을 읽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그 역시 태조가 등극하며 다시 교리로 나오라고 했으나 나가지 않았으므로 제주로 귀양보냈다. 그는 외도리(外都里)에 살면서 지방 자제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의 형님 이신(李伸)은 제주에 귀양와 있는 동생을 딱하게 여겨 세종 2년(1420)에 부러 변방의 제주 목사가 되어 부임했다.

동생을 데려 가려고 여러 가지로 달랬으나 말을 듣지 않자 형은 그해 목사직을 사임하고 제주를 떠나버렸다. 형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동생에게 감화를 받았을 터이다. 그때 이미가 형님에게 보냈다는 한시가 오늘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이 시 역시 번역만을 다음에 싣는다.

섬을 비록 형편없다고 하지만
이곳도 한 나라의 영토인 것을
여기서 옛 임금을 우러를지언정
두 마음 가진 사람이야 어찌 되리

이들 뿐 아니라 진계백(秦季伯), 김윤조(金胤祖), 허손(許遜), 변세청(邊世淸) 같은 인물도 이 무렵에 제주로 들어와 대부분 그들 성씨의 입도조(入島祖)가 됐다. 지금 제주에는 이들의 자손들이 중심 축을 이루고 있으며, 그들에 의해서 '삼무(三無)의 정신'은 지켜졌던 것이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